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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에세이5-6: 그리스도교 선교의 환경적 영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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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5 ㅣ No.697

교회사 에세이 (5) 그리스도교 선교의 환경적 영향들 (1)

 

 

선교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던 초기의 그리스도교 인들은 ‘새로운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먼저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어떻게, 아무런 준비 없는 그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소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이것은 가장 힘겨운 일이었고, 이를 위해서 교회는 그들과 대화해야 했습니다. 이런 대화는 상대를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역할도 했지만, 또한 선포하는 주체 또한 상대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 또한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선포하던 이들의 피할 수 없었던 역사적, 그리고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음 언급해야 할 것은 역시 팔레스타인의 유다이즘일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교는 그 자궁에서 자신들의 진리를 잉태하고 깨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유다교는 그리스도교의 깊숙한 곳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고대 근동의 문화, 즉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그 지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근동의 문화는 또한 그리스도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혼합주의’(mista)의 경향을 띠게 합니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이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유다이즘과 그리스-로마의 이방문화입니다. 이 모두는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교를 특징짓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기원으로부터 유다교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근동 지역의 여러 곳에서도 계속해서 헬레니즘의 유다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유다교의 디아스포라는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 로마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수준으로 퍼져 있었기에 팔레스타인 유다교보다 더 큰 영향을 그리스도교에 끼칩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듯이 디아스포라 유다교는 이미 헬레니즘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었으며 언어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인 모습에서 팔레스타인 유다교와 구별되고 있었습니다.

교회와 시나고가는 제국의 모든 도시에서 만나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고, 서로 협력할 때도 있었지만 논쟁과 갈등의 관계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회당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였던 것은 구약의 말씀에 대한 이방인들의 공격에 맞설 때였습니다. 이런 호교론적 임무들은 양자 모두에게 여러 이점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의 여러 관점에서의 반대와 공격에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은 이런 논쟁들에 공동으로 대응하며 호교적인 글들을 많이 생산해 내게 됩니다. 이런 공동 대응의 과정에서 유다교는 그리스도교에 일정의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제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015년 4월 26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이민의 날) 청주주보 2면, 김종강 시몬 신부(계명 본당 주임)]



교회사 에세이 (6) 그리스도교 선교의 환경적 영향들 (2)

 

 

그리스도교와 유다교가 이방인들의 도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많은 집필들이 이뤄졌음을 지난 호에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공동 대응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살펴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태동시기에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유다교의 필요로 히브리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70인역은 그리스도교에 중요한 자산이 되는데, 이 번역서는 그리스도교의 전례와 교리교육, 그리고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습니다. 또한 이런 번역은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화를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의 방법론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특히 1세기 초의 알렉산드리아의 필론(Filone)의 은유적(allegorico) 성경해석은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런 성경해석은 바오로 사도에서 시작하여 근대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런 은유적 성경해석은 성경과 철학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디아스포라 유다교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선교와 설교에도 영향을 주는데, 그것은 디아스포라의 유다교가 이미 유일신 신앙과 참된 길에 대해 이방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상황은 새로운 구원의 진리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희망적 개막’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영역에 있어서의 영향들은 주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관습들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전체주의 국가에 ‘봉사하는 종교’를 요구하던 ‘정치제도’ 위에 자신들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이 자신의 제국이 ‘지구적이고 결정적이 것’이라고 선포하게 된, 즉 지중해 연안을 모두 정복하고 제국을 선포하던 그 즈음에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제국의 통일은 하나의 정치적, 종교적, 국가와 사회 조직 그리고 경제와 상업을 가능하게 했고, 이것은 그리스 로마의 문명이란 거대한 흐름을 만들게 됩니다.

로마인들에게 종교는 정치적 사건들을 이해하게 하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신적인 섭리가 실현된 것이었고, 로마 제국은 신들을 대리해서 세상의 조직을 이뤄가도록 맡겨진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은 황제를 중심으로한 강력한 전체주의를 이루었고, 그것은 종교적 영광으로 승화되었습니다(pax romana). 로마제국에서 황제는 신적인 대리인이었기에, 황제에게 영광을 드리는 종교 예식인 ‘황제예식’이 중요했고, 모든 신민은 이 예식에 참여할 의무를 갖게 됩니다. 이것은 현세적 정치의 신성화였고, 이 황제 예식은 국가의 종교적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종교적 활력의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선포해야 했습니다.

종교는 제국의 번영을 지켜주는 신들을 향한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며 종교 예식에 참여는 모든 신민들이 거행해야 할 첫 번째 임무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로마의 종교는 하나의 호국 종교였습니다. 국가와 하나로 결합되어 있던 종교적 경향은 그리스도교 선교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제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선교가 이뤄지면서 이런 종교적 요구는 갈등과 긴장의 관계로 변화되고, 훗날 그리스도교에게 큰 시련과 영광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2015년 5월 3일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청주주보 2면, 김종강 시몬 신부(계명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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