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목)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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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이냐시오 말로얀 주교 등 7위 시성식 레오 14세 교황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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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12 ㅣ No.2456

[미사강론] “성인들은 이상을 수호하는 기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거자”

 

 

레오 14세 교황이 10월 19일 연중 제29주일 순교자 피터 토 로트와 이냐시오 말로얀 주교, 마리아 트론카티 수녀와 빈첸차 마리아 폴로니 수녀, 카르멘 렌딜레스 마르티네스 수녀, 평신도 바르톨로 롱고와 호세 그레고리오 에르난데스 시스네로스 등 7명 복자의 시성 미사에서 하느님 섭리에 대한 희망 안에 살고 행동하기 위한 기도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고통과 폭력, 증오와 전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곳에 계십니다. (...) 그분께서 모르시는 눈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7명의 복자들의 시성 미사

- 이냐시오 추크랄라 말로얀

- 피터 토 로트

- 빈첸차 마리아 폴로니

- 마리아 델 몬테 카르멜로 렌딜레스 마르티네스

- 마리아 트론카티

- 호세 그레고리오 에르난데스 시스네로스

- 바르톨로 롱고

 

레오 14세 교황의 강론

성 베드로 광장

연중 제29주일, 2025년 10월 19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방금 봉독한 복음을 마무리하는 물음이 우리 성찰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이 질문은 주님의 눈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유대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는 일곱 명의 증거자, 새 성인성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음의 등불을 밝혔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 스스로 그리스도의 빛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물질적, 문화적, 과학적, 예술적인 자산과 비교해볼 때, 신앙이 탁월하게 빛나는 것은 그러한 자산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 없이는 그런 것들이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세상 끝날 때 유한한 모든 존재를 무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땅은 하느님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자녀들, 곧 구원받지 못하는 피조물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십니다. ‘믿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늘과 땅은 이전처럼 남아 있겠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이의 자유는 죽음에 의해 무너질 것이고, 삶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허무로 치달을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없이 우리는 구원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를 동요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께서 몸소 그 질문을 하셨다는 사실을 잊을 때만 그렇습니다. 사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복음, 다시 말해 구원의 기쁜 선포로 남아 있습니다. 이 구원은 성령의 힘으로 성자를 통해 성부로부터 받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고 말씀하십니다. 숨 쉬는 데 지치지 않는 것처럼, 기도하는 데에도 지치지 맙시다! 숨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기도는 영혼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실제로 믿음은 기도로 표현되고, 진정한 기도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이 연결고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한 재판관이 어떤 과부가 줄곧 졸라대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그 과부의 끈질김이 마침내 그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듭니다. 언뜻 보기에 그와 같은 끈기는 특히 시련과 고난의 시기에 우리에게 좋은 희망의 본보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 여인의 끈기와 마지못해 행동으로 옮긴 재판관의 태도는 예수님의 질문을 촉발시킵니다. 선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루카 18,7)

 

이 말씀이 우리의 양심 속에 울려 퍼지도록 합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공정한 심판관이심을 믿는지 묻고 계십니다. 성자께서는 우리에게 성부께서 항상 우리의 유익과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지 물으십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유혹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첫 번째는 악의 추문에 기인하여, 하느님께서 억압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듣지 않으시고 무고한 이의 고통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유혹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느님께서 행동하셔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는 정의롭고 효과적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분을 가르치듯 하느님께 명령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자녀다운 신뢰의 완벽한 증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두 가지 유혹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특히 수난 중에도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루카 22,42 참조)라고 기도하신 무고한 분이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성자로서 성부께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이름 안에 형제와 자매로서 이렇게 선포합시다. “거룩하신 아버지,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로마미사경본』, 감사기도 제2양식).

 

교회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정의를 베푸시고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부르짖을 때, 이 청원을 기도로 바꿉시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는 곳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는 용서입니다. 그분께서는 악을 보시고 그 악을 스스로 짊어지심으로써 구속하십니다. 우리가 고통과 폭력, 증오와 전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울부짖음을 위로해주십니다. 그분께서 모르시는 눈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시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시며, 우리를 그분처럼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거부하는 자는 이웃에게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평화를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평화를 베푸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질문이 희망과 행동에 대한 강력한 초대임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실 때,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정의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지탱해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우리를 운명론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호소를 들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에게 하셨던 것과 같이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가? 그분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회심으로 부르시는 겸손한 분이시며, 오늘 새 성인들이 증명하듯이, 우리를 의로운 이가 되게 해주시는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새 성인들은 영웅이나 어떤 이상을 수호하는 기수가 아니라, 진실된 이들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충실한 벗들은 이냐시오 말로얀 추크랄라 말로얀 주교와 교리교사인 피터 토 로트와 같이 자신의 믿음을 위해 순교한 이들이고, 마리아 트론카티 수녀와 같이 선교사이자 복음 전파자들이며, 빈첸차 마리아 폴로니 수녀와 카르멘 렌딜레스 마르티네스 수녀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창립자들이며, 바르톨로 롱고와 호세 그레고리오 에르난데스 시스네로스와 같이 신심으로 불타오르는 마음을 지닌 인류의 은인들입니다. 그들의 전구가 우리를 시련에서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모범이 성덕에 대한 우리의 공동 부르심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순례하는 동안, 우리가 배우고 확실히 믿는 것을 굳건히 지키며(2티모 3,14 참조)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지켜나가는 믿음이 하늘에 대한 희망의 토대가 됩니다.

 

[바티칸 뉴스, 2025년 10월 20일,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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