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특집] 희망 영화관 : 세계의 주인(2025년 작, 윤가은 감독)
삶에서 때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미쳐 알 수 없었던 나를 향한 지지와 연대가 삶의 희망이라는 미래로 선명하게 드러나 과거의 나를 딛고 조금씩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나 홀로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 내가 미처 모르는 관계의 선량한 연대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믿게 합니다. 그날 저는 삼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에 있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루카복음 18장의 ‘세리의 기도’ 부분이 가슴 깊이 전달되어 그 엄청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은총은 영혼이 준비할 틈 밖에서 시작되는 것이 틀림없다는 듯 저는 그 숲 한가운데에서 무언가를 내려놓은 채로 가만히 멈추어 서서 지금 내 마음의 준비 외곽에서 몹시도 부끄럽게 밀려오는 화해의 손짓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방금 내려놓은 것은 나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나 자신 자체였던 까닭이기에 죄스런 이 존재 전체의 어떤 원초적인 부끄러움이 사실상, 하느님 구원의 빛 아니고서는 회복될 수 없다는 간절함을 품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저는 숲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불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인간의 죄가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통회될 때 은총은 풍성함으로도 모자라 넘쳐 흐르듯 영혼을 감격하게 합니다. 이 감격의 결정체는 바로 용서이며 화해입니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들은 루카복음 23장의 내용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가장 처절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우리들이 임금, 혹은 왕으로 부르기에는 비참한 그 모습으로 십자나무 아래에 달려 계신 그분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모두들 그분을 빈정거리고 조롱하며 비웃고 업신여깁니다. 그분의 왕홀과 그분의 권위와 그분의 왕으로 오심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들 세계 한 복판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 해의 전례력을 마감하는 오늘, 그분께서 왕으로 오시는 방식은 그 직전에 고통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 신앙인의 불가피한 원형의 전례를 말해 줍니다. 곧 고통을 통한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일치라는 인류 모두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와 어울리듯 오늘 소개할 영화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인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하느님께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방식이 우리 인간들의 ‘진정한 연대’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매우 담담하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안에서 여러 친구들에게 성격 좋은 인싸로 통하며 대개 그 또래가 그러하듯이 연애가 가장 큰 관심사인 열여덟 ‘이주인’이 이 영화의 주인공 입니다. 이 영화는 한 존재의 화해 과정이 어떻게 공동체의 연대와 돌봄으로 가능한지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연대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오랜 전통이고 시노달리타스의 핵심인 것입니다.
[2025년 11월 23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서울주보 6면,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