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복음화의 맥락에서 본 가정에 대한 사목적 도전들(주교시노드 보고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10 ㅣ No.765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복음화의 맥락에서 본 가정에 대한 사목적 도전들
(2014년 10월 5-19일)
시노드 보고서(Relatio synodi), 2014년 10월 18일



차례

도입

제1부 : 들음: 배경과 가정에 대한 도전


사회-문화적 배경
애정 생활의 중요성
사목을 위한 도전

제2부 : 그리스도를 향한 눈길: 가정의 복음

예수님을 향한 눈길과 구세사에 나타난 하느님의 교육 방법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의 가정
교회 문헌에 나타난 가정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함께 사는 기쁨
가정의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상처 입고 허약한 가정에 대한 자비

제3부 : 비교: 사목적 전망

오늘날 다양한 배경 안에서 가정의 복음을 선포하기
혼인할 이들을 혼인 준비의 길로 인도하기
신혼 초기의 몇 년간을 동반하기
사회혼 또는 동거 생활 중인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
상처 입은 가정들을 치유하기(별거자들, 이혼 후에 재혼하지 않은 이들, 이혼 후에 재혼한 이들, 편부 또는 편모 가정)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이들에 대한 사목적 관심
생명의 전달과 출산 감소의 도전
교육의 도전과 복음화 안에서 가정의 역할

결론

 

 

도입

 

1. 교황님 주위에 모인 주교 대의원 회의는 그들의 기쁨과 수고와 희망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가정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합니다. 회의는 수많은 그리스도교 가정들이 그들의 소명과 사명에 응답하고 있는 그 관대한 충실성에 대하여 특별히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가정의 여정에서 장애와 몰이해, 고통에 마주치게 될 때에도 기쁨과 충실로 응답합니다. 이러한 가정들에게 교회 전체와 이 주교 대의원 회의의 존경과 감사, 격려를 드립니다. 2014년 10월 4일 토요일에 가정에 관한 주교 대의원 회의를 준비하며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전야 기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이들의 삶에서 가정의 체험의 중요성에 대해 단순하고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여 있는 우리 위에 이미 저녁이 내리고 있습니다. 기꺼이 집에 돌아가 같은 식탁에서 깊은 애정과 주고받는 선을,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만남을, 그리고 해가 저물지 않는 축제의 날을 선취하는 좋은 포도주를 다시 만나고 싶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꿈과 계획이 흩어지는 씁쓸한 저녁에 자신의 외로움과 일대일로 마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체념과 포기, 원한의 악순환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까? 얼마나 많은 집들에 기쁨의 포도주가 없고 생명의 맛이 -지혜 자체가- 사라졌습니까? [...] 오늘 저녁 우리는 우리의 기도로 이런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2. 기쁨과 시련, 깊은 애정과 때로는 상처 입은 관계들의 모태인 가정은 참으로 “인간성을 기르는 학교”(사목 헌장 52항 참조)로서 그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곳곳에서 가정 제도의 위기의 표지들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지만, 가정에 대한 갈망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금도 남아 있으며 인간성의 전문가이며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에게 쉬지 않고 깊은 확신으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촉구합니다. 그 생명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 사랑의 계시를 통하여 교회에 맡겨졌고 교부들과 영성의 스승들, 그리고 교회 교도권이 끊임없이 가르쳐 온 것입니다. 교회에게 가정은 지극히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며, 모든 신자들이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도록 파견되는 순간에 가정은 복음화를 위한 필수적인 주체가 됩니다. 우리는 많은 가정들이 보인 선교적 증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3. 로마의 주교는 결정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인 가정이라는 실재에 관하여 숙고하도록 2014년 10월 주교 대의원 회의 특별 총회를 소집하고, 그 후 다음 회의까지의 1년 동안과 2015년 10월에 열릴 정기 총회에서 그 숙고를 심화하도록 하셨습니다. “로마의 주교 주위에 하나로 모이는 것 자체가 이미 은총의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영적, 사목적 식별의 길에서 주교들의 합의체성이 드러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 대의원 회의의 체험을 이렇게 묘사하면서 하느님의 표징과 인간 역사의 표징이라는 두 가지 표징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거기에서 나오는 이중적이면서도 유일한 충실성을 그 임무로 지적하셨습니다.

4. 그러한 말씀에 비추어 우리는 우리의 숙고와 대화의 결과들을 다음의 세 부분으로 요약하였습니다. 그 세 부분은 오늘날 가정이라는 실재의 복잡한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기 위한 들음, 새로운 신선함과 열정으로 교회 신앙 안에 전수된 계시가 가정의 아름다움과 역할과 존엄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을 재고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눈길을 고정시킴,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인에 기초한 가정을 위한 교회와 사회의 투신을 쇄신하는 길들을 식별하기 위한 주 예수님의 빛에 따른 비교입니다.

 

 

제1부
들음: 배경과 가정에 대한 도전

 

사회-문화적 배경

5.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 오늘날 가정이 처해 있는 복잡한 현실을, 그 빛과 어두움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부모들, 조부모들, 형제 자매들, 가깝고 먼 친척들, 그리고 결혼으로 맺어지는 두 가정의 유대를 생각합니다. 인간학적-문화적 변화는 오늘날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며 분석적이고 차별화된 접근을 요구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들을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더 커졌고,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가 전보다 더 인정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나친 개인주의의 위험이 증대되고 있음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주의는 가정의 유대를 왜곡시키고 가정의 구성원을 섬과 같이 여기게 하며, 어떤 경우에는 주체가 스스로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자신의 갈망에 따라 자신을 이룩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게 하기도 합니다. 그 위에, 신앙의 위기도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흔히 혼인과 가정의 위기를 일으킵니다.

6. 현대 문화의 가장 큰 빈곤함 가운데 하나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개인의 삶에서 하느님이 부재하시고 관계들이 약화된 결과입니다. 또한, 흔히 가정을 짓누르고 마는 사회-경제적 현실 앞에서 느끼는 전반적인 무력감도 있습니다. 노동에서 점점 심해지는 빈곤은 때로는 악몽으로 체험되고, 과중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하여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용기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흔히 가정들은 기관들의 무관심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낍니다. 사회적 조직이라는 관점에서의 부정적 영향은 명백합니다. 인구 위기에서부터 교육의 어려움까지, 태어나는 생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노인들의 존재가 짐으로 느껴지는 것까지, 그리고 때로는 폭력에까지 이르게 되는 감정적 왜곡 등이 그 결과들입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보장하고 그들이 가정을 이루는 계획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7. 특별한 도전이 되는 문화적, 종교적 배경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회들에서는 아직도 일부다처제의 관습이 있으며, 어떤 전통들에서는 “단계적 결혼” 관습이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정략 결혼이 계속 이루어집니다. 가톨릭 교회가 소수인 국가들에서는 혼종혼과 예법의 차이가 많고 여기에는 법적 관계와 세례 문제, 자녀 교육, 그리고 신앙의 차이라는 측면의 상호 존중에 관련된 어려움들이 수반됩니다. 이러한 혼인에서는 상대주의나 무차별주의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같은 장소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하여 교회 일치 정신과 종교간 대화를 길러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서양만이 아닌 많은 곳에서 혼인 이전의 동거 또는 제도적 유대의 형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동거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 흔히는 혼인과 가정을 위협하는 사회법도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세속화로 인하여 하느님에 관한 언급은 크게 감소되었고 신앙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8. 특히 일부 국가들에서는 혼인 밖에서 태어나는 어린이들이 많고,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은 부모 중 한 편과 함께 자라거나 아니면 먼 가족이나 재혼한 가족 안에서 자랍니다. 이혼자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오직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이 결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흔히 부모들 사이에서 다툼거리가 되고, 자녀들은 참으로 가정 분열의 희생자가 됩니다. 부모들은 경제적 이유 외에도 여러 이유들로 함께 있지 않는데, 실상 그들은 자녀에 대해서 그리고 가정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성의 존엄성은 아직 더 옹호되고 진흥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 여성은 차별의 대상이 되며, 모성이라는 선물도 흔히 가치로 여겨지기보다 단점으로 여겨집니다. 여성들이 희생되는 폭력 현상이 유감스럽게도 가정 안에서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문화들에서는 여성 할례의 심각한 관습도 퍼져 있습니다. 소아 성추행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스캔들이 되고 사악한 현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쟁, 테러, 또는 범죄 조직 때문에 폭력을 겪는 사회들에서도 특히 대도시들에서 가정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그 변두리에서는 소위 거리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민은 그것이 가정 생활에 미치는 모든 결과들과 함께 우리가 대처하고 이해해야 할 또 다른 시대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애정 생활의 중요성

9.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 앞에서 세상의 많은 곳에서, 각자가 자신을 돌보고 내적으로 자신을 알며 자신의 감정과 느낌과 더 잘 조화를 이루며 살고 좋은 애정 관계들을 찾을 필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올바른 열망은 가정에서와 같이 책임 있고 연대적인 창조적 증여와 상호성의 관계를 이루려는 갈망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의 위험과 이기주의적인 삶의 위험은 이 문제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당면한 도전은, 부부들이 감정적 차원에서 성숙하고 대화와 덕과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뢰를 기름으로써 애정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혼인에서 요구되는 전적인 투신은 이기주의적인 개인주의의 유혹에 대한 강력한 처방약이 됩니다.

10. 현대 세계에는 제한 없는 애정을 강요하고 그 애정에서 가장 복잡한 측면까지 포함하여 모든 측면들을 탐색하려 하는 문화적 경향들도 없지 않습니다. 실상 애정적 나약함의 문제는 매우 시의성이 있는 문제입니다. 자기도취적인 애정, 안정되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애정은 주체들이 더 성숙해지도록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인터넷의 왜곡된 사용 때문에도 더 심해진 포르노의 확산과 육체의 상업화는 우려를 불러일으킵니다. 매춘을 하도록 강요된 사람들의 상황도 고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 안에서 부부들은 때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며,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힘들어 합니다. 많은 이들이 감정 생활과 성 생활의 초보 단계에 머무릅니다. 부부의 위기는 가정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별거와 이혼을 거쳐 개인과 사회적 유대를 약화시켜 성인들과 자녀들과 사회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출산을 원치 않는 사고방식과 세계적인 출산 정책으로 인한 인구 감소 역시, 세대들의 교체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적인 빈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을 가져올 위험이 있습니다. 생명 기술의 발전 역시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목을 위한 도전

11.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진리와 희망의 말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따라서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성찰은 인간의 가장 깊은 열망 안에서 풍요로운 토양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혼인과 그리스도교 가정의 소중한 가치는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에 물든 시대에도 인간이 겪게 되는 추구에 부응합니다. 사람들을 그들의 구체적 삶과 함께 받아들여야 하고, 그들의 추구를 지지해 주어야 하며, 실패를 겪었거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서도 하느님에 대한 갈망과 온전히 교회에 속함을 느끼고자 하는 원의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언제나 그 안에 현실을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일치하는 자비와 사랑의 역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2부
그리스도를 향한 눈길: 가정의 복음

 

예수님을 향한 눈길과 구세사에 나타난 하느님의 교육 방법

12. “현재의 도전들을 토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확인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은 눈길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는 것이고, 그분의 얼굴을 관상하고 흠숭하는 데에 머무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교적 체험의 원천으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열리고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들이 열립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10월 4일 담화). 예수님께서는 만나신 남녀를 사랑과 자애로 바라보셨으며, 하느님 나라의 요구들을 선포하시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동반하셨습니다.

13. 창조 질서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정해졌으므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계약의 은총을 알려 주시는 여러 단계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교육 방법에 따라 창조 질서는 연속적인 단계들을 거쳐 구원의 질서 안에서 전개되며, 그 하느님의 교육 방법 때문에 그리스도교적 혼인성사의 새로움은 시초의 자연적 혼인과의 연속성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 안에서,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콜로 1,16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야 하고, 동시에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깊은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선교 교령 11항). 그리스도교 생활에서, 신앙인은 세례로써 그의 가정이라는 가정 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일부가 되므로, 그는 죄에서 구원하고 충만한 생명을 주는 사랑을 향하여 끊임없이 회개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의 진보적 통합을 점차로 가져올 역동적 과정”(「가정 공동체」, 9항)을 시작하게 됩니다.

14. 예수님께서는 인간 부부에 관한 본래의 계획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 19,8)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남녀간의 결합이 풀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십니다.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 19,6) 인간에게 부과된 ‘멍에’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혼인으로 결합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의 길을 동반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완고해진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변화시키시며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그 시작을 향하게 하시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복음으로부터, 교회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의 모범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을 받아들이셨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표징들을 시작하셨으며, 하느님의 본래 계획을 회복시키는 계시의 충만으로서 혼인의 의미에 관한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마태 19,3). 그러나 동시에 가르치신 바를 실천하시어 자비의 참된 의미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나(요한 4,1-30) 간음한 여인과의 만남에서(요한 8,1-11) 분명히 나타납니다. 이 만남들에서 예수님은 죄인을 향한 사랑의 태도로 그를 뉘우치고 회개하게 하시며(“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는 용서의 조건이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의 가정

15.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남기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혼인과 가정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기본적인 세 단계로 구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처음에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가정의 견고한 기초로서 아담과 하와 사이에 첫 혼인을 제정하실 때 그 기원의 가정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창세 1,27) 그들이 자식을 낳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창세 1,28). 그래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이 결합은 죄로 손상되었고,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혼인의 역사적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혼 증서를 내 주는 가능성을 허락했던 것입니다(신명 24,1 이하 참조). 그러한 형태는 예수님 시대에 흔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오심으로써 그리고 그분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멸망한 세상과 화해시키심으로써, 모세가 시작한 시대가 끝났습니다.

16.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화해시키신 예수님께서는 혼인과 가정을 그 본래의 형태로 되돌리셨습니다(마르 10,1-12 참조). 가정과 혼인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속되었고(에페 5,21-32 참조) 모든 참된 사랑이 흘러 나오는 원천인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모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창조 안에서 시작되었고 구원 역사 안에서 계시된 혼인 계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교회 안에서 그 의미가 온전하게 계시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교회를 통하여, 혼인과 가정은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친교의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은총을 받습니다. 가정의 복음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으로 창조되는 데에서부터(창세 1,26-27 참조) 세말에 어린양의 혼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계약의 신비가 완성되기까지(묵시 19,9; 요한 바오로 2세,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리교육」) 세상의 역사를 관통합니다.

교회 문헌에 나타난 가정

17. ”수 세기 동안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관한 항구한 가르침을 견지하여 왔습니다. 이 가르침을 가장 뛰어나게 표현한 것 중의 하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에 나와 있습니다. ‘사목 헌장’은 혼인과 가정의 존엄의 증진을 한 장 전체에 걸쳐 다루고 있다(사목 헌장 47-52항 참조). 혼인을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정의하고(사목 헌장 48항 참조), 사랑을 가정의 중심에 두며, 아울러 현대 문화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환원주의와 대조되는 이 사랑의 진리를 보여 줍니다. “부부의 참된 사랑”(사목 헌장 49항)은 서로 자신을 내어 주는 선물을 의미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성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을 하나로 통합합니다(사목 헌장 48-49항 참조). 더 나아가 48항에서는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를 만나러 오시어”(사목 헌장 48항) 그들과 함께 머무르십니다.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사랑을 받아들이시어 이를 정화시키고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성령을 통하여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주시고, 그들의 삶 전체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스며들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부부는 거룩해지고 고유한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며 가정 교회를 이룹니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1항 참조). 그리하여 교회는 자신의 신비를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고유한 방식으로 그 신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바라봅니다”(의안집, 4).

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황 교도권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리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특히 요한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에서 부부애와 생명의 출산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밝혀 주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가정에 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고, 이는 인간 사랑에 관한 가르침인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와 특히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두 문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가정을 “교회의 길”이라 부르시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대한 소명을 간략하게 설명하시며 가정 사목과 사회 안에 있는 가정의 존재에 대한 기본 지침을 제시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특별히 “부부애”(「가정 공동체」, 13항)를 다루시면서,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 영의 은사를 받고 성덕의 소명을 삶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의안집, 5).

19.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남녀 간 사랑의 진리라는 주제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추어서만 온전히 이해되는 사랑입니다(2항 참조).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습니다. “배타적이고 결정적인 사랑에 토대를 둔 혼인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상이 되고, 반대로 그 관계가 혼인의 표상도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방식은 인간 사랑의 척도가 됩니다”(11항). 또한 교황님께서는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서 인간이 공동선을 경험하게 되는 자리인 사회 안에서 생명의 원칙이 되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44항 참조)”(의안집, 6).

20.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에서 가정과 신앙의 관계를 다루시며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 사랑에 사로잡혀 그 사랑의 인도를 받게 되면 실존의 지평이 넓어지고 실망시키지 않는 확고한 희망을 얻습니다. 신앙은 소심한 이들을 위한 피난처가 아니라 우리 삶을 향상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위대한 부르심, 곧 사랑을 향한 부르심을 인식하게 하고, 그 사랑이 믿을 만하고 투신해 볼 만한 것임을 보증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약함보다 더 굳건하신 하느님의 충실성에 그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53항)”(의안집, 7).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함께 사는 기쁨

21. 성사적 혼인의 필수 요소인 상호 증여는 교회 안에서 각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의 근본적 계약을 체결하는 세례의 은총에 근거합니다. 혼인하는 이들은 서로간의 받아들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전적인 증여와 충실함,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약속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선물들을 혼인의 필수 요소로 인정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교회 앞에서 서로간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신앙 안에서 성사의 은총의 도움으로, 그들은 혼인의 선익들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약속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부부의 사랑을 축성하시고 그 불가해소성을 확증하시며, 그들에게 충실성과 서로간의 온전성,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살기 위한 도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눈길은 가정 전체의 중심인 부부를 향하며 그들 역시 눈길을 예수님께로 향합니다.

22. 같은 전망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다는(콜로 1,16 참조) 사도의 가르침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자연혼에 대한 인정과 다른 종교들 안에(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참조) 그리고 한계들이 있다 해도 다른 문화 안에 있는 유효한 요소들에 대한(「교회의 선교 사명」, 55항 참조) 인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문화들 안에 말씀의 씨앗(semina Verbi)이 있다는 것은(선교 교령 11항 참조) 몇몇 측면에서 많은 비그리스도교 문화들과 사람들의 혼인과 가정이라는 실재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혼인 이외의 다른 몇몇 형태들에도 - 그러나 이들은 남자와 여자의 안정되고 참된 관계에 기초한 것이어야 합니다 - 유효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우리는 이들이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민족들과 문화들의 인간적 지혜를 바라보면서, 교회는 이 가정도 인간 사회의 필요하고 풍요로운 기본 세포로서 인정합니다.

가정의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상처 입고 허약한 가정에 대한 자비

23. 내적 기쁨과 깊은 위로로, 교회는 복음의 가르침에 충실한 가정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증언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들을 격려합니다. 그들 덕분으로 해소될 수 없고 영원히 충실한 혼인의 아름다움이 믿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정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교회 헌장 11항), 은총에 힘입어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반영하는 가정에서 사람들 사이의 친교라는 첫 교회적 경험이 성숙합니다. “인내와 노동의 기쁨, 형제애, 거듭되는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특히 기도와 삶의 봉헌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57항). 나자렛의 성가정은 그 경탄할 만한 모델이고 우리는 그 학교에서 “우리가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영적인 규율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바오로 6세, 나자렛에서 한 연설, 1964년 1월 5일). 가정의 복음은 또한 아직도 성숙을 기다리고 있는 씨앗들을 길러 주며, 마르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나무들을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24. 교회는 확실한 스승이며 배려 깊은 어머니로서, 세례 받은 이들에게는 성사적 유대 외에 다른 혼인 유대가 없고 그 유대의 단절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의 길에서 애쓰는 교회의 많은 자녀들의 나약함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적 이상의 가치를 줄이지 않으면서, 날마다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성장이 가능한 단계마다 자비와 인내로 동행해야 합니다. [...]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커다란 한계 속에서 내딛는 작은 발걸음을,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겉보기에만 올바른 생활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위안과 격려가 모든 사람에게 가닿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저마다의 잘못과 실패를 넘어 모든 사람 안에서 신비롭게 움직입니다“(「복음의 기쁨」, 44항).

25. 사회적인 혼인 계약을 맺은 이들,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 또는 단순히 동거하는 이들에 대한 사목적 접근을 할 때에, 그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 은총의 교육 방법을 보여 주고 그들이 자신들 안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충만히 이루도록 돕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몫입니다. 그리스도의 눈빛은 모든 사람을 비추어 줍니다(요한 1,9; 사목 헌장 22항 참조). 이 눈길을 따라 교회는 불완전한 방식으로 교회의 생활에 참여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의 삶 안에서도 작용함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며 그들이 살며 일하는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26. 교회는 혼인의 약속에 대해 많은 젊은이들이 지닌 불신을 이해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많은 신자들이 성급하게 그들이 맺은 유대를 끝내고 다른 유대를 맺기로 결정하는 것에 대하여 고통스럽게 생각합니다. 교회에 속하는 이 신자들은 적절하게 경우들을 구별하며 자비롭게 그들을 격려해 주는 사목적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세례 받은 젊은이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부터 교회 생활에 충만하게 참여함으로써 받게 되는 도움으로 굳세어져 혼인성사가 그들 사랑의 계획에 마련해 주는 풍요로움 앞에서 주저하지 않도록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27. 그런 의미에서 남녀간의 사회혼과 전통적 혼인에, 그리고 적절한 구별을 두면서 동거라는 현실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오늘날 가정 사목의 새로운 한 차원이 됩니다. 결합이 공적인 유대를 통하여 상당한 안정성을 갖게 될 때, 깊은 애정과 자녀에 대한 책임과 시련을 극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이러한 결합은 혼인성사를 향한 발전 과정 안에서 동반을 필요로 하는 경우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거는 미래의 결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도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28.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으로, 교회는 상처 입고 길 잃은 사랑을 겪는 교회의 약한 자녀들을 관심과 배려로 동반해야 하고, 길을 잃거나 폭풍을 만난 이들을 비추기 위한 등대의 불빛이나 횃불과 같이 사람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되찾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자비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임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동정심보다 더 나아갑니다. 자비로운 사랑은 매혹하고 결합시킬 뿐 아니라 변화시키고 고양시킵니다. 그 사랑은 회개로 초대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시지만 다시 죄짓지 말 것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태도를 갖도록 노력합니다(요한 8,1-11 참조).

 

 

제3부
비교: 사목적 전망

 

오늘날 다양한 배경 안에서 가정의 복음을 선포하기

29. 주교 대의원 회의의 대화는 “교황과 함께 교황 아래에서”(cum Petro et sub Petro) 친교를 이루며, 개별 지역 교회들에 맡겨져야 할 긴급한 사목적 문제들을 논의했습니다. 가정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절실히 요구됩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스승의 분명함을 지니고(에페 4,15 참조),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에 대한 충실함으로 이를 행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진리가 인간의 나약함 안에 육화하는 것은 그것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요한 3,16-17 참조).

30. 복음화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책임이고, 각자가 자신의 직무와 은사에 따라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부부와 가정, 가정 교회의 기쁜 증언 없이는 선포는 비록 그것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이해되지 못하거나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언어의 바다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습니다(「새 천년기」, 50항 참조).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은 여러 차례 가톨릭 가정들이 혼인성사의 은총에 힘입어 가정 사목의 능동적 주체들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31. 은총의 수위성을, 성령께서 성사 안에서 주시는 능력들을 강조하는 것은 결정적일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의 복음이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주는” 기쁨임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복음의 기쁨」, 1항)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비추어 볼 때(마태 13,3 참조), 우리의 임무는 씨를 뿌리는 데에 협력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그와 동시에, 가정에 대해 설교하는 교회가 반대받는 표적이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32. 그래서 교회 전체에게 선교적 회심이 요청됩니다. 단순히 이론적이고 사람들의 실제 문제와 무관한 선포에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위기가 혼인과 가정의 위기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흔히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이어지는 신앙의 전수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굳센 신앙 앞에서, 가정과 혼인을 약화시키는 문화적 관점들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33. 또한 그 회개는 언어가 실제로 의미를 지니게 하기 위한 언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선포는 가정의 복음이 인간 인격의 가장 깊은 갈망들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상호성과 친교와 출산 안에서 이루어지는 충만한 실현에 대한 갈망에 응답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규범을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오늘날 가장 세속화된 나라들에서도 확인되는 가치의 필요에 응답하여 가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34. 하느님 말씀은 가정을 위하여 생명과 영성의 원천이 됩니다. 모든 가정 사목은 기도하며 교회적으로 성경을 읽음으로써 가정 교회의 구성원들을 내적으로 형성하고 길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개인들의 사생활을 위한 기쁜 소식으로 그치지 않고, 부부와 가정들이 만나게 되는 여러 도전들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되고 식별을 위한 빛이 됩니다.

35. 동시에 많은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은 어려움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종교 체험들의 풍요로움에 대한 더 긍정적인 접근을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다양한 종교적 현실과 여러 민족들을 특징짓는 커다란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먼저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인정하고 그다음 이들에 비추어 한계와 결함들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36. 그리스도교적 혼인은 신앙의 여정 안에서 적절한 준비를 하고 성숙한 식별로 받아들이는 부르심이며, 단순히 문화적 전통이나 사회적이고 법률적인 요구로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과 부부를 동반함으로써 신앙 내용의 전달에 교회 공동체 전체가 주는 삶의 체험이 결합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7. 아직도 실제 사목을 특징짓고 있는 개인주의적 시각을 극복하여 가정의 복음에 비추어 그 사목을 근본적으로 쇄신할 필요성이 되풀이하여 요청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들을 더 많이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사제, 부제, 교리교사, 그리고 그 밖의 사목 일꾼들의 양성을 쇄신할 것이 여러 차례 강조되었습니다.

38. 또한 예를 들어 시장 논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등으로 진정한 가정 생활을 방해하고 차별과 빈곤과 소외와 폭력을 낳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을 고발하는 복음화의 필요성도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 조직들과의 대화와 협력이 전개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문화적 영역과 사회-정치적 영역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을 격려하고 지지해야 할 것입니다.

혼인할 이들을 혼인 준비의 길로 인도하기

39. 복잡한 사회적 현실과 가정이 오늘날 응해야 하는 도전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에게 혼인을 앞둔 이들을 준비시키는 데에 더욱 투신할 것을 요청합니다. 여기서는 덕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덕들 가운데에서도 정결은 인격 간의 사랑이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한 소중한 조건이 됩니다. 이 필요에 관하여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은, 세례성사 그리고 다른 성사들과 혼인의 연관을 강조하면서 혼인 준비를 그리스도교 입문의 여정에 뿌리를 두게 하는 것과 더불어 가정들 자신의 증거를 특히 중시하면서 공동체 전체가 더 깊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혼인 직전의 준비를 위하여 교회 생활에 참여하는 진정한 체험이 되면서 가정 생활의 여러 측면들을 심화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신혼 초기의 몇 년간을 동반하기

40. 혼인 후의 처음 몇 년은 지극히 중요하고 민감한 기간으로서, 그 기간에 부부들은 혼인의 도전과 의미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사 거행 이후에 계속되는 사목적 동반이 필요합니다(「가정 공동체」, 제3부 참조). 이 사목에서, 경험 있는 부부들이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당은 경우에 따라 협회와 교회 운동,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들을 통해서 전문가 부부들이 젊은 부부들을 도울 수 있는 장소로 여겨집니다. 부부들이 자녀라는 큰 선물을 받아들이는 근본 자세를 지니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정 영성, 기도, 주일 미사 참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부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영성 생활의 성장과 삶의 구체적 필요들에 대한 연대성을 기르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가정들을 위하여, 특히 결혼 기념일에 거행되는 전례와 신심 행위와 성찬례는 가정을 통한 복음화를 촉진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사회혼 또는 동거 생활 중인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

41. 계속해서 그리스도교 혼인을 선포하고 촉진하면서도, 주교 대의원 회의는 더 이상 그 실재를 살고 있지 않은 많은 이들의 상황에 대한 사목적 식별을 격려합니다. 그러한 이들과 사목적 대화를 시작함으로써 그들의 삶에서 충만한 혼인의 복음에 더 개방되도록 이끌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목자들은 복음화와 인간적, 영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야 합니다. 현대 사목의 새로운 감수성은 사회혼에 들어 있는, 그리고 적절한 구별을 두면서 동거에 들어 있는 긍정적 요소들을 감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제의에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분명하게 단언하면서도 그러한 상황들의 구성 요소들 가운데 아직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상응하지 않거나 이미 그 메시지를 벗어난 요소들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42. 많은 나라들에서는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험 삼아 결합하는 남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의안집, 81)고 지적되었습니다. 어떤 나라들에서 이것은 특히 전통 혼인에서 나타나는데, 그 혼인은 가정들 사이에서 합의로 이루어지며 흔히 몇 단계에 걸쳐 거행됩니다.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산 후에 교회에서 혼인 거행을 요청하는 이들의 수가 계속 증가합니다. 단순한 동거는 흔히 제도와 결정적 투신을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사고 방식 때문에 선택되지만, 확실한 삶(고정된 일자리와 임금)에 대한 기다림 때문에 선택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나라들에서는 사실혼이 매우 많은데, 이는 가정과 혼인의 가치에 대한 거부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들로 인하여 혼인하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고 그래서 물질적 빈곤 때문에 사실혼의 상태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43. 이 모든 상황들에는 건설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이들을 복음에 비추어 본 충만한 혼인과 가정을 향해 가는 기회로 변화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인내와 섬세함을 갖고 이들을 받아들이고 동반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 복음화의 주체인 진정한 그리스도교 가정들의 매력적인 증언이 중요합니다.

상처 입은 가정들을 치유하기(별거자들, 이혼 후에 재혼하지 않은 이들, 이혼 후에 재혼한 이들, 편부 또는 편모 가정)

44. 부부가 그들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교회의 도움과 동반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덕의 사목과 자비는 사람들과 관계들의 회복을 지향합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혼인의 위기 가운데 상당수는 적절한 도움과 은총의 화해 작용으로 만족스럽게 극복됩니다. 용서를 하고 또 용서를 받았다고 느낄 줄 아는 것은 가정 생활을 위하여 근본이 되는 체험입니다. 부부 사이의 용서는 영원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1코린 13,8 참조). 그러나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에게도, 사람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진정한 용서를 줄 힘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45.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는 과감한 사목적 선택의 필요성이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가정의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강력하게 확인하면서 그리고 별거와 이혼이 언제나 그것을 겪는 부부와 자녀들에게 깊은 고통을 가져오는 상처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은 가정의 약함들의 실제 현실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사목적 길들이 절박하게 필요함을 지적했습니다. 흔히 그 약함들은 온전한 자유로 선택된 것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럽게 ‘당한’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적 요인들과 문화적, 사회-경제적 요인들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의 문제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안한 것과 같은 차별화된 시각이 필요합니다(「가정 공동체」, 84항 참조).

46.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모든 가정에게 길동무가 되며 존경과 사랑으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특히 이러한 상황들에 적용됩니다. “교회는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 들을 모두 이러한 ‘동행의 예술’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 예술은 우리가 다른 이의 거룩한 땅에서 우리의 신을 벗으라고 가르칩니다(탈출 3,5 참조). 이 동행은 힘차고 꾸준한 발걸음으로 이루어지고 존중과 연민으로 가득 찬 시선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시선이 치유하고 해방시키며 그리스도인 생활의 성숙을 독려합니다”(「복음의 기쁨」, 169항).

47. 별거 중인 이들, 이혼자들, 버림받은 이들을 사목적으로 동반하려면 특별한 식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부당하게 별거, 이혼 또는 버림을 당했거나 배우자의 학대로 동거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합니다. 받은 불의에 대한 용서는 쉽지 않지만, 그 길은 은총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구들에 설립되어야 할 전문화된 경청 센터들을 통한 화해와 중개의 사목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무죄하게 상황에 희생된 자녀들이 겪게 되는 별거 또는 이혼의 결과들에 대해 충실하고 건설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언제나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 자녀들은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들이 가정 분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가능한 한 평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교회는 언제나 이혼의 상황에서 매우 자주 생겨나는 불의를 부각시켜야 할 것입니다. 특히 편부 또는 편모 가정을 동반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특별히 홀로 가사와 자녀 교육의 책임을 져야 하는 여성들을 도와야 합니다.

48. 많은 교부들은 혼인 무효를 인정하는 소송을 더 접근하기 쉽고 손쉽게, 가능하다면 무료로 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제안된 의견 가운데에는 서로 일치하는 이중의 선고가 필요하지 않게 하는 것, 교구장 주교의 책임 아래 행정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가능성, 무효성이 주지된 경우의 약식 절차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교부들은 이러한 제안들이 신뢰할 만한 판결을 보장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반대했습니다. 이 모든 경우들이 유대의 유효성이 참된지를 확인하는 것임을 재차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제안들에 따르면, 세례 받은 이들 사이에서는 성사만이 유효한 혼인이라는 점을 굳게 고수하면서, 혼인성사의 유효성을 위해서 혼인할 이들의 신앙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49. 혼인 소송과 관련하여, 많은 이들이 요청했던 절차의 간소화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 일에 투신하는 충분한 수의 성직자와 평신도 종사자들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교구장 주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구장 주교는 자신의 교구 안에서 혼인의 유효성에 관하여 양편에게 무상으로 조언할 수 있는, 합당한 준비를 갖춘 조언자들을 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역할은 어떤 직책에 의해서 또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혼인의 존엄」[Dignitas connubii], 제113조 1항 참조).

50. 이혼했지만 재혼하지 않은 이들은 흔히 혼인의 충실성의 증인들로서, 성체성사 안에서 그들의 상태를 지탱해 주는 양식을 찾도록 격려됩니다. 지역 공동체와 사목자들은 정성껏 이들을 동반해야 하며, 특히 자녀들이 있거나 그들이 매우 가난할 경우에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51.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들이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언어와 태도를 피하고 그들이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도록 도우면서 주의 깊은 식별과 그들을 깊이 존중하는 동반을 해야 합니다. 그들을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신앙과 증언의 약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바로 이 돌봄을 통하여 공동체 자신의 애덕을 표현하게 됩니다.

52.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하여 숙고했습니다. 여러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은 현재의 규율에 찬성했는데, 이는 성체성사와 교회의 친교에 참여하는 것과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사이의 필수적인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반적으로는 아니지만 특정한 경우들에 정확한 조건하에서 성찬의 식탁에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찬성했는데, 특히 취소할 수 없는 경우와 부당한 고통을 겪게 될 자녀들에 대한 윤리적 의무에 결부된 경우들에 대하여 그러했습니다. 실제로 성사에 다가가려면 먼저 교구장 주교의 책임하에 참회의 여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죄의 객관적 상황과 그것을 완화시키는 상황들을 잘 구별하면서 더 심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행동에 대한 인책성과 책임은” 여러 가지 “정신적 사회적인 요인들 때문에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735항).

53. 일부 교부들은 이혼하고 재혼하거나 동거하는 이들이 영적 영성체에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다른 교부들은 그렇다면 성사적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형태의 특성과 그들과 혼인의 신학 사이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도록 이 주제를 심화할 것이 요청됩니다.

54. 혼종혼과 관련된 문제들은 주교 대의원 회의 교부들의 발언에서 자주 되풀이되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여러 정교회들의 혼인 관련 규율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 때문에 교회 일치 분야에서 숙고해야 할 문제들이 제기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종교가 다른 이들 사이의 혼인을 위해서는 종교간 대화의 기여가 중요할 것입니다.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이들에 대한 사목적 관심

55. 몇몇 가정들은 그 가정 안에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경험을 살고 있습니다. 이에 관련하여, “동성애적인 결합과 혼인과 가정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 사이에는 이들을 동화시키거나 먼 유비라도 설정할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사목적 관심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렇지만,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남녀는 존경과 섬세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과 관련하여, 부당한 차별의 낙인을 찍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할 것입니다”(신앙교리성,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 4).

56. 교회의 사목자들이 이 문제에서 압력을 받거나 국제 기구들이 동성간의 ‘혼인’을 제도화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을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경제 원조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생명의 전달과 출산 감소의 도전

57. 생명의 출산을 개인 또는 부부의 변경할 수 있는 계획으로 축소시키는 사고방식이 확산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요인들이 때로는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출산율을 크게 감소시키고, 이는 사회 조직을 약화하고 세대 간의 관계를 위협하며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생명에 대한 개방성은 부부애의 내재적 요구입니다. 이러한 전망 안에서 교회는 장애가 있는 자녀들을 받아들이고 교육하며 감싸는 가정들을 지지합니다.

58. 이 영역에서도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개방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적 사랑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개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책임 있는 출산을 위한 자연적 방법에 관한 적절한 가르침은 이를 기초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배우자들 사이의 친교를 출산 책임을 포함하여 그 모든 차원에서 조화롭고 의식적으로 살도록 도와줍니다.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의 메시지를 재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 회칙은 출산 조절의 방법들을 윤리적으로 평가하는 데에서 인격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 어린이들을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는 입양은 가정 사도직의 특수한 한 형태로서(평신도 교령, III, 11 참조), 교도권에 의하여 여러 차례 요청되고 격려된 바 있습니다(「가정 공동체」, III, II; 「생명의 복음」, IV, 93 참조). 입양과 위탁을 선택하는 것은 불임의 경우가 아닐 때에도 부부 체험의 특별한 출산력을 표현합니다. 그러한 선택은 가정의 사랑의 웅변적 표지이며,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고 자녀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이에게 그 존엄성을 되찾아 주는 기회가 됩니다.

59. 부부의 유대 안에서도 점점 더 깊이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점점 더 충만하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애정을 성숙의 길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 생활을 길러 주는 양성의 길들을 제공할 필요성과 살아있는 증언으로 동반을 해 줄 평신도들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시간과 함께 성장할 수 있고 자애로움과 존경으로 이루어진 충실하고 깊은 사랑, 생명의 출산에 구체적으로 자신을 열어 놓음으로써 우리를 초월하는 신비를 체험하는 사랑의 모범은 큰 도움이 됩니다.

교육의 도전과 복음화 안에서 가정의 역할

60. 교육적 도전은 분명 오늘날 가정들이 마주하고 있는 근본적 도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도전은 현대의 문화적 현실과 매체들의 강한 영향 때문에 더 어렵고 복잡해졌습니다. 매일의 삶 안에서 성장의 장소가 되고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덕들을 구체적, 실존적으로 전달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가정들의 요구와 기대를 적절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부모들이 그들의 신념에 따라 자녀들에게 줄 교육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61. 교회는 받아들이는 공동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입문에서부터 가정들을 지탱해 주는 소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지금 교회에게는 과거보다 더 부모의 교육적 책임을 지지해 주고 또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을 삶의 충만한 의미로 인도하고 복음의 빛에 따른 선택과 책임으로 이끌 수 있는 개별화된 길들을 통하여 그들의 성장을 동반하도록 지지해 줄 것이 요청됩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자애, 자비, 모성적 민감함으로 인간성과 생명에 대한 주림을 채워 줄 수 있으시기에 가정들과 그리스도교 백성이 그분께 호소합니다. 사목과 성모 신심은 가정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적절한 출발점이 됩니다.

 

 

결론

 

62. 큰 자유로움 속에서 서로 경청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주교 대의원 회의 작업의 결과인 여기 제시된 성찰들은, 질문을 제기하고 또한 2015년 10월에 예정된 교회와 현대 세계 안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주교 대의원 회의 정기 총회 때까지의 1년 동안 지역 교회들의 성찰로 성숙되고 정확해져야 할 전망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내려진 결정들도 아니고 쉬운 전망들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 아래 성가정을 모델로 바라보며 이루어지는 주교들의 합의체적인 여정과 하느님 백성 전체의 참여는 우리에게 진리와 모든 이들을 위한 자비의 길들을 발견하도록 인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작업을 시작한 때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신앙의 용기를 갖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겸손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도록 초대하시며 우리에게 기원하신 바입니다.

주교 대의원 회의 보고서의 각 항에 대한 투표 결과
총 참석자 수: 183명(기권은 표시되지 않음)

번역 :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원문 보기>

영문 : http://www.vatican.va/roman_curia/synod/documents/rc_synod_doc_20141018_relatio-synodi-familia_en.html
이태리어 : http://www.vatican.va/roman_curia/synod/documents/rc_synod_doc_20141018_relatio-synodi-familia_it.html

[출처 : 주교회의 홈페이지]



2,40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