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4일 (목)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전례ㅣ미사

[위령] 위령기도 해설5: 운구, 하관,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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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2-03 ㅣ No.2702

[돋보기] 위령기도 해설 (5) 운구, 하관, 화장

 

 

1. 집 짓는 자들 내버렸던 그 돌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에 광야에서 체험한 고통을 재현하는 초막절(草幕節) 축제에서 감사 시편인 117(118)편을 노래했습니다. 이 시편을 지은 이는 원수가 자기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할 때마다 주님께서 구원하신 체험을 통해 아무도 자기를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을 되살려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장례는 집을 짓고 남은 돌을 처리하듯 그저 시신을 떠나보내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의 눈에는 버려지는 존재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은 그의 영혼을 귀중한 머릿돌로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라고 외치면서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를 힘차게 부르며 고인을 운구해야 합니다.

 

시편 92(93)편은 세상이 주님을 거스를지라도 모든 존재는 그분의 권능 아래에 있다고 노래하는 찬양 시편입니다. 이 시편을 지은 이는 주님의 권위를 거스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자들과 그들이 살던 나라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은 흔들릴 수 없고, 확고한 그분의 권위가 지배하는 세상에 있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굳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위기를 맞아도 주님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은총을 받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기다리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역경에 빠진 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해야 한다고 노래하는 시편 24(25)편은 탄원 시편입니다. 주님은 죄인에게 바른길을 가르치고, 겸손한 이에게 의를 따라 걷게 하며, 당신의 언약과 계명을 준수하는 이에게는 사랑과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이런 주님이 곁에 계시니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청하고 지켜주시도록 호소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변치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는 사람은 주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길 것입니다.

 

이 시편을 지은 이는 하느님과 자기의 관계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으므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하느님의 축복이 후손 대대로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이는 아무리 나쁜 죄를 저질렀을지라도 모두 용서하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비록 세상을 떠날지라도 그분 품에서 영원히 살고, 그분의 축복이 후손만대까지 이어질 것인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시편 118(119)편은 176절이나 되는 긴 시편이지만, ‘상장 예식’은 1~8절, 57~72절만 수록했습니다. 온전한 길을 가고, 주님의 가르침과 법을 따르며, 마음을 다해 그분을 찾고, 불의를 저지르지 않으며 그분의 길을 걷는 이는 행복하다고 노래합니다. 비록 고난을 겪기 전에는 그릇되게 판단하기도 했지만, 당신의 진실을 깨달은 지금은 오로지 주님의 말씀만 따를 뿐입니다. 교만한 자가 거짓으로 나를 해치려고 아무리 덤벼도 주님의 계명과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이해력이 떨어지고 우둔해져 지금 당하는 고통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지만, 주님의 법만 따르는 사람은 주님께서 당신 사랑을 깨우쳐 주려고 배려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온갖 희로애락을 간직했던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이 비록 잠시나마 고통스럽겠지만,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하느님의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며

 

묘역(墓域)에 도착하면 주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성모님‧천사‧성인들의 전구를 청한 다음 운명 후와 고별식 때 불렀던 승리의 찬가인 ‘하늘의 성인들이여’를 노래합니다. 이어 관 위에 흙을 덮으며 부르는 즈카르야의 노래는 늙어 아기를 낳지 못하던 엘리사벳이 주님의 은총으로 아들을 낳자, 즈카르야가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을 준비할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부른 찬미가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님께 돌아갈 때까지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노래하고, 죽은 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간구합니다. 세상 마지막 날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그분의 자비와 은총으로 죽은 이들이 반드시 부활한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악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3. 죽음에서 건져 주셨음이오니

 

화장할 때 봉독하는 독서의 화답송인 시편 55(56)편은 탄원‧신뢰‧감사의 세 요소가 어우러진 노래입니다. 이 시편을 지은 이는 위기를 맞아 하느님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면서 자기 믿음을 고백하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을 때는 구원해 주신 그분께 감사드렸습니다.

 

화장한 뒤에 뼈를 모으고[拾骨], 곱게 빻는[碎骨] 모습을 지켜보는 아픔이 엄청나므로 부활에 대한 신앙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살갗이 뭉크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욥기 19,23-27)라고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드러내면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욥기 7,1)이라고 말하는 욥은 육체의 고통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정신적‧영적인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난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주님을 향한 강렬한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 희망을 자기 힘으로는 이룰 수는 없지만, 끝내 이루어주실 수 있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그 희망은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마지막에 당신의 권능을 분명하게 행하시므로 자기가 갈망하던 그분을 만날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모든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하더라도 모든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기 19,27)라고 했듯이 희망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하느님은 우리 가슴에 계십니다. 

 

신앙은 한 번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가져오는 새로운 도전에 항상 새롭게 맞서는 것입니다. 욥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나타나시리라는 믿음과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죽음이라는 마지막 한계마저 허물고 하느님을 뵙는 최종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눈앞에서 살붙이나 가까운 이가 이승을 떠나는 아픔을 겪을지라도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기꺼이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1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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