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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28: 바흐의 커피 칸타타와 인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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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9 ㅣ No.628

[사유하는 커피] (28) 바흐의 커피 칸타타와 인류애


커피에 대한 사랑을 유쾌하게 노래하다

 

 

커피는 예술에 적잖은 영감을 주었다. 위장을 다스리는 약이나 수행자들의 잠을 쫓는 도구쯤으로 여기던 커피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덕분이었다. 그가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로 알려진 ‘칸타타 BWV 211’을 작곡한 것은 1730년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한 바흐는 13명의 자녀를 두었고,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47세에는 맏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로서 심정을 작품에 담았다.

 

이 작품은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딸과 커피를 그만 마시라고 다그치는 아버지가 승강이를 벌이는 코미디이다. 기업체들의 광고 때문에 커피 칸타타라고 하면 ‘악마의 키스’를 연상하며 괴테의 파우스트 못지않은 무거운 주제일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은 유쾌한 희극이다. ‘종교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바흐가 대중을 위한 희극적 작품을 쓴 것은 ‘커피 애호가로서 커피에 대한 헌정’이라는 견해가 있다. 바흐 자신도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염소고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극 중의 딸이 노래하는 풍자적인 아리아가 인상적인데, 당시 다방은 여성의 출입을 금했기 때문에 이 대목을 남성 가수가 가성으로 불러 더욱 재미를 돋우었다. 딸은 이렇게 노래한다. “커피는 너무나 달콤하구나.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 더 부드럽구나! 커피야말로 내가 마셔야 할 것이야. 나를 기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게 커피를 따르게 하세요.”

 

아버지는 당시 이슬람의 음료로 불리던 시커먼 커피가 딸의 건강을 해칠 것을 우려했다. 딸은 “커피를 끊지 않으면 약혼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아버지의 최후통첩에 굴복하는 척한다. 하지만 혼인계약서에 ‘커피 자유섭취 보장’이라는 조항을 슬쩍 써넣으면서 결혼에 골인한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엄마도 커피를 마시는데 너를 혼낼 수 없다. 고양이가 쥐 잡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처럼 처녀들도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다”고 유쾌하게 노래한다.

 

지금이야 웃으며 감상할 수 있지만, 당시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로 간주하며 터부시하는 상황에서 이 작품은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가히 혁명적인 시도였다. 커피 칸타타가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난 ‘종교음악의 어머니’ 헨델에게서 나오지 않은 대목도 곱씹을 만하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했으며, 대부분 교회음악가로 살아갔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궁정음악가의 길을 살아간 헨델과 달리, 바흐는 거리의 악사인 아버지와 함께 일터에서 서민과 호흡했다.

 

음악은 신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종교음악의 시대를 비집고, 음악을 향유하는 대상에 서민을 세운 바흐의 첫 곡이 커피 칸타타였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는 문화와 예술이 있지만, 통념을 깨고 경계를 넘는 지식에 의해 인류의 삶은 발전해왔다. 그 방향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평등해지는 세상을 향한다.

 

한 잔의 커피를 두고 연민에 빠졌을 바흐를 떠올린다. 시대를 막론하고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에서 스스로 내려와 허름한 카페의 한켠에서 작은 오페라 칸타타를 공연하는 바흐의 모습에서 해 질 녘 양 떼를 이끌고 높은 언덕을 힘겹게 넘어가는 목자의 모습이 비친다.

 

음악이 커피이고, 커피가 음악인 것은 모두 우리의 기분에, 관능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커피 칸타타가 좋은 커피만큼이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선율보다는 그 곡에 담긴 정신, 인류애에 있다. 지금 우리의 커피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29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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