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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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39: 방황과 고독 속에 움트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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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2 ㅣ No.607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39) 방황과 고독 속에 움트는 진리


베드로 사도는 방황했고, 예수님은 고독하셨다

 

 

스승 예수 그리스도는 핏방울을 흘리며 기도하는데, 제자들은 산 아래에 널브러져 쿨쿨 잠을 자고 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기도’ 안드레아 만테나 작, 1455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답답한 현실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1978년에 발표된 그의 데뷔곡 ‘시인의 마을’에 얽힌 아픈 사연을 들은 것은 40여 년이 지난 최근의 일입니다. 첫 소절이 화근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여기에서 ‘방황’과 ‘고독’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이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습니다. 저는 대학 4학년 때였지요. 수업을 제대로 한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거의 매일 데모를 했고, 대학 캠퍼스는 매캐한 최루가스에 절어 있었습니다.

 

정태춘은 이런 시국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시인의 마을’이라는 서정시를 한 편 썼고, 여기에 곡을 붙여 노래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공연윤리위원회가 태클을 걸었습니다. ‘방황’과 ‘고독’ 두 단어를 다른 말로 고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음반사 사장이 고쳤답니다. 방황을 자연으로, 고독을 생명으로!

 

정태춘씨의 회고를 듣고 저는 묘한 상념에 빠졌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철학적 수준이 꽤 높았구나 하고, 야릇한 위안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방황과 고독의 철학적 의미를 알고 있었고, ‘시인의 마을’이 원래대로 대학가에 퍼졌을 경우의 사회적 파장을 내다보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방황과 고독은 인간 실존의 본질에 관한 문제입니다. 인간은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방황은 줄곧 고독을 향해 진행되고, 진리는 고독 속에서 잉태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캐묻는 노래가 겉으로는 잔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면적으로 강한 힘을 갖는 이유입니다.

 

 

외딴곳 찾아 기도하셨던 예수님

 

열두 사도와 예수님이 방황과 고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생활 3년 동안 제자들은 방황의 연속이었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마음도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은 늘 고독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독이 밀려올 때마다 외딴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 직후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절대 고독의 순간이었고 베드로 등 제자들에게는 방황의 끝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땀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산 밑에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과음한 것이었을까요, 낯선 예루살렘 생활에 지쳐 있었던 것일까요? 잠깐 조는 게 아니라 숫제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이게 있을 법한 일입니까? 스승은 절체절명의 순간 핏방울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때 바친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바칠 수 있는 기도의 결정체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방황은 방랑과 차원이 다릅니다. 방황은 우왕좌왕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심이 있고, 정처 없이 걷는 것 같지만, 지향점이 있습니다. 방랑은 중심도 지향점도 없습니다. 방황은 겉으로는 흔들림처럼 보이나 속으로는 담금질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사람은 방황하는 만큼 성장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성인 만큼 깊은 방황을 체험한 분도 드물 것입니다. 방황의 의미를 묵상할 때마다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떠오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방황의 과정

 

열두 사도는 줄곧 방황하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후에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한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제자들의 3년 방황은 마음속의 때를 씻어내는 과정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방황은 뼛속까지 배어 있는 노예근성을 제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독은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삶으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통로입니다. 성숙한 인간에게 방황과 고독은 분리된 둘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20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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