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ㅣ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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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레오 교황과 한국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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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고 헤아리고] ‘레오’ 교황과 한국교회
레오 14세 교황의 한국 방문이 확정되었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인데 변동이 없다면 역대 네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이 될 것이다. 새 교황은 지난 5월 8일에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교황을 주셨을 것을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새 교황의 이름이었다.
새 교황은 ‘레오’를 교황 명으로 선택했다. 새로운 교황의 이름이 발표되자, 많은 이들은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년)를 떠올렸다. 레오 13세 교황은 20세기를 앞두고 교회 최초의 사회 회칙인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 5. 15.)」를 발표하며,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적 문제, 경제, 노동에 대한 체계적인 성찰을 교회와 세계에 제시했다.
그의 이름을 선택한 레오 14세 교황은 추기경들 앞에서 한 첫 공식 연설에서 교황 명을 ‘레오’로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레오 13세 교황이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 권리와 사회 정의 문제에 응답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도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인간 존엄성과 노동을 지키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새 교황이 모범으로 삼은 레오 13세 교황과 한국교회도 인연이 깊다. 제7대 대목구장 블랑 주교는 레오 13세 교황이 세운 묵주기도 성월과 전대사(全大赦) 선포와 관련된 두 개의 사목 서한을 발표하였다. 1884년 10월 6일에 블랑 주교가 반포한 사목 서한은 교황의 뜻을 따라 10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성모호칭기도와 묵주기도 5단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교황은 바로 전해인 1883년 9월 1일에 회칙 「최고의 사도 직무(Supremi Apostolatus Officio)」를 반포하여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정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과 전 세계에 걸쳐 각종 사상적 오류와 이단, 사회적 혼란과 변혁을 겪고 있었다. 이를 걱정한 교황은 오류와 그릇된 사상에서 교회를 구하고자 개인과 가정,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 성월을 제정하였다.
1886년 7월에 발표한 사목 서한에서는 레오 13세 교황의 전대사 반포 소식을 알리며 전대사를 받기 위해 지켜야 할 규정들을 풀이해 주었다. 첫째는 열품도문(성인호칭기도)과 모든 기도문을 날을 나누어 네 차례 바치되 열품도문이 어려우면 묵주기도 15단이나 묵주 세 꿰미를 나흘 동안 네 번 할 것, 둘째는 봉재 때와 같이 대재 두 날을 지킬 것, 셋째는 마땅히 각 처지대로 애긍전을 교회에 바칠 것, 넷째는 마땅히 고해와 성체성사를 영할 것이었다. 블랑 주교는 애긍전은 팔도에 의탁할 곳 없는 노인을 위한 교회 양로원에 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블랑 주교는 콜랑 드 플랑시(Colin de Plancy, 1853~1922) 영사가 한국교회를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였으니 교황 훈장을 수여해 달라는 청원을 교황에게 보냈다. 주교가 1889년 1월 21일에 시메오니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블랑 주교는 세 가지 업적(교회와 정부의 토지 분쟁 해결, 신학생 석방, 대구 허 골롬바 배교 거부 사건)을 들어 그에게 훈장을 주기를 청하였다. “외람되이 소망컨대, 플랑시 씨의 인간적인 자질과 조선에서 그가 가톨릭 대의를 위해 이미 봉사하였고, 또 앞으로 봉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저희가 평가하는 것처럼, 예하께서도 그를 높이 사시어 곧바로 교황 레오 13세 성하께 청하셔서 플랑시 씨에게 보상의 표시로 성 그레고리오 훈장과 같은 교황 훈장을 수여하시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블랑 주교는 이 편지와 함께 자신을 포함하여 4명의 신부와 627명의 신자 이름을 적은 목록을 보냈는데, 지난 2020년에 1m가 넘는 긴 두루마리 목록이 교황청에서 실제로 발견되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서종태, 『교회사연구』 58집, 2021).
한편 뮈텔 주교가 1893년 8월 12일에 발표한 사목 서한도 교황 레오 13세와 관련이 있다. 한국교회에 성가회(聖家會)를 창립하겠다는 내용인데, 성가회는 레오 13세 교황이 1892년 6월 20일에 전 교회의 신심단체로 인준하고 여러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교회 공인단체가 되었다. 뮈텔 주교는 교황의 교서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신심회를 한국교회에 도입하기 위하여 성가회의 취지, 특성, 성가정(聖家庭)의 모범, 가입방법, 회원의 의무, 특전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특히 성가회 규식, 성가회 경문, 회원이 얻게 될 전대사와 한대사(限大赦) 등을 서한 끝에 첨가시킴으로써 성가회에 가입하도록 적극 권장하는 동시에 가입할 회원들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배려하였다.
레오 13세 교황은 동시대 이슈들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켜나가야 할 부분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주었다. 가톨릭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라고 요청하였으며, 신자가 아닌 일반 연구자들에게도 바티칸 고문서고를 개방하였다.
레오 14세 교황은 선출된 후 지금까지 4개의 담화를 발표했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를 살면서 깨어 살펴야 하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이제 2년 후인 2027년이면 전 세계 청년들이 운집한 가운데 서울에서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 세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봉헌할 것이다. 새 교황의 행보와 말씀에 희망과 기대를 갖고 희망의 순례자로서 복음을 살며 그날을 기다린다. 그때는 곧 온다.
[교회와 역사, 2025년 10월호, 송란희 가밀라(한국교회사연구소 학술이사)] 0 5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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