2025년 11월 18일 (화)
(녹)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국교회사연구소, 미래 비전을 이끌 담론 창출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1912

[돌아보고 헤아리고] 한국교회사연구소, 미래 비전을 이끌 담론 창출을

 

 

교수는 일정한 자리를 지니는 연구자이다. 일반 연구자(강사)와는 시간당 보수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난다. 교수가 자신의 주요한 역할을 잊었다면 이는 세간(世間)에서 말하듯, 매우 불공평하다. 그러나 교수에게는 강요된 기대가 있다. 연구와 교육 · 행정 외에, 미래 사회를 진단하고 자신의 학계로서 어떻게 감당할지 ‘담론’을 형성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제 능력에 부치는 일들을 완수하려 교수들은 상호 협조에 나선다. 이 같은 현상은 모든 직장인이 직장을 구하는 후보군에게 짊어진 ‘부채’일지 모른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1964년 8월 17일, 김대건 신부 서품 기념일에 맞추어 창설되어 ‘교회사 연구’라는 새 길을 개척해냈다. 그리고 창설자 성농(誠農) 최석우 몬시뇰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 임무를 충실히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교구마다 거의 다 교회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이 가운데 마치 교수와 같은 짐을 지고 있다고 믿어져 이 ‘마음 불편한 비교’를 끌어왔다. 주마가편(走馬加鞭)하는 심정은 욕심일지 혹은 믿음일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여러 기대를 하게 된다. 

 

담론을 쉽게 끌어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기반 작업이 있다. 아직까지 천주교회사 분야의 ‘학회’가 없다. 2010년 무렵에 교회사 연구를 위한 학회가 창설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이를 제안했었다. 직후 신부님들 중심으로 ‘한국교회사 연구자 모임’이 형성되어, 2012년 8월에 출발했다. 연구자 모임은 지금까지 연구 정보를 교환하고, 자료를 제공하며, 신진연구자를 격려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으로 공헌하고 있다.

 

학회는 이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학회는 신진학자 혹은 비신자 학자들이 정식 등단하는 문호를 제공하며, 또한 논문 점수로 연구자 업적을 평가하는 현 체제 하에서 보다 타 연구자들과 함께 활동할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일반 연구자 중에도 자신의 연구를 하다가 한두 번 교회 쪽의 인물이나 사건, 또는 관련 사료들을 다루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연구자가 발표하고 해결하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교회사 연구를 하면 장래가 보장되느냐는 확답을 받고 싶어 하다가 결국 타 대학으로 진학해서 공부를 이어간 내 제자 같은 이도 가끔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학회 간 협업할 조건도 갖추어진다. 한편, 교회사는 역사와 신학의 분야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학대학과 일반대학은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교회사는 교구 단위로 연구되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회는 제대로 된 융합적 논리를 키우는 마당을 마련할 것이다. 교회사 연구 초기 구성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학회라는 새로운 틀을 구축해야 초기 정신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어 새 담론의 하나로 우선, 성지와 연결되는 한국교회사 서술을 제안하고 싶다. 신앙생활 유형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교회사 연구는 좋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지만, 일반 신자들은 전연 다른 상황이다. 신자들은 시성이나 시복식을 앞두고 순교자들 위주로 공부하곤 이내 멈춘다. 이와 반대로 성지순례는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고, 나름 효과를 얻고 있다. 

 

교회사 연구자 모임을 만들 무렵, 성지 담당 신부들이 모여 전국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짰다. 그리고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의 전신)는 2011년 스탬프 핸드북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를 발간했다. 책자에는 성지 주소와 연락처, 미사 시간, 부대시설 정보, 간단한 설명과 순례 확인란이 담겨 있다. 그때 신자들이 이 정도로 해당 성지나 순교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까 하는 우려에서, 몇몇 교회사 연구자들과 제대로 된 성지 역사를 쓰자고 모였었다. 그러나 작업에 착수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신자들의 순례에 대한 호응은 꾸준히 늘어, 짧게 잡아도 2년은 걸리는 전국 성지순례를 완주해 갔다. 주교회의에서는 위원장 주교가 순례 완주자에게 축복장을 수여했는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축복장을 받은 사람이 4,792명이나 되었다. 당시는 전국 15개 교구 내 111곳 성지였다. 이후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에서는 167곳으로 늘어난 성지에 관해 보완한 개정증보판 핸드북을 2019년 여름에 발간했다. 2025년 3월 현재 누적 완주자는 10,746명이다. 

 

아무튼, 이렇게 많은 성지는 단체로 다니기가 어렵다. 대개 개인, 부부, 가족, 친구들끼리 떠나게 된다. 부모 형제에게 좋은 빌미(?)가 되기도 하고, 때로 비신자 혹은 타종교인과 함께할 기회도 된다. 길도 익히고 지방 문화도 접하게 된다. 또한 순례자끼리 마주쳐 서로 축복해 주기도 한다. 길 위의 우정은 산티아고 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 순례에 나서 보면 역사적으로 선후를 정해야 더욱 깊이 느낄 성지들이 있고, 또 연결해야 효과적인 순례가 되는 성지들도 있다. 성지마다 정보를 충실히 갖추어가고 있음을 보게 되지만, 그것은 해당 인물이나 장소에 머무른다. 심지어는 역사적 균형을 잃을 정도로 강조하기도 한다. 

 

성지 역사를 한국교회사 전체 흐름 내에서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한편, 교회사 연구자들로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눈으로 확인시키는 교회사를 서술할 수 있다. ‘발로 쓰는 한국교회사’라고 부를 만큼 현지에서 흐르는 신앙적 진실을 담아내는 기회가 되고, 선교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사를 생동감 있게 설명하고, 신자들에게는 자기가 찾은 순교자를 이해하게 할 역사 서술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앞장서 볼 만하지 않을까? 이러는 사이 진짜 생활을 담은 위인전, 복자전도 탄생하지 않을까?

 

[교회와 역사, 2025년 7월호, 김정숙 소화 데레사(영남대학교 명예교수)]



1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