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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2: 순교자 현양 운동과 평신도 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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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2) 순교자 현양 운동과 평신도 양성 신설 교구의 자립 · 성장 위해 순교자 현양과 평신도 양성에 노력
초대 수원교구장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는 교구 설정 이후 ‘신앙생활과 전교활동의 강화’를 교구의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인적·물적 기반이 부족한 신설 교구가 자립하고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신자들의 신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윤 대주교는 ‘순교자 현양’과 ‘평신도 양성’에 역점을 뒀다.
순교자 현양 통한 순교 신심 함양
당시 교구에는 신앙 선조들이 왕래하며 박해의 고통을 겪은 터에 세워진 본당들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가 안장됐던 미리내성지를 비롯해 유서 깊은 신앙의 유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윤 대주교는 신자들이 이러한 유산을 직접 체험하며 순교 신심을 키워가길 바랐다. 그 중심에는 순교자 현양 활동이 있었다. 특히 김대건 신부의 묘역과 경당이 지닌 신앙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 그는 미리내성지를 순교 신심을 다지는 핵심 장소로 꼽았다. 1964년부터는 이곳에서 교구 차원의 순교자 현양 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윤 대주교는 훗날 “교구는 초창기 교회 순교 선열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공동체라고 생각했다”며 “더 많은 이가 신앙 안에 순교 정신이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리내성지에서의 순교자 현양대회를 기획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신문 2011년 2월 13일자)
이와 함께 교구는 병인박해 100주년(1966년)을 맞아 추진된 ‘순교복자 기념성당’ 건립에도 동참했다. 1965년 주교회의는 각 교구에 순교복자 기념성당을 세우는 전국적인 현양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고, 교구는 같은 해 6월 15일 사제회의를 통해 뜻을 모았다.
3개년 계획으로 추진된 이 사업은 총 400만 원을 모아 수원 서둔동에 성당을 건립하는 것이 목표였다. 윤 대주교는 교서를 통해 성직자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순교 정신에 따라 절약한 용돈을 봉헌하길 권유했다. 성당 건립 과정 자체가 신자 각자의 삶에서 순교 신심을 체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1969년 9월 16일,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23주년 기념일에 서둔동 순교복자 기념성당이 완공됐다. 한옥 정자형 종탑과 옹기가마를 연상케 하는 건축 양식은 순교자들의 영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역 사회에 천주교의 존재를 알리는 이정표가 됐다.
3개년 평신도 교육 시행
1960년대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교구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따르며, 동시에 신설 교구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를 절실하게 요청했다. 윤 대주교는 교구장 착좌 당시부터 사목 지침을 통해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 출발점은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하 평협) 설립이었다. 윤 대주교는 1968년 12월 1일 ‘제1회 평신도 사도직의 날’을 맞아 모든 본당 주임신부에게 평신도 사명에 대한 특별 강론을 요청했고, 이듬해인 1969년 3월 23일에는 27개 본당 대표와 교구 단위 단체 대표 등 55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구 평협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평협 창립을 계기로 평신도 지도자 교육도 속도를 냈다. 1971년 11월 교구는 ‘평신도 교육 3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르면, 1972년에는 평신도 지도자 교육과 사제 연수를 병행하고, 1973년에는 교육을 받은 사제와 평신도 지도자가 일반 신자를 재교육해 평신도 역량을 강화한다. 마지막 해인 1974년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신자들이 단체를 조직하고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1975년에는 본당 단위에서 인력과 재정의 자립이 가능해지고, 본당 간 협력과 공동 사목, 사도직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교구는 기대했다. 아울러 사제 양성, 순교자 현양, 은퇴 사제 지원, 군종 사목, 농촌 아동 교육 등 교구의 현안 해결은 물론, 다른 교구의 소외된 신자들을 돕는 기반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교육과정은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교회론’, ‘전례학’, ‘성사론’ 등을 포함했고, 1972년 제1차 교육에는 본당 대표급 남녀 회장 30여 명이 참여했다.
이후 교육은 본당과 지역, 공소, 단체 등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됐다. 이듬해 대부분의 본당이 지도자 교육, 신심 단체 피정, 어린이 부모 교육 등의 이름으로 신자 재교육을 시작했다.
이러한 평신도 교육운동은 전교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교구 신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평신도 교육이 시작된 1972년, 신자 수는 전년(5만6303명) 보다 2675명 늘어난 5만8978명이었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전년보다 9012명이 증가해 6만7990명을 기록했다. 1973년 기록한 15.2%의 증가율은 1990년대 초까지 가장 높은 신자증가율로 기록돼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6년 1월 11일, 민경화 기자] 0 7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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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9월 16일 미리내성지에서 거행된 순교자 현양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1969년 3월 23일 수원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창립총회에서 윤공희 대주교(앞줄 오른쪽 네 번째)와 각 본당 대표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수원교구 홍보국 제공
- 순교복자를 기리기 위해 1969년 완공된 옛 서둔동성당.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