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월)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강론자료

민족들의 복음화-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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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8-10-30 ㅣ No.1

’민족들의 복음화(福音化)를 위한 미사’

<고유 독서와 복음>

        이사야 2,1-5 로마서 10,9-18 마태오 28,16-20

    1998. 10. 18.

 

주제 :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는 우리의 삶이다.

 

오늘은 세상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쉬운 말로 풀이하면, 우리와 더불어 이 세상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와 그 국민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그 말씀을 이웃들에게 말씀을 들려줄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힘을 얻고 행복을 얻을 기회에 가까이 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이웃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여 삽니다. 우리가 주님께 한 주간을 봉헌하는 주일을 맞아 이 곳 고양동 성당에 모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젼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동물들도 모여 삽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을 ’공동체’라 부르지만, 동물이 모여 사는 것을 우리는 ’무리 지어 산다, 또는 떼를 지어 산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일과 동물이 모여 사는 특징이 다르기에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게 좋은 일들이 생기면 이웃들에게도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고하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의 모임이라고 하면서도 이러한 특성을 잃어버린다면, 동물들의 모임인 ’무리 또는 떼’와 하등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말씀을 전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단순히 ’고양동’성당의 교세만 늘리겠다는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삶의 기쁨으로 초대하자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중심에 두고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이 복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올바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어볼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기쁘고 활기찬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호된 꾸짖음도 담고 있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요, 복음입니다.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그 복음을 대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았기에 삶의 기쁨을 얻은 사람도 있고, 걸림돌로 생각하여 그 말씀에 걸려 넘어져 버린 사람도 있으며, 새로운 뜻을 찾아 지금도 그 말씀을 붙잡고 애쓰는 사람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역할을 하는 복음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엄숙하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고 말입니다.  지난 6월 29일 서울 교구장이 되신 정진석 대주교님도 앞으로 8년 이내에 서울 교구 내의 본당을 현재 200개에서 40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기쁨을 이웃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가지 더 하신 말씀은 앞으로는 냉담자의 회개를 위해서 노력하는 일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더 노력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에 복음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기에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당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더라도 내가 복음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은 탓으로 다른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분명 슬픈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척,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끼어있다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이 미사에 함께 하신 여러분의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지금부터 3600년 전에 쓰여진 말씀이지만, 세상 종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다른 모든 것보다도 높은 위치로 올라서는 날, 세상에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뜻이 자유롭게 이 세상에 통하는 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멸망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더 널리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널리 펼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여러분이 행동으로 보여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바라는 일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복음을 전하다가 당신의 꽃다운 나이 서른세살<33살>에 인간의 생명을 마칠 수밖에 없었고,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많은 성인과 성녀들 역시도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우리 땅의 103위 성인들도 그 복음을 박해시대에 증거하다가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축복이 무엇일까?’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하느님과 더불어 축복을 누리신다고 믿는 일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신앙을 선택하고, 그 신앙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擔保)로 거는 도박(賭博)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들은 그 도박에 목숨이라는 패를 거신 분들입니다.

 

오늘 두 번째로 들은 로마서 말씀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쁘다는 소리,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저도 여러분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말씀드립니다만, 그 효과는 제가 짐작하지 못합니다. 움직이는 일은 제가 하는 일이지만, 그 효과를 거두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그 첫걸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의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고 행동을 통한 실천으로서 우리는 구원의 열매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을 미처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는 행동이 하느님께 영광이 될 수 있기(1고린토 10,31)를 함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선교를 위한 우리의 발걸음이 가볍고 우리가 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잠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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