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5일 (금)
(녹)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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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26 ㅣ No.651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상)


본당 사도직 전담 수녀회로 설립

 

 

-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창립자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제공.

 

 

‘빠스또렐레’(Pastorelle). 이탈리아어로 ‘작은 여성 목자들’을 뜻하는 이 말은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수녀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자기 양들을 알고 그 양들을 위해 목숨 바치며, 가장 약한 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 선한 목자 예수님의 정신을 산다는 의미다.

 

1938년 10월 7일 로마 근교 젠자노에서 ‘인터넷의 주보 성인’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Giacomo Alberione, 1884~1971)에 의해 설립된 수녀회는 교구 사제에게 협력함으로써 본당 사목을 돕는 목적을 지닌다. 10개의 ‘바오로 가족 수도회’의 한 지체로 바오로 가족 중 네 번째로 출범했다.

 

1910년대에 성 바오로 수도회와 성 바오로 딸 수도회를 창립하고 ‘사회 홍보 수단 사도직’을 개발해 낸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미 이들 수도회 설립 전에 본당 사도직 전담 수녀회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1907년 사제서품을 받고 이탈리아 북부 나르촐레 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한 경험을 통해 그는 당시 본당 사목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수녀회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회에 봉사하는 직무에 여성들이 귀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해였다. 창세기의 말씀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경험에 의해 ‘사제적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의 사목적 직무 협력과 가치를 직관한 것이었다.

 

하느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분의 의지를 기다렸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필생의 소명으로 여겼던 출판 사도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니베스 네그리 수녀를 비롯한 성 바오로 딸 수녀회 회원 5명으로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를 출발시켰다. 자신의 사목 체험을 토대로 30여 년의 기도와 기다림과 준비를 거친 수도회의 탄생이었다. 이로써 이탈리아 로마 젠자노에서 사목 사명과 백성의 생명을 위해 전적으로 투신하는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의 첫 번째 공동체가 시작됐다.

 

회원들은 수도회 카리스마에 따라 맡겨진 양들을 선한 목자 예수님께 인도하고 돌보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건설한다. 본당 사목을 위해 세워진 만큼 수녀들의 소명은 ‘사랑’이다. 맡겨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한계가 없으며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며 넒은 마음으로 고통을 나누고 위로해 주는 것이다. 수도 정신에 따라 본당 일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본당 사제처럼 교회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자세다.

 

수녀회는 1953년 6월 23일 교구 승인을 얻은 데 이어 1959년 6월 29일에는 성 요한 23세 교황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설립 이듬해인 1939년 브라질에 처음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 19개국에 진출해 활동 중인 수녀회는 2020년 7월 현재 전 세계에서 600여 명의 회원이 본당 사도직 분야에서 소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7월 26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중)


시대 상황에 맞게 사도직 실천

 

 

-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초창기 창립자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맨 왼쪽)과 총장 마드레 첼리나 수녀(알베리오네 신부 오른쪽).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를 설립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성은 그 스스로 ‘또 하나의 바오로 사도가 되고 싶다’고 말한 대로 바오로 사도의 영성과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하는 것,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섬기는 것이 알베리오네 신부 영성의 기초를 구성한다.

 

그는 바오로 사도처럼 열정적인 활동가요 저술가면서 동시에 깊은 영성가요 관상가로 평가된다. 1971년 선종할 때까지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기도를 바쳤다.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지 않는 사람은 수도자라 불릴 자격도 없으며 사실 수도자가 아니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만큼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는 복음화 활동과 교리교육을 통한 말씀의 봉사, 생명력 있는 전례 봉사, 사목 협력자들의 양성, 그리고 시대와 장소의 필요에 따라 카리스마에 부합하는 여러 형태 봉사에 교회 목자들과 평신도들과 교회 소명을 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 공동으로 참여한다.

 

회원들은 하느님께 대한 봉헌과 더불어 본당 공동체에 대한 봉사의 생활을 살며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동참하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 즉 목자이시고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을 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가운데 사제직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적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또 선한 목자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 백성의 어머니요 자매로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사목적 직무에 협력한다. 그리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주보성인으로 모신다. 베드로 사도에게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충실하면서 무상과 기쁨으로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배우고, 바오로 사도에게서는 가장 적합한 사목 형태를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와 사목적 직무를 연구하는 정신을 배운다.

 

회원들은 교회 목자들과 상호 협력하에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들을 선한 목자인 예수께 인도하고 돌보면서 그리스도의 사목적 사명에 참여한다. 가장 모범적인 가정이었던 성가정에 예수님과 마리아가 있으셨듯이 본당에는 사제와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수녀가 있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 젊은이, 영육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커다란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임종자들을 준비시키고, 병자들에게 병자성사로 위로와 힘을 주고 마지막엔 묘지에까지 배웅해 준다.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회원들은 이처럼 사제에게 협력하며 교리교육, 갖가지 요구되는 도움, 위안을 주는 사도직을 시대 상황에 맞게 실천함으로써 예수님 구원 사업에 동참한다. 설립 목적에 따라 본당에서 교리교육, 전례, 사목 봉사자 양성을 담당하는 등 전적으로 본당 신자들의 믿음ㆍ희망ㆍ사랑의 성장을 돕고, 그리스도교 공동체 여정에 필요한 면들을 함께한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8월 9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하)


김수환 추기경 초청으로 한국 진출

 

 

- 지난 6월 29일 한국에서 19년간 이주민 사목을 펼친 루시아 올랄리아 수녀(주례 사제 왼쪽) 송별미사 후 회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제공.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이하 수녀회)의 한국 진출은 1983년 당시 서울대교구장 故 김수환 추기경 초청으로 이뤄졌다.

 

그에 앞서 1979년 가을, 알베르타 스칼렛 수녀가 한국과 인도를 방문해서 상황을 살폈고 그해 11월 한국인 첫 성소자 손정명씨를 만나는 등 한국에서의 활동 가능성을 모색했다.

 

수녀회의 사목 사도직 특징은 자기 양들을 알고 그 양들을 위해 목숨 바치며 가장 약한 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 선한 목자 예수님의 정신을 사는 것이다. 수녀회는 이를 위해 복음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지역 교회 안에 머문다. 통상적으로 본당 관할 구역에 있으며 사도직을 수행하지만, 항상 교회의 목자들과 상호 협의로 본당 간에, 그리고 교구 및 국가 차원에서도 활동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가 가난한 본당을 선호한다는 점에 주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대교구의 이런 관심 속에 1983년 4월 12일 수녀회 총장 클라우디아 피에몬떼 수녀가 평의원들과 함께 한국의 빠스또렐레 설립을 인준했다.

 

같은 해 8월 17일 알베르따 스칼렛 수녀와 함께 두 명의 수녀가 한국에 도착했고 서울 논현동 성바오로서원 3층에서 생활하며 본격적인 한국교회 안에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1985년 1월 필리핀지부에 입회해 양성을 받았던 손정명 수녀가 첫 서원 후 귀국했고 1986년 6월에는 5명의 지원자가 입회했다. 그해 11월에는 서울 길음동에 본원 건물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했다.

 

수녀회는 1987년 본원에 ‘선한 유치원’을 개원했다. 선한 유치원을 개원한 목적은 유아 교육을 가정 사목까지 연결하는 것과 함께 양성자들의 양성을 위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바오로 가족 정신으로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유치원은 현재까지 서울 성북구 지역에서 가톨릭 정신에 따라 유아 교육에 헌신하는 유치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수녀회는 설립 초기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일정 수에 한해 무료로 교육하면서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있다.

 

서울 한남2동 국제 외국인 본당에서도 사목 활동의 틀을 놓았던 수녀회는 1991년 5명의 수련자가 첫 서원을 하면서 본당 사도직을 시작하는 궤도에 올랐다. 이후 1993년 안동교구 풍기본당에 분원 마련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와 안동교구, 춘천교구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춘천교구에서는 다문화 가정지원센터와 가산 이주노동자 지원센터에서 이주민들을 돕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등에도 파견돼 다양한 협력을 통해 선한 목자 예수님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8월 16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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