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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사회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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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16

사회 교리

 

 

1. 기본적 이해

 

5월 15일은 최초의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1891년)가 발표된 날로 사회 회칙의 생일이다. 나아가 사회 회칙들이 사회 교리의 원천이 되기에 사회 교리의 기원일이기도 하다. 보편된 교회는 이 첫 사회 회칙의 발표를 기념하기 위해 40주년에는 [사십주년](1931.5.15.)을, 70주년에는 [어머니요 스승](1961.5.15.)을, 90주년이 되는 해에는 [노동하는 인간](1981.9.14.)을 - 5월 15일을 맞추어 준비했으나 교황 저격 사건으로 발표일이 가을로 늦춰짐 - 백 년이 되는 해에는 [백주년](1991.5.1.)을 발표하여 뜻깊은 전통을 계승하고 레오 교황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 회칙은 시대 변천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하고 있다. 먼저 [새로운 사태]는 산업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유럽 대륙의 노동자 문제가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 문헌을 읽을 수 있는 대상은 주교 등 고위 성직자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요 스승]은 대상 독자가 전세계 성직자와 평신도로 확대되었고, 주제 역시 농업 노동을 포함시킴으로써 임금, 산업 노동에 국한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해당 지역도 아시아, 아프리카 농촌 지역 등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어서 반포된 [지상의 평화]는 지금까지의 사회 회칙이 노동, 경제라는 주제에 국한된 반면 정치, 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였고 회칙의 독자 계층을 "선의의 모든 사람"으로 명시함으로써 사회 회칙은 교회 내 문헌으로만 머물지 않고 교회 밖으로까지 과감히 확산되었다.

 

사회 교리의 바탕인 사회 회칙의 내용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바뀌기에 사회 교리 자체가 무원칙의 내용으로 오해되거나 나아가 진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곡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 교리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그 같은 오류는 쉽게 바로잡힐 수 있다.

 

사회 교리는 계시와 이성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성립하고 있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성을 강조하여 사회 교리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또는 사회론 등으로 번역하고 있고, 계시를 강조하는 입장은 사회 교시 또는 사회 교리 등의 단어를 선택하여 이 가르침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교리의 내용은 고정 불변이 아니라 신축 융통의 차원이다. 곧 계시의 진리를 이성의 도움으로 현실의 구체적 상황(Hardware)에 적절하게 대응시키려는 노력이요 행동 지침(Software)들이다.

 

시대 징표를 제대로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분석 틀과 대응 원칙이 필요한데 교도권을 가지고 있는 보편 교회는 이를 위해 우리에게 사회 교리라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 교리의 내용은 사회 원리라는 네 개의 원칙들로 엮여 있는데 사회 교리와 사회 원리의 관계는 '지도와 나침반'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세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살려면 부단한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듯 길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바뀌는 지형에서 지도와 나침반이라는 추상화된 지도(指導) 원리가 필요하다. 지도가 간단 명료한 시대 징표라면,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가리키는 나침반은 인격성, 연대성, 보조성, 공동선의 원리와 정확히 대응한다.

 

외부의 구체 상황에 대한 뚜렷한 이해와 이에 대한 대응책 강구는 확고한 내적 신념이 뒷받침한다. 교회는 세상 만사의 원인이요, 주체요, 목적은 인간이라고 가르친다. 이 같은 가르침의 바탕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의 인격성이 그 중심이다. 따라서 계시 진리나 이성 인식의 바탕으로 인격성의 원리는 사회 교리 모든 내용의 핵심이다. 그리고 인격 존재로서 인간과 그 인간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가르침이 사회 교리의 내용이며 이러한 내용은 교회의 안팎에서 두루 통용되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사회 교리는 실천 지혜로 복음 전파의 효과적 수단이며 우리의 선교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2. 연대성 원리

 

연대성의 원리는 교회의 사회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인간의 사회성을 부인하고 사회란 단지 이해 관계의 기계적 배분만을 책임진다는 개인주의나,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하고 인간을 집단의 도구로 설명하며 인간을 경제 등에 예속된 존재로 파악하고 있는 집단주의 등은 모두 올바른 사회 질서를 역행하는 이론으로 연대성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구체적으로 연대성은 각 개인은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며, 전체는 개체에 대해 책임지는 순환 관계가 형성되어 개인은 공동체를 공동체는 개인을 돌보는 내적 관계가 자리잡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생존하기 위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며 따라서 사회적 관계는 인간 본성에 기인한 것으로 좀더 완전한 사회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가 인간 개인에게 필수적이듯 사회 역시 더욱더 완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개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분업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구체적 증거이다.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과정이 분업인데 인간은 부족하고 나약하므로 이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연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대는 인간 상호간의 협력이 바탕이 되는 합목적적 행동이다. 흔히 연대는 인간의 물적 욕구 충족 수단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발달과 인격적 성숙이 주된 영역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따라서 분업 현상도 물적 생산성의 향상만이 아니라 인격 완성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사회 경제 현상의 인격화가 필요하다.

 

연대성의 원리는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상호간 '주고받는 관계'로 사회 구성원 개인의 수준은 공동체 전체의 수준을 결정지으며 동시에 공동체 수준은 개인의 수준을 결정짓는다. 바로 이 같은 개인과 사회의 본원적 관계를 연대성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연대성을 다룰 때 임의 사회와 필연 사회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필연 사회는 가정, 국가 등 자연 사회 또는 일차적 사회라고도 불리며, 임의 사회는 정당, 기업 등 우연 사회 또는 이차적 사회라고도 불리는데 다툼이 있을 경우 필연 사회는 임의 사회에 우선한다.

 

"한 사회가 바람직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질서와 권위는 필수 요소이다. 혼란이나 무질서의 상황보다 질서와 기강이 확립된 여건이 인간 성숙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구성원의 다양한 자질과 적성 그리고 활동을 조정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엮기 위해 권위는 필연적이다. 권위는 물리적 강요가 아니라 도덕적 설득으로 권위의 행사는 지배가 아니라 봉사에 있다"([지상의 평화], 48항).

 

연대성의 원리는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는 한,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한 항상 유효한 원칙이다. 예를 들어 부부와 가정, 국가와 국제 사회, 자연 공동체와 직업별 연합, 그 밖에도 다양한 조직 단체에서 통용되는 원리가 연대성 원리이다. 연대성은 개인이 단체에 가입하거나 탈퇴하여 구성원의 자격을 획득하거나 상실할 때 똑같이 적용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주어진 상황이나 변화에 따라 정해진다.

 

교회는 천지 창조와 강생 구속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의 인류 공동체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간의 정치, 경제적 갈등은 세계 평화를 해치므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 국가간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전통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곧 기술, 경제 등 급격한 변화는 물질주의와 무절제한 이기심을 자극하여 비인간적 사회를 강화시키므로 연대성은 현대인의 신성한 의무라는 가르침이다.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가는 오늘 연대성 역시 세계 차원의 원리임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연대성 원리의 과제와 사명은 다음의 세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① 일반 분야로 현대 사회의 특징은 각종 단체들이 다양하게 자생 발전하고 있고 나름대로 법적 지위도 획득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민주화, 환경 보호, 소비자 보호 등 이른바 NGO 단체들은 자신의 고유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고 이 같은 단체들의 활동이 따라야 할 기본 원리가 바로 연대성이다([어머니요 스승], 97항 참조). ② 약자 보호 분야로 사회적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무주택자, 실업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의 연대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국제 차원에서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이에도 연대성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어머니요 스승], 59항; [지상의 평화], 56항; [민족들의 발전], 44-48항 참조). ③ 노사 협력 분야로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발언권을 확보하고 사회 경제 활동의 주체로 적극 참여함에,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간의 상호 이해를 구축하고 협력하여 전체 사회의 공동선 증진에 노력할 때 준수해야 할 원칙이 연대성의 원리이다([어머니요 스승], 91.92항 참조).

 

만일 사회 교리가 산상 수훈이나 이웃 사랑만을 강조하여 조화만을 고집한다면 갈등은 분명 부당하고 부도덕한 것이다. 그러나 갈등은 현실적으로 인간 삶의 한 부분이다. 실제로 사회 교리는 공동선과 개인선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며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원인 규명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규범 과학으로 그러한 갈등의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공동선과 개인선 사이에만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도 이해 갈등은 존재한다. 이 경우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며 상대방에게 양보하여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그 같은 권장 행위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구성원의 이익을 위임받은 입장에서 자의적 양보는 경계되어야 한다. 특히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 단체의 정당한 이익을 포기하거나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것은 잘못으로 그에게는 오로지 공동체의 이익과 목표를 대변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이해라는 단어는 고상한 뜻으로보다는 이해 타산적, 또는 점잖지 못한 의미로 쓰이지만 순수하게 어원을 따지면 이해라는 말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태도는 그렇지 못한 대상에 비해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학문, 종교, 운동 경기 등 우리의 현세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예외 없이 통용되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만일 사람이 자신의 구체적 삶에 무관심하다면 이는 큰 잘못으로 이때에 무관심은 단순히 관심이나 호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포기하거나, 또는 현세적 삶을 무의미한 내용으로 인식한다는 확증이기에 아주 심각한 잘못이다.

 

관심이 있다는 말은 그 대상을 추구하고 그 대상의 장점이나 혜택을 누리려는 자세요 의미이다. 다양한 사회 단체는 나름대로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고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활동은 원칙적으로 선악과 무관한 차원의 것이다. 사회 단체의 대표는 위임받은 사안의 해결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해야 하며 위임받은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무로 인정되어야 한다. 물론 윤리적으로 부당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예외이다.

 

범세계적 연대나 보편적 공동선의 강조가 국내적 연대는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계 시민이 되어야 함이 더 이상 국가나 특정 사회 조직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말라는 의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연대성은 계층간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질서 체계로 새로이 각광 받고 있는 주제이다. 지난날의 '사회 문제'가 노동 또는 노동자의 문제였다면 오늘날 '새로운 사회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횡포이다. 연대성은 과거나 현재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협력과 일치를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민족주의나 특정 지역 차별은 연대성 원리 실천에 장애 요소로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은 극복되어야 한다. 자기 민족 또는 자기 고향에 대한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지만 인류를 포용하는 보편적 사랑 속에 성숙되고 완성된 애착심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이 같은 원초적 감정은 공동선 증진에 해가 될 뿐이다. 인간 사회의 존립과 인격 완성을 위협하는 이 같은 이기심은 일방의 이익이 상대방에 해가 되지 않도록 연대성 원리로 극복해야 한다. 이때에 비로소 자주와 책임이 바탕이 된 참된 협동 관계가 가능해진다([지상의 평화], 98-100항; [민족들의 발전], 62-65항 참조). 

 

 

3. 보조성 원리 

 

교회의 인간관은 사회 교리의 기반으로, 회칙 [사십주년]에서 정리된 보조성 원리는 인간과 사회 구조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구체화하고 있다. 인간은 상부 상조와 자조 자립의 노력을 동시에 경주하고 있는데 자조 자립의 노력이 인간의 개별성에 기초한다면 상부 상조의 노력은 인간의 사회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비오 12세는 인간이 사회의 원인이요 주체요 목적이라고 정리하고 있으며, 이 바탕 위에 [어머니요 스승]은 보조성 원리가 인격의 불가침적인 존엄성을 유지하고 보호한다며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어머니요 스승], 220항). 이러한 원칙은 공의회를 통해서 사물의 질서는 인격의 질서에 봉사해야 한다(사목헌장, 26항)고 승계되고 있다. 현 교황도 [노동하는 인간]에서 인간은 사회 경제 과정의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노동하는 인간], 13항 1절 참조).

 

교회의 가르침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를 다같이 거부하며 개인과 국가 사이에 자생적 중간 사회 집단을 인정하는 골격으로 교회만의 사회 인식이 바탕이 된다. 이 같은 인식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근거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개인이나 자연 공동체(가정 등)가 스스로 할 수 있고 할 뜻이 있음에도 더 큰 사회가 이를 뺏거나 자신의 당연한 업무로 관장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국가 등 더 큰 사회 단체는 구성원의 본분을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본연의 사명이지 이를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존재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좀더 작은 사회는 자연적 필연적 본성을 지니고 있어서 더 큰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사안들을 해결할 수 있다. 흔히 보조성 원리를 '자조(自助)에 대한 도움' 또는 '보조적 도움'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회의 기본 사명은 인격 수호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인간의 모든 사회 생활 영역에서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 환경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측면과 소극적으로 방지하는 측면의 사명이 교회에게 주어진다. 보조성 원리는 두 차원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개인의 발전과 보호가 우선이며 큰 사회 집단보다 작은 사회 집단이 먼저 고려된다. 곧 '자치, 자결의 원칙'이 강조된다. 둘째, 작은 사회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사가 없을 때 작은 사회는 큰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에는 '자조(自助)에 대한 도움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다른 단체의 정당한 이해 관계는 자기 단체의 이해 관계와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과 관련된 어려움은 다른 집단의 희생을 대가로 자기 집단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유혹이다. 특히 이러한 유혹은 이해 관계의 범위가 분명치 않을 때 이해 관계 자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이해 관계는 처음부터 뚜렷한 경계선이 없으며 있더라도 분명하지 못해 그러한 경계선은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원칙은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좋으냐?"라는 규칙을 제시하는 원칙이다. 왜냐하면 공정하고 선의에 바탕을 둔 규칙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규칙을 찾아내고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만이 이해 대립의 해소책이다.

 

단순화, 획일화, 계산화라는 특징으로 오늘의 사회를 식별하며 비인간화의 풍조를 경계하는 사람은 사회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인간 친화적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보조성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곧 개인이나 자연 공동체가 자력(自力)으로 활동하고 활동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때 그러한 개인이나 사회는 자생력을 기를 수 있고 활력과 창의성은 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4. 복음화 사명 

 

사회 교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대한 응답이면서 질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 교리는 새로이 전개되는 상황을 소홀히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도전에 새로운 구상과 실천을 기울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현실 상황에 무관심한 보수적 태도나 새로운 변화에만 몰두하는 급진적 태도 사이에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교리는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상호 보완적 조화점을 찾는 노력이 그 내용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사회 교리는 신앙과 생활의 접합점이요 교회와 사회의 교량이기도 하다. 사회 교리의 원천인 사회 회칙은 산업 혁명과 이에 비롯된 문제 해결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사회 교리는 교황이 발표하고 있지만 계시적 진리처럼 무류성과 직결된 사안은 아니다. 케르버(Walter Kerber)는 이에 대해 사회 교리의 본질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복음화의 첫걸음은 현대인에게 어떻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있다. 곧 신학적 전문 개념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생활과 실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갈수록 계량적이고 이기적이 되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참 섬김과 나눔이 바로 사회 교리이다. 그 이유는 근본주의가 성서를 희석화하고 전례를 정형화하였으며 율법주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질시켜 신축성은 사라지고 계율과 지시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교황청 성서위원회, "성서와 그리스도론",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창간호(1996.7.1.), 131면).

 

현세적 삶은 인간의 조건으로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인간 구원의 기회는 영원히 없어진다. 사회 교리는 이러한 절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전문가인 교회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시대적 특징을 찾아내고 이에 대해 자신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구체적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교회의 기본 사명이며 바로 그 사명의 첫걸음은 시대 징표를 제대로 읽는 것이다. 바로 그 노력과 원칙을 사회 교리가 제시한다.

 

[사목, 2000년 5월호, 김어상(서강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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