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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성 마가렛 성당 100주년 특별기고: 홍콩 성 마가렛 성당 100년의 발자취와 한국외방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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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가렛 성당 100주년 특별기고] 홍콩 성 마가렛 성당 100년의 발자취와 한국외방선교회
홍콩 영화 ‘천장지구’ 촬영지로 유명한 성당
국내에서 홍콩 영화가 인기 있던 1990년대, 유덕화 주연의 「천장지구(天若有情, A Moment of Romance, 1990)」는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 장국영 주연의 「천녀유혼」과 더불어 홍콩 빅3 영화였다.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 마가렛 성당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유덕화(劉德華)와 오천련(吳倩蓮)이 그들만의 비밀 결혼식을 한 장소로 등장한다. 성당 앞에서 이들이 결혼 서약을 하는 장면과 흰 드레스를 입은 오천련이 계단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동안 유덕화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본 많은 이들이 성당을 찾고 있다.
제대 오른쪽의 1급 성물인 ‘성 십자가 나무’는 1924년 교황청 외방선교회2) 선교사들이 바티칸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순 시기 십자가의 길 기도 때 제대 중앙에 놓여 신자들을 축복한다. 1924년 교회 기물을 모금할 때, 신자들은 대리석 제단, 예수 성심이 성녀에게 현시하는 대리석 조각상, 제단 촛대 세트, 제의 예복, 14처 그림과 액자, 종, 대리석 바닥 타일, 오르간 등을 기부해 성 마가렛 성당을 웅장하고 경건하게 만들었다. 1925년 축성된 성당은 결혼식장이 되기 위한 신청서를 홍콩 정부에 제출했고, 2주 후부터 실행되었다. 당시 홍콩 언론(西報)에 이 성당에서 많은 예식이 거행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성 마가렛 성당의 건립과 1920~1940년대
성당이 건립된 1920년대 홍콩은 대륙의 전쟁으로 인한 약탈과 자연재해를 피해 온 중국인들에게 피난처가 되었다. 대륙에서 이민자들이 계속 유입되자, 홍콩 정부는 해피 밸리 지역을 개발하였다. 1920년 홍콩대목구의 포조니(D. Pozzoni, PIME) 주교는 해피 밸리에 향후 많은 중국인 교우를 맞을 새로운 성당을 크게 짓도록 했다. 마침 그해 교황청이 마가렛 성녀를 시성할 예정이었기에 주교는 성녀를 이 성당의 주보 성인으로 정했다.
성 마가렛 성당은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이탈리아 건축가 고넬라(U. Gonella)가 설계하여 1923년 초석을 놓고 1925년에 봉헌되었다. 성 마가렛 성당 설립 당시 홍콩대목구 관할권의 80%는 중국 영토에 속해 있었고 마가렛 성당도 더 넓은 지역을 관할하였다.
성 마가렛 성당의 교우는 1925년 1,400명에서 1939년 3,020명이 되었다. 교우가 급속도로 늘어남에 따라 미사 횟수를 늘렸는데, 홍콩 가톨릭교회의 발전을 예견한 사제들의 선견지명으로 성 마가렛 성당이 크게 지어질 수 있었다.
1937년 7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또다시 수많은 피난민이 홍콩으로 몰려들었다. 홍콩의 가톨릭 사제들과 수녀회는 ‘전쟁구제회(War Relief Association)’를 설립하고 학생들을 동원하여 난민들의 홍콩 정착을 도왔다. 이에 성 마가렛 성당도 1938년 기금을 조성해 자선 활동을 펼쳤다. 1941년 12월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한 후, 교회 활동은 형식적으로는 지속되었지만 주민들을 강제로 대피시키면서 신자 수와 교회 활동은 줄어들었다. 1942~1943년 성 마가렛 성당은 교우 수가 775명으로 급감했다. 게다가 대규모 폭격을 받은 홍콩은 물자가 부족해졌고, 홍콩대목구는 자산을 매각해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성 마가렛 성당은 군사 지역에서 떨어져 있어, 전쟁 기간 공격받지 않았고 일본군에 점령되거나 약탈당하지도 않았다.
자선과 교육 활동에 앞장선 1950~1960년대
1946년 4월 11일 교황 비오 12세는 중국 교회 교계제도를 수립하고, 홍콩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대목구를 교구(Diocese)로 일괄 승격하였다. 1949년 1월 성 마가렛 성당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중국 본토에서 내전을 피해 홍콩으로 온 수많은 난민들로 인해 홍콩 가톨릭교회는 또다시 구호 활동에 앞장섰고, 성 마가렛 성당도 난민들을 위해 자선 활동과 교육 사업에 적극 나섰다. 성 마가렛 성당 교우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구호 상자를 나눠주고, 자선 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951년 본당 홀을 지었다. 홍콩 정부가 새로운 학교를 열도록 관련 단체에 촉구하자, 1950년 성 마가렛 성당은 ‘이브닝 스쿨’을 열었고 330명의 난민 어린이가 등록하였다. 1960년에는 여러 차례 기금을 모아 초등, 중등 과정을 포함하는 ‘성 마가렛 서원’을 세웠다.
이렇게 난민을 지원하는 동안 세례자 수가 크게 늘면서 1958년 20,289명에 이르렀다. 1960년대는 홍콩 이주가 크게 늘어나면서 1967년 홍콩 이주민은 390만 명에 가까웠다. 매년 1만 명이 넘는 세례자가 나오는 일은 1965년까지 계속되었고, 1967년 성 마가렛 성당은 매주일마다 무려 7대의 미사를 거행했다. 성 마가렛 본당 주임 사제는 교회에 나오는 많은 예비신자들의 교리문답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했고, 신자 수 증가에 따라 규모를 확장하고 시설을 개선했으며, 홍콩의 인근 가톨릭 학교들과 협력하여 천주교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변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전례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1968년 성 마가렛 성당의 제단 구조가 개조되었다. 사제들이 회중을 향한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오래된 뒷벽의 제대는 철거하고, 고정된 천연석 제대가 현재 위치에 놓여졌다. 신자들이 성직자와 독서자가 성경 말씀을 봉독하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좌측에 있던 이전의 독서대는 제단 오른쪽(현재의 연단)으로 옮겨졌다.
1969년 5월 100년간 교황청 외방전교회가 담당해 온 홍콩교구 관리가 종결되고, 서성빈(徐誠斌) 홍콩 주교가 공식 임명되었다. 교황청 외방선교회 직속이었던 성 마가렛 성당은 1971년 홍콩교구가 관할하게 되었다. 교황청 외방선교회는 1987년 홍콩교구와 맺은 새로운 계약으로, 그동안 선교회에 제공되었던 모든 특혜는 폐지되고 타종교 수도 선교회와 동등한 수준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구 주교는 본당 사제를 이동시킬 권한을 갖게 되었고, 교황청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주교의 지도 아래 지역 성당에 파견되어 교구 내의 다양한 직책에 임명되었다. 성 마가렛 성당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70년 본당 협의회를 주도적으로 설립하고 교우들이 본당 사목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했다.
1980~1990년대 홍콩의 신심 위기 극복
1980년대의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두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반환에 대한 불안감으로 수십만 명이 홍콩을 떠났고, 이민의 물결 속에서 지역 인구는 고령화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반 홍콩 사회의 신심에 전반적 위기가 닥쳐왔다. 1987년 홍콩교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사회문제 총지침」을 바탕으로 각 본당이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장려했다. 성 마가렛 성당은 홍콩 55개 본당 중에서 사회 복지팀을 구성하는 데 앞장선 10개 본당 중 하나였다. 1980년대 초 많은 본당 구성원이 본당을 떠났지만, 성 마가렛 성당은 사제, 본당 사목협의회, 자선단체의 노력으로 교리반 학생과 세례자 수가 감소하지 않았다. 복지 활동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여, 사제들의 숙소와 사무실 외에 기도실·교리 교육실·회의실·유치원 및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이 있는 새로운 본당센터를 1986년 완공했다. 이후 대규모 행사의 장소 제공과 본당 평의회와 신자 단체 및 교리교육 활동도 더욱 활발해졌다.
당시 홍콩 정부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조치를 도입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지침을 제공해주기를 요청했다. 이에 호진중(胡振中) 주교는 1989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사목 서한집 「영광스러운 10년을 향하여(邁向光輝的十年)」를 발표했다. 이 사목 서한집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향후 30년간 사목적 복음화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평신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0년 교구 지침에 따라 평신도가 본당 평의회에 포함되면서, 성 마가렛 성당 평신도들이 사목팀과 협력하고 본당에 적극 이바지할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제작된 『설립 70주년 기념 본당사(本堂史)』에는 ‘평신도 복음화’ 사명을 강조하고, 교우들이 결혼·성 가정·청소년 등 소그룹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형성하고, 이들의 신앙이 교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2003년 발생한 신종 독감 사스(SARS)에 성 마가렛 성당도 큰 타격을 받았다. 출산율 저하로 2003년 세례자 중 그해 출생자가 18명에 불과했다가, 이후 경제 회복과 출산율이 다시 증가하면서 2008~2014년 본당의 세례자 수도 증가했다.
비록 2015년 이후 홍콩의 인구 포화와 노령화된 지역 사회에서 교구와 본당 세례자 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매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 마가렛 성당을 찾아와 입교하고 세례를 받고 있다. 지난 3여 년간 코로나(COVID-19)로 인한 봉쇄로 홍콩 경제가 위축되어 2023년 성 마가렛 성당의 세례자 수가 20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기도 하고, 이미 2019년의 홍콩 사회불안 이후 많은 이들이 홍콩을 떠났지만, 이와 동시에 대륙에서 홍콩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성 마가렛 성당은 다양한 인종 국적을 가진 국제 대도시 홍콩섬의 외국인들을 위해 광동어·보통화[普通话]·영어·일본어·스페인어·프랑스어·인도네시아어 등 여러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성당 설립 100주년 행사를 이끈 한국외방선교회 김용재 주임 신부
현재 성 마가렛 성당은 한국외방선교회(Korean Missionary Society, KMS)에서 파견된 김용재(안드레아) 신부가 주임 사제를 맡고 있다.3) 김 신부는 설립 100주년이라는 큰 기념행사 준비로, 성당과 본당센터의 외벽 수리와 도색을 하고, 성당 설립 100주년 기념 ‘성경 읽기 3년 계획’을 추진하여, 하느님 말씀의 삶을 살아내는 교우들이 공동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본당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또한 성당 역사와 역할을 조명하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홍콩 가톨릭 공동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전시, 행사, 교육 및 지역 사회를 위한 자선 활동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근 가톨릭 학교와 사목적 교류를 펼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전쟁, 재난, 사회적 불안을 견뎌낸 성 마가렛 성당은 2025년 설립 100주년을 맞아, 홍콩의 현대화 속에서 역사적·종교적 가치를 유지해 온 홍콩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가 100년을 이어온 교황청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삶과 정신을 이어받아 사목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용재 주임 신부는 지난 2024년 성 마가렛 성당의 교우들과 함께 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 성지 순례를 다녀가기도 했다.
2025년 희년의 공식 표어는 ‘희망의 순례자들’이다. 2025년은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50주년이기도 하다. 희년과 함께 새로운 5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외방선교회의 선교 활동을 통해 홍콩 성 마가렛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연결되어 새로운 백 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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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에서 태어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 1647~1690, 이하 ‘마가렛’)는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환시를 보고 수녀원에 입회하였고, 1673~1675년 네 번에 걸쳐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마가렛 수녀는 자신이 예수 성심 신심을 널리 전하는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계시받았고, 수녀가 받은 계시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1765년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프랑스에 예수 성심 신심을 선포하였고, 1856년 교황 비오 9세는 예수 성심 축일을 보편교회의 축일로 확대하고 1873년에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지정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는 1899년 예수 성심께 전 인류를 봉헌하는 회칙을 발표했다. 마가렛 성녀는 1864년 시복되고, 1920년 시성되었다.
2) 당시 홍콩 대목구는 교황청 외방선교회(Pontificium Institutum pro Missionibus Exteris, PIME) 사제들이 주교로 임명되고 홍콩의 여러 성당에서 사목했으며, 성 마가렛 성당의 건립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김용재 신부는 2019년 8월 15일 성 마가렛 성당 부주임을 거쳐, 2021년 11월 15일부터 주임을 맡고 있다. 홍콩 교구에는 현재 한국외방선교회 사제 5명이 파견되어 본당을 맡고 있다(한국외방선교회 홈페이지의 선교지 중 ‘중국’ 참조: www.kms75.or.kr).
[교회와 역사, 2025년 7월호, 김정현 미카엘라(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0 16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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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설립된 성 마가렛 성당(St. Margaret’s Church)은 성 마가렛 성녀1)를 주보 성인으로 모시는 아시아의 첫 번째 성당이다. 홍콩 영화 ‘천장지구’의 결혼식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성 마가렛 성당은 홍콩섬 해피 밸리(Happy Valley) 지역에 있으며, 현재 한국외방선교회의 김용재 신부가 주임 사제를 맡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올해 100주년을 맞은 이 유서 깊은 성당의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료를 제공하고 자문해 주신 김용재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 필자 주
성 마가렛 성당은 많은 신자들이 선호하는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다. 로마 신전처럼 높은 지대에 있는 이 웅장한 성당은 엄숙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정문과 4개의 돌기둥과 함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조각상이 서 있다. 성당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로마 양식의 둥근 천장이 있고, 그 원통형 공간의 끝에는 반구형 창문이 뚫려 있어, 자연광이 들어와 마치 위에서 신자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제단 뒤쪽에는 주보 성인인 성 마가렛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묘사한 성화가 걸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