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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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다만 흰 것으로 남은 백운, 꽃댕이와 주변 교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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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19 ㅣ No.1929

[순교자 성월 특집 III] 다만 ‘흰 것’으로 남은 백운, 꽃댕이와 주변 교우촌

 

 

우리 교구에는 배론이나 풍수원 외에도 오래전 박해를 피해 살던 교우촌, 순교자들이 살던 사적지가 여러 곳 있습니다. 이번 순교자 성월에는 원주교구에 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신앙 유적지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1. 부론 서지마을 2. 강원감영 3. 백운 화당리(꽃댕이) 4. 학산 묘재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오직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채식주의자>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한강이 <흰>이라는 책에서 초가 흰 심지의 불꽃에 자신의 몸을 서서히 밀어 넣어 낮아지며 남기는 말로 적은 구절이다. 그는 왜 초가 ‘흰 것’을 남긴다고 했을까? 초는 차라리 타오른 순간의 열정, 보람으로 남는 한때의 찬란한 빛, 그 영광의 추억으로 자신을 남기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마 아직 타지 않았을 때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불꽃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고, 낮아져 마침내 사라지는 그 순간에는 열정보다는, 보람보다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흩어져서 모든 것이 되는 흰 연기, 그 흰 것만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렇게 흩어지는 흰 것을 허무라고도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깊고 넓은 것, 혹은 모든 것의 바탕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입체파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흰색은 하늘을 뚫고 나온 본래의 하늘색’이라고도 말한 것이나 공자(孔子)가 논어에서 ‘그림은 흰색을 바탕으로 삼는다’(繪事後素, 혹은 ‘그림의 마지막은 흰색이다’라고도 해석한다)라고 한 것은 모두 그 흰 것이 품고 있는 ‘숨은 바탕’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한강이 말한 그 ‘흰 것’, 공자가 말한 그 ‘흰 바탕’을 이름으로도 닮은 곳은 충북 제천 백운(白雲), 흰 구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다. 이 마을은 본래는 제천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에 있다 하여 원서면(遠西面)이었는데, 1914년에 백운면(白雲面)으로 바뀌었다. 백운이라는 이름은 근처의 백운산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 마을을 둘러싼 산에는 늘 흰 구름이 가득해서 사실은 이름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본래의 모습에 맞는 이름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설로는 흰 구름이 가득한 곳은 학이 내려앉는 상서로운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 교회 역사 속에서 이 구름이 가득한 곳은 박해를 피해 구름 속에 몸을 맞춘 교우들이 찾아들어 곳곳에 교우촌을 이룬 지역이 되었다.

 

당시 여러 교우촌이 산속에 흩어져 있었지만 이 백운에는 교우촌이 유달리 많았다. 많이 알려진, 꽃댕이(곳당이, 백운면 화당(花塘)) 외에도, 학의 날갯짓 소리가 울리던 움실(羽音谷 또는 愚音谷, 백운면 방학리), 커다란 호랑이가 나왔다던 대호지(大虎地, 교회의 기록에는 대꼬지(竹串里)), 너럭바위가 있던 너럴골(노럴골), 그 외에도 도곡리(道谷里), 방아다리(放鶴里), 안말

(평동리 내평장곡(內平章谷), 원월리(元月里) 등 많은 교우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래서 인근 교우촌, 서지마을이나 배론의 교우들도 이 백운의 교우촌을 자주 왕래하며 의지하였던 듯하다. 가령 1839년 1월 말경 교우촌 서지 마을로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교우들이 급히 몸을 피해 숨어든 곳이 바로 백운의 꽃댕이였다.(다블뤼 주교, 「조선순교자 역사비망기」 4권, 381쪽) 그 내용을 이어 샤를르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도 서지마을에 있는 교우들이 거의 전부 이 꽃댕이로 피신하였다고 전한다.(「한국 천주교회사」, 中, 390쪽) 복자 최해성(요한)도 자신의 부모를 이 백운 꽃댕이로 피신시켰고, 돌아가는 길에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또 1866년 3월 병인박해 당시 배론에 있던 신학교에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학교의 두 신부님들이 잡혀갈 때 신학교 집주인 장주기는 푸르티에 신부의 만류로 같이 잡혀가지 못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포졸들이 모든 것을 약탈하여 먹을 것이 없었다. 닷새를 굶고 식량을 얻으러 찾아간 곳이 바로 백운 꽃댕이 너럴골의 신자 집이었고, 안타깝게 그곳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렇게 신자들이 서로 오가고 많은 교우촌이 있던 곳이기에 끌려간 신자, 혹은 순교한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이름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 기록에 엿보이는 이름은 도곡리에 살던 송 아우구스티노, 꽃댕이에 살던 송성보와 지 모니카, 안골에 살던 심노첨과 심서경 등 몇몇 이름뿐이다. 그 외에 순교하였음에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이들, 끌려가지도 못하여 자책하는 이들(「한국 천주교회사」, 中, 25쪽의 ‘이첨지 베드로’가 대표적이다), 더 깊이 숨은 이들, 혹은 모진 고문에 입으로라도 배교한다고 말하곤 가슴을 친 이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이름도 남기지 않고 순교한 이들, 신앙으로 버틴 이들, 그러다 흰 연기처럼 스러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이 헤아릴 것인가.

 

지금은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그 자취도 남아있지 않고 사라진 다만 ‘흰 것’으로 남은 이들이다. 지금은 흰 구름만 흐르는 백운, 꽃댕이와 너럴골, 대꼬지에 살던 신앙인들은 자신들은 사라져도 다만 하느님이 남기를, 다만 진실이 남기를, 다만 그들이 살고자 했고 실제로 살았던 하느님 나라만이 세상에 ‘흰 것’으로 남기를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 흰 것 위에 우리가 서 있다. 그리고 오늘도 백운의 넓은 들에 서면 하늘을 뚫고 나온 그 흰 것들이 우리를 바란다.

 

[2020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원주주보 들빛 5면, 문화영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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