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5일 (금)
(녹)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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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4-12 ㅣ No.641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상)


하느님과 마리아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

 

 

- 마리아의 딸 수도회 창립자인 복자 샤미나드 신부(왼쪽)와 아델 수녀. 마리아의 딸 수도회 제공.

 

 

마리아의 딸 수도회(마리아니스트)는 1816년 복자 귀욤 요셉 샤미나드 신부와 복녀 아델 드 바츠 드 트랑 퀠레옹 수녀에 의해 설립됐다.

 

1789년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 혁명은 전통적인 가톨릭교회 구조를 파괴하고 근대 사회에 어울리는 원칙들을 공식화하려 했다. 혁명 세력은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외면하거나 부인하는 일을 자행했다. 이로써 교회는 신앙의 무지와 종교적 무관심, 또 신자 생활의 포기와 교계 제도의 조직적인 부패 등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1761년 프랑스 페리귀외(Perigueux)에서 태어나 1785년 사제서품을 받은 귀욤 요셉 샤미나드(Guillaume-Joseph Chaminade) 신부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런 위기를 깨닫고 교황청으로부터 ‘사도적 선교사’라는 호칭을 얻어 사람들의 신앙 회복을 위한 활동에 전념했다.

 

‘비선서 사제’로 혁명의 ‘공포시대’ 동안 비밀리에 사제직을 수행했던 샤미나드 신부는 1797년 추방돼 3년 동안 스페인 사라고사(Zaragoza)에서 기도로 시간을 보낸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성모 신심이 남달랐던 그는 이 기간에 ‘마리아의 이름으로 마리아를 통해 성삼위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단체’를 세울 의지를 갖게 된다.

 

귀국 후 1800년 보르도에서 프랑스의 재그리스도교화를 위해 마리아께 봉헌된 평신도 단체 ‘원죄없으신 마리아 신심회’(이하 마리아 신심회)를 시작한 샤미나드 신부는 1808년 ‘작은 회’의 책임자 아델 드 바츠 드 트랑 퀠레옹 수녀를 만난다. 1789년 프랑스 페가롤(Feugarolles)에서 출생한 아델 수녀는 당시 선교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작은 회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샤미나드 신부는 마리아 신심회와 작은 회의 공통점을 보고 아델과 회원들에게 두 회의 통합을 제안했고, 이에 신심회 회원들은 점차 마리아께 대한 봉헌을 깊게 하면서 수도 생활로 하느님과 마리아께 보다 완전히 자신을 봉헌하기로 한다. 이는 1816년 5월 25일 프랑스 아좡(Agen)에서 마리아의 딸 수녀회 창립으로 이어진다.

 

이후 ‘그분이 사랑받으실 수 있도록 어디든지 살 수 있고 모든 일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생명까지도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선교 열정을 보였던 아델 수녀를 따라 회원들은 무료 학교를 열고 가난한 이와 젊은이에게 읽기 쓰기를 비롯한 기본 학습과 교리 등을 가르쳤다. 특별히 피정 지도를 통해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의 열성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샤미나드 신부는 1817년 보르도에서 남자 마리아회를 설립했다. 오늘날 샤미나드 신부의 카리스마와 공동 유대로 결속된 이들 두 수도회, 평신도 마리아니스트 공동체(MLC), 평신도 재속회인 알리앙스 마리알(AM)을 ‘마리아니스트 가족’이라고 부른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4월 12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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