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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과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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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05 ㅣ No.1325

[생명사랑]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과 가톨릭교회

 

 

- 겟세마니의 고통, 엘그레코 1608년경.

 

 

예수께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그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으라”하시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오 26장 38-40절)

 

오늘은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라에서 이 법률의 제정을 추진키로 했을 때 우리 천주교회는 ‘연명의료결정 제도화’가 생명경시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염려가 컸습니다. 그래서 선뜻 이 논의에 참여하길 망설였습니다만 연명의료제도화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에서 빠질 경우 자칫 안락사까지도 용인하는 등의 최악의 법률도 나올 수 있겠다는 우려가 더 컸기에 우리 교회도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이 논의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3년여의 긴 논의 과정을 거쳐 이 법률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회에서 법안을 심의 하는 과정에서 7개의 유사한 법안이 병행심의 되면서 가톨릭 정신과는 다른 그리고 원치 않은 조항들이 법안에 삽입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법안은 한 편으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우려스럽게 여겨지는 부분도 많아 앞으로 개정이 필요한 법률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률을 가톨릭 정신에 따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기에 묻고 답하는 형태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이 법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생의 마지막 시기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기본원칙과 연명의료결정의 관리체계, 그리고 연명의료의 결정과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제1조)이 목적입니다.

 

 

2. 연명의료 결정이란 무엇인가요?

 

이 법률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제2조, 4-5항 참조)합니다. 반면에, 통증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제19조, 2항)합니다. 그러므로 환자가 장기간 의식 없이 식물상태에 있더라도, 영양분·수분 공급은 중단할 수 없습니다.

 

 

3. 언론에서는 이 법률을 ‘존엄사법’ 혹은 ‘웰다잉법’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요?

 

모두 잘못된 표현입니다. 우리 사회가 사용하는 ‘존엄사’는 종종 ‘부작위(반드시 해야 할 것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행위)에 의한 안락사’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식물상태 환자에게 영양분·수분 공급을 중단한다거나,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유익한 치료를 임의로 거부하여 죽음을 초래하는 것까지도 존엄사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볼 때, ‘존엄사’는 ‘안락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웰다잉법’ 역시 가톨릭교회의 시각에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연명의료 결정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가 ‘잘 살도록’ 하려는 것이므로, ‘잘 죽게 한다’는 뜻의 ‘웰다잉’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이 생명경시 의식을 부추길 것을 경계합니다.

 

 

4. 연명의료 결정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첫째, 연명의료계획서(병원에서 담당의사가 환자의 의향에 따라 작성하는 문서)와 둘째, 사전연명의료의향서(19세 이상 성인이 작성하는 문서)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장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장차 임종과정에서 실시될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미리 표명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이 반드시 참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충분한 지식과 정보가 없이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에게 해로울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질환이 말기에 접근할 때, 담당의사와 연명의료에 대하여 미리 대화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요?

 

법률은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 있고 담당의사 등의 확인이 있다면, 이를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환자의 의사로 간주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결국 환자 자신이 아닌 가족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될 수 있어, 생명경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6. 호스피스 · 완화의료에 관한 규정은 어떤 것이 있나요?

 

호스피스 대상 질환이 확대되어, 말기 암뿐만 아니라,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의 말기 환자도 호스피스의 돌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가 호스피스의 체계적인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호스피스 이용의 기반을 조성하는 정책을 마련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 법률은 호스피스를 입원형, 자문형, 가정형으로 구분하여 다양한 방법을 규정하고 있으나, 여전히 병원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7. 가톨릭교회는 이 법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생명 존중’과 ‘전인적 돌봄’의 기본정신이 실현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본당에서는 교우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영양분·수분 공급을 중단할 수 없다는 점, 연명의료에 관한 사항은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듣고, 담당의사와 함께 계획해야 한다는 점 등) 가톨릭 의료기관에서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과 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하여 의료진을 교육하고 필요한 절차와 세부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올바른 이해입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 시기를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전인적 돌봄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많은 환자분이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에게 드리는 권고사항 

 

① 인간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귀함을 잊지 맙시다.

② 생의 말기에 있는 환자를 돌보는 기본 정신은 ‘생명존중’과 ‘전인적 돌봄’입니다.

③ 영양분·수분 공급, 통증조절 등 기본적 돌봄은 의무입니다.

④ 연명의료의 실시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들으십시오.

⑤ 가톨릭교회가 권장하는 연명의료 결정 방법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혹시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셨더라도, 자신의 질병이 말기에 접어들 때, 담당의사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⑥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존중과 전인적 돌봄을 실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평온하게 ‘잘 살게’ 해주는 방법이므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많이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7월호, 지영현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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