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ㅣ교회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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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3: 기욤 뒤파이의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거룩한 어머니의 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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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3) 기욤 뒤파이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거룩한 어머니의 애가> “콘스탄티노플 쓰러질 동안 서방은 무엇을 했나"
1453년, 충격적인 소식이 그리스도교 세계를 뒤흔들었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튀르크 군대에 의해 함락된 것이다. 동로마 제국의 천년고도이자 동방 교회의 중심지가 무너졌다는 현실 앞에서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서방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며, 유럽의 영적·문화적 정체성에도 깊은 균열을 남겼다.
참담한 상실의 분위기 속에서 한 작곡가가 교회음악으로 응답했다. 부르고뉴의 기욤 뒤파이(Guillaume Dufay, 1397-1474). 그의 샹송 모테트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거룩한 어머니의 애가(Lamentatio sanctae matris ecclesiae Constantinopolitanae)>는 잃어버린 도시를 위한 애도이자, 비탄을 담은 추모비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곡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뒤파이는 음악으로 군주와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콘스탄티노플이 쓰러질 동안 서방 세계는 무엇을 했는가?”
당시 테노르(Tenor) 성부의 라틴어 가사를 보면 뜻은 분명해진다. 이는 얼핏 성목요일에 부르는 예레미야 애가와 유사하다. 노랫말은 예루살렘의 패망 위에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겹쳐 놓는다. “그 모든 애인들 가운데 위로해 줄 자 하나 없고 벗들은 모두 그를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애가 1,2).
흥미로운 점은 뒤파이가 이 구절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뒤집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든 친구들이 그녀를 배신했다. 사랑하던 모든 이들 가운데 그녀를 위로할 이 하나 없다(Omnes amici eius spreverunt eam. Non est qui consoletur eam ex omnibus caris eius).” 도치된 가사는 ‘배반’을 먼저 내세우고 ‘위로의 부재’를 못 박는 방식으로 듣는 이의 양심을 찌른다. 이 어순의 전도는 저버림의 의미를 강조하며, 콘스탄티노플을 끝내 외면했던 서유럽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음악적 질타를 선명하게 만든다.
의문은 남는다. 이는 실제로 정치 무대에서 울린 음악이었을까.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듬해인 1454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선량공은 ‘꿩의 연회(Feast of the Pheasant)’를 열고, 튀르크에 맞선 십자군 원정을 맹세했다. 기록에 의하면 여성으로 의인화된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구슬피 울며 도움을 간구하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비탄을 가시화해 기사들의 의지를 끌어올리는, 군사적 명분을 고양하는 장치였다.
이 연회에서 뒤파이의 ‘애가’가 연주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부르고뉴 연대기들이 전하는 애가 텍스트가 뒤파이 작품과 다르고, 노래로 불렸다는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곡은 뒤파이가 1456년경 메디치가에 보낸 서한에서 언급한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위한 네 개의 애가’ 중 하나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1455년 전후, 그러니까 도시 함락에서 조금 더 시차를 갖고 작곡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곡에 깃든 짙은 죄책감과 비통함의 정조는 바래지 않는다.
뒤파이의 반문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고전적 저서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을 쓴 런치만(Steven Runciman)의 문장과도 통한다. 그는 동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절박했던 지원 요청과, 서방 세계의 침묵과 소극적 태도에 대해 이렇게 쓴다. “황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응답은 빈약했다.” 그렇기에 뒤파이의 가사는 비수처럼 꽂힌다. “친우들이 저버렸다. 위로할 이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 11월 29일은 특별한 의미를 발한다. 이날 이스탄불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와 함께 기도하며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일치를 향한 노력을 새롭게 하자고 선언했다. 제1차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이라는 공통 기억 속에서, 외면과 분열로 가득한 역사 앞에서 일치로 응답하는 형국이다. 뒤파이의 “1453년 서방은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오늘날 교회가 “여기, 함께”로 답하는 셈이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11일, 박찬이 율리안나(음악 칼럼니스트)] 0 1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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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필로스 하치미하일 (1870-1934)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 작품은 “한 세계가 마지막으로 자기 정체성을 붙잡는 순간”을 보여준다. 기마 위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의 최후와 성직자들의 행렬과 십자가-이콘들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교회가 교회로 남으려는 모습이다. 출처 위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