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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주님 계신 곳 그 곳에 가고 싶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 ·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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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1 ㅣ No.750

[주님 계신 곳 그 곳에 가고 싶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 · 기념관


거센 폭풍 뚫고 양떼 찾아온 한국인 첫 목자 발자취 서려

 

 

제주교구 ‘순례길 상징’을 넣어 만든 순례길 표지판과 순례객들이 현재 위치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도록 돕는 큐알코드 안내판.


 

누구신가

수호천사 라파엘 작은 목선 하나로

성난 바다에 돛대도 키도 던져 버리고

이 나라 최초의 목자가 되어 돌아오신 이,

흩어진 양 떼를 돌보려 찾아왔으나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짖어대는 개들’이

우글대는 그런 조국을 더더욱 사랑하신 이,

당신은

 

-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중, 김형영 스테파노 시인

 

제주 ‘김대건 순례길’ 시작점 쉼터 벽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시구(詩句)다. 한국교회사에서, 개개인에게 이어져온 신앙의 전수 여정에서 김대건 신부는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맞아 이번 호 ‘주님 계신 곳, 그곳에 가고 싶다’에서는 제주 용수 포구 앞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을 찾아갔다. 바로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고국으로 향하는 길에 처음 표착한 곳이다. 이곳에서 김 신부가 겪은 고국에서의 첫 여정을 돌아보며 순례를 하다보면,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하느님 섭리와 성모 마리아 도우심에 감사하는 김 신부의 뜨거운 마음이 내 안으로 옮겨오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

 

- 제주교구 순례길 중 ‘김대건길’ 정점으로 꼽히는 용수성지. 입구에선 성 김대건 신부 상이 가장 먼저 순례객들과 마주한다. 그 뒤로 등대 모양 종탑이 인상적인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라파엘호를 형상화한 기념관 등이 자리한다.

 

 

연달아 몰아친 태풍에 덩달아 좌충우돌하던 제주 바다가 거짓말처럼 잔잔해졌다. 짙은 쪽빛을 발하는 바다와 그에 화답하듯 맑은 푸른빛을 띠는 하늘, 비구름에 가려져 못 다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그 바다와 하늘 사이 자리한 제주교구 용수성지(담당 허승조 신부). 그곳에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이 있다.

 

등대인줄 알고 다가갔더니 기념성당 종탑이다. 이 등대 모양의 종탑은 성당을 향해 걷는 순례객들에게 ‘사롬 있수과?’(안녕하십니까?)라고 안부를 물으며 하느님 집에 들어와 쉬라 손짓하는 듯하다. 순례객들마다 어쩐지 가벼워진 마음으로 성당을 향해 잰걸음한다. 그 모습에 30여 일간 험한 바닷길, 풍랑 속을 표류하다 고국땅에 내려서 안도와 감사 기도를 올렸을 김대건 신부의 형상이 겹쳐진다.

 

-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2층 전시실에는 김 신부가 표류 끝에 제주 용수리 해안에 표착한 여정을 비롯해 그의 신앙과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료 등이 전시돼 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등 일행 13명과 같은 달 31일 라파엘호에 올라 조선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센 폭풍우에 휩쓸려 제주 용수리 해안에 표착, 이곳에서 고국땅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이어 김 신부 일행은 용수 포구에서 라파엘호를 수리하고 본토로 이동했다.

 

제주교구는 김 신부 제주표착 의미를 되새기며 지난 2006년 표착 기념관을, 2008년 기념성당을 봉헌했다. 1만4190㎡ 넓이의 성지 내에서 기념성당은 해안 순례길을 향해 서 있다. 이 성당 정면은 김대건 신부의 서품식이 거행된 중국 상하이 진자샹(金家巷)성당 정면 모습과 같다. 단층으로 된 작은 성당이지만 순례객들을 품어 안기엔 넉넉하다. 성당 옆 등대 모양 종탑은 어둠을 밝히는 교회와 김대건 신부를 상징한다.

 

- 김대건 신부 일행이 1845년 9월 28일 제주표착 후, 조선 땅에서 처음 봉헌한 미사를 형상화한 모형도.

 

 

연건평 555.37㎡ 규모로 세워진 기념관에는 1층 김대건 신부 유해공경실과 영상실, 성물방, 2층 전시실 등이 들어서 있다. 전시관은 ‘김대건신부관’, ‘제주교회사관’, ‘제주교구 선종사제관’ 으로 꾸며져 있다. 1845년 9월 28일 김대건 신부 일행이 용수리 해안에 표착 후 첫 번째로 봉헌한 미사를 형상화한 실제처럼 만든 모형도 눈길을 끈다. 기념관 옥상 전망대도 빼놓지 않고 방문해야 할 곳이다. 전망대에 서면 수월봉과 차귀도, 용수포구 등 제주 서북 해안을 한눈에 담으며 바람 가득 실려오는 가을 내음을 누릴 수 있다. 기념관은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무료 개방한다.

 

성지 내에 또 하나 이색적인 공간은 김 신부 일행이 이용했던 라파엘호를 복원해둔 곳이다. 라파엘호는 길이 13.5m, 너비 4.8m, 깊이 2.1m, 총중량 27.2톤 무동력 목선이다. 순례객들은 배 위에 직접 올라가볼 수도 있다. 제주교구는 지난 1999년 용수성지 선포를 기념하며 고증을 통해 라파엘호를 복원하고 제주-상하이 바닷길 성지순례를 펼치기도 했다. 라파엘호에 올라서면 더욱 가까이 보이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상’은 김대건 신부가 간직하던 ‘기적의 성모상본’에 있는 모습을 본따 만들어 세웠다.

 

- 제주교구 순례길 중 ‘빛의 길’인 김대건길 위, 수월봉에서 바라본 바다. 맨 왼쪽 차귀도와 오른쪽 ‘바당 순례길’, 그 사이에 자리한 일명 누운섬(와도)을 비롯해 저 멀리 용수 포구까지 한눈에 보인다.

 

 

용수성지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은 제주교구가 처음으로 연 순례길인 ‘김대건길’ 정점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김대건길은 고산성당에서 시작해 신창성당을 끝으로 12.6㎞의 해안로를 걸으며 또 하나의 기도를 매듭짓는 길이다. 용수성지는 총 12.6㎞ 여정 중간을 넘어서 8.2㎞ 지점에 자리한다. 이 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수월봉 인근과 자구내 포구, 생이기정 바당길 등과 겹쳐져 사시사철 천혜의 자연을 누리며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 하느님 숨결을 누리며, 김대건 신부가 걸었던 고난의 길, 그 끝은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영광의 길임을 묵상하는데 제주 김대건길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제주교구 순례길 해설사 모임인 ‘순례길 사랑회’ 김주원(크리스토폴) 회장 말처럼 널찍하게 자리잡은 용수성지와 그곳으로 이어지는 김대건길 순례는 “우리 매일매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순례길임을 새삼 새겨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다.

 

[가톨릭신문, 2020년 9월 20일, 주정아 기자, 사진 박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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