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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13: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8일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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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09 ㅣ No.1224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3)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8일 피정


권일신,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내다

 

 

「성경광익」 표지와 「성경광익」 앞쪽에 수록된 ‘피정근본’.

 

 

권일신이 용문산 절에서 가진 최초의 피정

 

1785년 3월 명례방의 집회가 추조에 적발되면서 천주교 신앙 집단의 존재가 수면 위로 처음 드러났다. 형조판서 김화진(金華鎭, 1728~1803)은 뜻밖에도 문제를 키우지 않고 중인(中人)인 김범우(金範禹, ?~1786) 한 사람만 처벌한 뒤 서둘러 사태를 봉합했다. 관련자들이 모두 쟁쟁한 집안의 후예들이어서, 자칫 큰 파란으로 번질 우려가 있었다. 이 와중에 리더였던 이벽이 그해 초가을에 전염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조선인으로서 처음으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은 배교를 공언하고 「벽이문(闢異文)」까지 공표하며 이탈을 선언한 상태였다. 정약용 형제 또한 아버지의 밀착 감시 아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최고의 이론가 이벽의 죽음 이후, 교회의 중심 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피치 못하게 천주교회의 새로운 리더 역할을 맡게 된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하베리오, 1751~1791)은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 1739~1830)과 함께 피정을 결심하게 된다. 관련 내용이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온다. 이 설명의 근거는 말할 것도 없이 다산의 「조선복음전래사」였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권일신은 활발한 전교 활동의 와중에 피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듯하다. 서학서를 펴놓고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교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더 굳건한 영성의 확립과 교리 이론의 장악이 절실했을 것이다. 권일신은 자신의 신심과 교리 지식이 이벽에 결코 미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달레는 이때 일을 이렇게 썼다. “그는 규칙적인 피정(避靜)을 할 결심을 하고, 자기의 계획을 더 쉽게 실천하기 위하여 용문산에 있는 어떤 적막한 절로 들어갔다. 친구 중에서는 오직 한 사람, 조동섬만이 그를 따라갔다. 절에 도착한 그들은 피정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주님과 그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바람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 즉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냈다.”

 

이때 권일신이 찾아갔다는 용문산의 적막한 절은 어디였을까? 권일신의 집이 있던 감호(鑑湖)를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의 양평읍 쪽에서 남한강을 건너 용문산 중턱에 숨은 절 사나사(舍那寺)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용문사는 반대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 원주 문화영성연구소 소장 한글본 「성경광익」 11책. 표지에 성경직해로 썼으나, 내용은 성경광익이다.

 

 

시끄러운 곳을 피해 고요히 수행하다

 

피정(避靜, retreat, recessus spiritualis)은 말 그대로 고요한 곳으로 피해 들어가는 것이다. 시끄러운 곳을 피해서 고요함을 취한다는 뜻의 피뇨취정(避鬧取静), 또는 피속추정(避俗追靜) 즉 속세를 피해 고요함을 추구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예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신 일을 본떠 시작된 것이, 16세기 성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of Loyola)가 자신의 저서 「영신수련(靈身修鍊, Exercitia Spiritualia)」을 통해 실제적인 피정 방법을 제시하면서 오늘날까지 천주교회에서 보편적인 신심 수련의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권일신이 8일간의 피정에 들어가면서 근거로 삼은 서학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성년광익(聖年廣益)」 두 책이었음에 틀림없다. 8일이란 피정 기간도 「성경광익」에 규정된 것이고, 이 책에는 8일간 매일매일의 시간표와 묵상 제목까지 제시되어 있다. 또 묵상의 구체적 내용은 「성년광익」에 실려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이야(J.F.M.A. de Moyriac de Mailla, 馮秉正, 1669~1748)의 저술이다. 그는 중국어와 만주어에 능통하고 중국 문화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지닌 인물로, 두 책 외에도 「성세추요(盛世芻蕘)」와 같은 교리서와 신심서를 펴냈다. 「성경광익」은 「성경」의 중국어 완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경직해(聖經直解)」를 확장하여 매주 미사에 맞춰 성경 본문과 이에 대한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제시한 책이고, 「성년광익」은 날짜별로 정리한 가톨릭 성인전과 묵상자료집이다.

 

「성년광익」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까지 성인이 되는 바탕은 묵상에서 말미암은 것이 대부분이다. 고금의 여러 성인이 서로 전해온 것을 두루 소급해보더라도 이 한 가지 길을 버리고서 능히 큰 덕과 기이한 공을 이룬 경우는 거의 없다.(從來作聖之基, 多由於默想. 歷溯古今聖聖相傳, 鮮有舍此一途, 能使大德奇功.)” 두 사람이 피정이 진행된 8일 동안 묵언 수행을 다짐한 것은 이 첫 문장 때문이었다.  

 

권일신은 장차 조선천주교회에서 대덕기공(大德奇功)을 세워 기사귀정(棄邪歸正), 즉 삿됨을 버리고 바름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마땅히 한 번에 8일을 기준으로 삼아 거행해야 한다”고 한 것을 권일신이 그대로 따라 했다. 또 「팔일총강(八日總綱)」에는 “8일 중에 날마다 3차례 묵상하고, 매번 1시간을 쓴다.”면서 그 자세한 수행의 방법을 설명했다. 날마다 묵상하는 제목의 차례는 반드시 「성경광익」과 「성년광익」 두 책에 제시된 제목을 순서대로 진행하되, 순서를 건너뛰거나 다른 날 할 것을 미리 앞당겨 해서도 안 된다고 적었다. 이 과정 중에는 속무(俗務)를 완전히 손에서 떼어냄으로써 다른 생각으로 분심이 들지 않게 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앞쪽에 실린 「8일 내 묵상간서제목(默想看書題目)」을 보면 첫날의 묵상 주제는 ‘잠시 살다 가는 인생을 잘 쓰자(善用暫生)’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小心時候)’, 그리고 ‘영혼을 잘 보살피자(小心靈魂)’이다. 이것을 세 차례에 걸쳐 1시간씩 묵상한다. 제목 아래 ‘「성년광익(聖年廣益)」 1편 14일’과 같이 함께 읽을 대목이 지정되어 있다. 이를 이어 성 바오로 전기와 성 안토니오의 전기를 읽고 묵상한다. 그리고 다시 ‘경기(輕己)’, ‘중령(重靈)’, ‘진심(盡心)’의 세 화두를 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기도한다. 역시 매 항목마다 두 책에서 엮어 읽을 대목을 지정해 두었다.

 

하루의 일정은 새벽 5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8시까지 시간표에 의해 진행되었다. 대단히 빡빡한 강행군이었다. 8일간 두 사람은 두 책을 옆에 두고 서로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피정의 일정을 소화했다.   

 

 

명례방 집회와 「성경광익」

 

이렇게 볼 때, 당시 권일신과 조동섬은 그냥 단순히 “조용한 사찰로 가서 기도와 묵상 등으로 신앙을 실천”한 것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각오와 다짐 아래 교회 지도자로서 부족한 자질을 채우고, 신심을 고양시켜 천주 대전에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비장한 각오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성경광익」과 「성년광익」 두 질의 책을 펼쳐가며 8일 피정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 천주교회에서 최초로 진행된 본격 피정이었다.

 

이 사실은 여러 문제를 환기시킨다. 먼저 1785년 명례방 집회 당시 이벽이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강론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던 책이 다름 아닌 「성경광익」이었고, 당시 이들이 이 책과 함께 「성년광익」도 열심히 읽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성경광익」은 앞쪽의 피정에 대한 설명 이후로는 매주 미사에서 읽을 성경 한 대목과 이를 이어 ‘의행지덕(宜行之德)’이라 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한 가지 덕목에 대한 묵상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끝에 실은 ‘당무지구(當務之求)’는 그 아래에 기도의 제목을 적고, 기도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성년광익」은 앞쪽에 1년 365일에 따라 주제문에 해당하는 「경언(警言)」을 제시한 뒤, 날마다 한 분의 성인전을 소개하고, 그를 통해 배우는 ‘의행지덕(宜行之德)’과 기도문인 ‘당무지구(當務之求)’를 수록했다.

 

당시 명례방 검거 당시의 모임은 단순한 교리 연구 모임이 아니었다. 이벽이 주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해당 주일의 성경을 읽고, 이에 대해 설명한 뒤, 의행지덕에 대해 강론하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권일신은 이벽보다 연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제자라 일컬으며 책을 옆에 끼고 모시고 앉아 있었다고 「벽위편」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 모임이 두어 달 되었다고 한 시점이었으므로, 권일신의 입장에서는 이벽에게 강론을 듣지 못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이해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을 터였다.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이들의 피정을 소개한 뒤, “진정한 천주교 정신에 잘 맞는 이러한 실천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피정 후에 가르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 한 것이 확실하다”고 썼다. 그들은 영성이 충만해져서 산을 내려왔고, 8일간의 영적 기도로 얻은 은총으로 침체에 빠진 조선 교회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9일,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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