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강론자료

사순 3 주일-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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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eliapark] 쪽지 캡슐

2000-03-26 ㅣ No.195

사순 제3주일(나해)

2000. 3. 26.(수색)

. 제1독서 : 출애굽20,1-17./ . 제2독서 : 1고린1,22-25./ . 복음 : 요한2,13-25.

 

벌써 3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희망의 21세기 첫봄이라며 들뜬 기분으로 3월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3월도 마지막 주가 되었고, 이미 우리 가운데 봄의 기운이 넘쳐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과 한숨으로 이 봄을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습, 즉 신문과 TV에서 알려주고 있는 우리 세상의 모습이 전혀 희망적이지 못하고 여전히 절망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 신문이나 TV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사는,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된 기사입니다. 곧 다가올 4월 중순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예정이니 당연한 것이라도 볼 수 있겠지만..., 그 기사의 내용들이 내용이다 보니 신문이나 뉴스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첫 선거'이기에, 또 맑고 밝고 깨끗한 세상을 이루기 위한 사람들을 뽑는 것이기에 설레임과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겐 왠지 짜증스러움과 서글픔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이 21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뽑아줄 정치인들은 20세기의 낡은 행태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 애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명예와 부를 계속 유지하려고 갖은 난동을 다 부려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상대방을 헐뜯어대는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은 물론 언제나 우리가 보아왔던 모습이지만, 이러한 모습이 새천년, 21세기의 첫 선거에도 계속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고 짜증나고, 서글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거때만 되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는 정당들을 보면서..., 남과 북이 통일을 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애써야 할 판에 지역감정으로 서로를 가르고 분열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정당한 법집행인지 정치탄압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각자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우리는 암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할 것인가?' 정말 힘들고도 어렵고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이러한 암울함이 닥치지 않기 위해서, 한 두달전 시민단체들은 '총선시민연대'라는 것을 만들었고, 얼마 지나서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될 부적격자들을 발표했었는데, 지금 그 부적격자들이 아무런 해명 없이 다시 권력과 명예와 부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그 때 그 부적격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런 발표를 함부로 하는데, 너희가 그렇게 할 자격이 있느냐? 너희의 기준이 정당한 것이냐? 우리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정치인인데, 너희가 뭐라고 함부로 우리를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냐?" 그러고는 곧 지들끼리 선거법을 개정해서 그들을 괴롭혔는데, 어쩌면 이런 그들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께 유다인들이 했던 말과 너무도 흡사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런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또, 어떤 분들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시사성 강한 문제를 교회에서 사제가 강론시간에 거론한다고, "당신이 정치가도 아니면서, 왜 그런 얘기를 강론시간에 하는 거냐고..., 미사시간은 정말 거룩하고 경건한 시간인데, 하느님의 말을 전해야하지 않느냐고..., 당신이 하면 뭐 좀더 잘할 수 있을것 같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의 말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기 위해 일련의 소동을 벌이셨을 때,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나서서 한 말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런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느님은 거룩하고 경건하고 완벽한 선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미사성제는 거룩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현실과 관련이 없다면,/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아프고 힘들고 답답한데, 교회에 모여와서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신비스런 딴 세계의 말만 지껄여 여러분을 일시적인 위안만 얻게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우리 현실의 역사 속에 함께 하심을 믿는 그리스도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우리를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는 '마약'일 뿐입니다.

 

"이것들을 거두어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 말씀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성전 뜰에서 하느님께 바칠 제물과 돈을 바꾸어주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을 채찍으로 내리쳐서 쫓아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한 인간의 사랑인 찬미와 감사의 제사가 바쳐져야할 거룩한 성전이, 인간의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장사속과 맞물리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본래의 의미의 성전이 아니라, 단지 뜻없는 겉보기의 형식만으로, 때가 되면 으레 참배하고 제물과 헌금을 바쳐야 하는 하나의 관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일주일 내내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이 되면 성당에 와서 미사 한 번 드리고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예수님은 오늘 '사랑의 매'를 때리시며, 제정신 차리게 정화시키고 계십니다.

 

'사랑의 매'를 들고 성전을 원래의 뜻과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깨끗이 정화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사실 성전이란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따라서, 성전이란 말의 뜻을 그대로 새겨본다면, 이 세상 전체가, 또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성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창조하시고, 한 순간도 빠짐없이 당신의 사랑을 베풀고 계시니,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 전체가 바로 당신의 성전이 아니겠습니까. 또 당신이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더더욱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며, 미사때마다 성자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내 안에 모시니, 우리 인간자체가 하나의 성전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의 성전인 이 세상이,/ 하느님의 성전인 모든 인간이 몇몇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고 유린당하며, 하느님의 성전인 이 세상과 모든 인간들의 목적과 그 의미를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의 매', '정화의 매'를 들고 그들을 제정신 차리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인간을 차별을 두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현실,/ 이 세상을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의 성전으로 가꾸어 내지 못하고, 온갖 이기심과 욕심, 불의와 비겁한 타협으로 더럽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는 '하느님,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 말씀의 열정을 가지고/ 정화의 매,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따져 물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성전인 이 세상이 더럽혀 졌으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깨끗이 정화시키고, 부활로써 새로 세우시겠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생애가 집약된 참된 기적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적은,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 세상과 모든 인간을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위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국민들을 무시하고, 돈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기는커녕, 장사꾼과 환금상같은 약삭빠른 이기심으로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정치가들에게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기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드러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나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이기심과 욕심 가득한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성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는 기적인 것입니다.

 

이 기적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외형적인 신기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하여 묵상하는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을 위해서,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사랑으로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과 죽음을 실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그러지 못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신비한 것으로만 생각할 때,/ 이 세상을 하느님의 성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현실의 문제를 도피하려고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을 외형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뜻은 외면하는 껍데기뿐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것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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