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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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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 말기 암환자 전문의료기관 갈바리의원 호스피스 병동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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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1-05 ㅣ No.693

[위령성월] 말기 암환자 전문의료기관 '갈바리의원' 호스피스 병동 탐방


"여보, 내가 하늘나라에 우리의 천국을 만들어 놓을게"



자기 죽음을 미리 아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에게 남은 시간이 한 달이라면 어떻게 보내야 할까. 위령성월을 맞아 강원도 강릉에 있는 말기 암환자 전문의료기관'갈바리의원'(원장 최종순 수녀)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다.

 
죽음은 누구나 두렵다
 
호스피스 병동을 들어가는 기자의 발걸음이 무겁다. '곧 세상을 떠날 이들에게 무슨 질문을 던져야 할까' '누가 죽음에 대한 질문에 곱게 대답할 수 있을까'….

2층에 자리한 호스피스 병동의 풍경은 생각과 사뭇 달랐다. 죽음 하면 떠오르는 무겁고 어두운, 절망의 그림자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가을볕이 드는 아늑한 로비 창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환자부터 복도에서 산책하는 환자들 모습이 일반 요양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병동에서 만난 갈바리의원 최종순 원장 수녀는 "나이가 적고 많음을 떠나 자신이 앞둔 죽음을 인정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며 "환자들이 오늘 마음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여도 내일이면 삶에 대한 미련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죽음에서 부활한 이가 없기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설명이다.

똑같은 죽음 역시 없다. 환자들은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석 달 가량을 이곳에서 보내며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기적이 일어난 적 있냐"고 묻는 환자부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인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보호자도 있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의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들도,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폐암 말기로 입원 중인 노지원(가명, 59)씨 얼굴에 엷은 웃음꽃이 피었다. 9개월 난 손자의 재롱에 굳게 닫았던 말문도 열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찾은 아들 노진석(33)씨는 "아버지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며 말씀도 거의 안 하신다"고 말했다. 아들 노씨는 "아버지가 섭섭한 게 있으면 풀고 가셨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라고 털어놨다.

수도자와 의사, 간호사 등 호스피스 공동체 구성원은 환자가 영적ㆍ육체적으로 고통 없이 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돕는다. 환자와 가족이 마음에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잘 이별할 수 있게 돕는 역할도 한다. 최 원장 수녀는 가족의 이별 준비도 중요하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자매님이 휴가를 내고 환자인 어머니와 두 달간 시간을 보냈어요.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서로 떠나보낸 이들은 임종도 평화롭게 맞으며 남은 가족 역시 슬픔을 빨리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
 
"오래 냉담을 했었죠. 이제야 하느님 앞에 다시 서고 신앙을 되찾게 됐습니다."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인 이요셉(54)씨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씨는 "간경화로 오랜 투병 후 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며 "청주 성모꽃마을에서 암환자 세미나를 듣고 냉담을 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다시 신앙을 찾아서 마음은 너무 편하다"고 웃었다. 그를 따라 자녀들 역시 오랜 냉담을 풀었다. 가족은 그들에게 닥쳐온 가장 큰 시련을 신앙의 축복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줬다.

이씨는 갈바리의원에 입원 후 마음이 안정되자 속마음을 가족에게 털어놨다. 아내와 세 자녀 역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아쉬운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십수 년 넘는 오랜 투병 탓에 진솔한 대화가 어색했던 가족은 종이에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전했다.

이씨는 큰딸에게 띄운 편지에서 "여유가 없어 해달라는 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너는 나의 첫 행복이었어. 그만큼 영원히 간직할게. 언제 다시 만나도 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딸 역시 "오늘 아빠의 마음과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좋았어. 이제야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늦게 철든 딸이라 미안해. 지금도 앞으로도 나에게 최고의 아빠야. 내일부터는 울지 말자 아빠"라는 말을 편지에 담았다. 이별을 앞두고 가족은 서로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됐다.

문득 햇살에 비친 이씨의 눈을 바라봤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불안함도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을 앞둔 이의 눈이 어쩌면 저토록 티 없이 맑을 수 있을까. 인사를 건네고 병실을 나서는 길, 이씨 병실 침상 머리맡에 붙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 마지막 문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당신이 나를 만나러 올 때 하늘나라에 우리의 천국을 만들어 놓을게. 당신도 함께할 수 있는 굳은 믿음을 갖고 하느님께 매달려보자. 진정으로 사랑했어. 아름답게 마무리하자. 사랑해 여보." [평화신문, 2013년 11월 3일, 백영민 기자]

 

 

갈바리의원 원장 최종순 수녀 인터뷰


"준비없는 죽음,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고통"



"젊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묵상이 필요합니다."
 
최종순 수녀는 "신앙인이라도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생의 끝을 어떻게 잘 마감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고 기도하고 묵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이별,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에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까닭이다.

이런 현상에는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의식, 정확히 표현하면 죽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한몫한다. 최 수녀는 "신자조차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있지만, 호스피스는 임종만을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며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하고 가족과 잘 이별할 수 있게 돕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최 수녀는 '사전의료의향서'를 미리 쓸 것도 권했다. "계획하지 않으면 결국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준비가 없다면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죽음을 바라보는 행위는 그저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갈바리의원은 1963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설립한 의료기관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호스피스를 도입했다. 2012년 사별가족 만족도 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모범적인 호스피스 의료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3일, 백영민 기자]

 

 

호스피스, 거룩한 임종 돕는 사랑의 동반자


전국 40곳 운영…통증 완화ㆍ화해의 여정 도와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존엄성 유지



10월 28일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별관 6층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국내 첫 병동형 호스피스인 가톨릭대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는 언뜻 보면 여느 병동과 어느 것 하나 다를 게 없다. 병상은 23개. 타 병동보다 훨씬 깨끗하고 조용하다. 병동엔 말기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돕기 위해 교수 2명과 임상강사 1명 등 의료진뿐 아니라 간호사 18명, 사회복지사 1명에 봉사자는 60여 명이나 활동한다.

올해로 만 10년째 봉사 중인 이건숙(베로니카, 55)씨는 지난해 초 타계한 실바노씨를 잊지 못한다. 30대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냉담하던 이였다. 단기 출가를 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기에 봉사자들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간병하던 부인을 통해 겨우 말문을 텄다. 꾸준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덕에 마음을 열고,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

사람은 길고 짧은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죽는다는 걸 부인과 아이들에게 전해준 그는 장례식장 선정에서 수의 마련, 장지 선택까지 가족들과 함께 침착하게 준비했다. 그리고서 봉사자들의 성가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떠났다. 불교식 49재까지 함께하고, 사별가족 지지팀 모임을 통해 요즘도 유족들과 함께하면서 하느님 안에서 각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15년째 서울성모병원에서 봉사 중인 박은숙(히야친타, 60)씨도 "다들 죽음이라는 게 두렵고 나하고는 무관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 다들 삶과 죽음을 떼어놓고 사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호스피스가 알게 해준다"면서 "호스피스를 통해 제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면서 성령의 힘으로 저도 모르게 제 모습이 변화되는 걸 느낀다"고 고백한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서 일하는 팀장 라정란(헨리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는 "호스피는 사랑이다"고 말한다. "죽음을 예견하며 들어오지만,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 무엇보다도 나 자신, 나아가 절대자 하느님과 화해하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으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같은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 산하 호스피스 기관은 서울 12곳을 비롯에 전국적으로 40곳에 이른다. 대학병원이나 보훈병원 등도 원목실을 통해 함께하는 경우도 적잖다. 청주교구 성모꽃마을과 같은 독립형 호스피스시설도 있다.

 

이들 센터는 환자들 통증만 완화시켜주는 것뿐 아니라 살아온 삶의 여정 속에서 빚어진 갈등의 골을 해소하고 화해의 여정을 걷도록 돕고 있으며 가정 호스피스, 사회복지적 지원, 사별가족지지모임까지 지원하고 있다. 환자들이 인간존엄성을 잃지 않고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도록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돕는 것뿐 아니라 유족들까지 살핀다. 이를 위해 의료진과 간호사, 사회복지사, 봉사자 등이 팀을 이뤄 다 함께 돕고 있다.

아쉬운 건 노인성 질환이나 신장, 심장병 등 여타 환자들은 잔여생명 기간이 6개월을 넘기기에 거의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 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사업이 '암 정보 10개년 계획'에 포함돼 있어 암 환자만 보험수가가 주어지면서 생긴 맹점이다. 외국은 암환자 이외에 다른 말기환자들도 호스피스센터를 이용할 수 있어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보험수가에 다른 말기환자들도 포함해 이들도 호스피스센터를 이용하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 총무이사 이은정(바울라,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는 "태어날 때 축복이듯이 죽을 때도 축복 속에서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생명존중이자 사랑인 호스피스에 교회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3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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