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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에세이7-8: 선교와 개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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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5 ㅣ No.699

교회사 에세이 (7) 선교와 개종의 역사 (1) 선교의 이유들과 그 시작

 

 

‘선교의 이유’라는 부제를 붙이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교회가 존립하는 이유이며, 교회는 태생적으로 온 세상 모든 백성의 구원을 위한 선교적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직접적인 내용은 신학적인 배경과 이유뿐 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배경이 되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이유들을 일컫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선교의 기초가 되는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어느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유일한 인간의 구원을 위한 가능성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합니다. 나아가 초기 교회의 구성원들은 ‘임박한 종말’ 때문에 복음의 온전한 선포를 위해 짧은 시간이 주어졌음과 보편적 선교는 그 때가 되어야 완성에 이른다는 신념 안에서 기다림과 근심의 시간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인식들이 선교사들의 의식을 자극하고 공동체를 충동하였던 것이 초기 그리스도교의 어쩌면 행운스럽기도 하고 놀라운 확장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들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세상을 비추고자 했던 목표는 세기를 거치며 종교역사에 있어 볼 수 없었던 탁월한 방법으로 실현되었고 이 성공은 ‘구원의 종교’라는 그리스도교만의 특징적 기초를 갖게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선교는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성장에서 기인하였지만 보편적 선교를 향한 실질적인 첫발은 ‘헬레니스트’(ellenisti)라 불리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이들이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넘어 설교를 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충동과 열정은 사도들과 초기 공동체에 의해 준비되었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쫓겨나면서 생긴 결과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돌이킬 수 없고 동시적인 이런 확장의 주체들은, 즉 전달자들은 헬레니스트들이었습니다.

필립보와 바르나바 그리고 바오로로 대표되었지만 대부분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교회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과는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세계적인 선교의 책임은 사도들에게 맡겨졌고, 선교는 오직 사도들의 임무로 그려지며 계속된 교회의 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그러므로 이 사명을 끝까지 수행합니다. 즉 “복음을 세상을 끝까지 전하게 된다.” 이 임무는 그들에게 맡겨졌고 세상은 복음을 듣는 순간부터 이미 종말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역사적 사실과 초기 선교 상황에 공헌을 한 이들의 역사적 이름은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런 초기의 성공적인 선교 이후, 그리스도교는 퇴보나 곤란 없이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성공적인 선포 시기중의 하나는 2세기 말경 코모도 황제(Commodo 180-192)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뛰어난 전파의 시기는 3세기 중반 경이 됩니다. 이 3세기경의 특징은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이 이제 집단적인 움직임을 일컫게 되고 이를 통해 교회는 커다란 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 시대의 어느 종교도 이루지 못한 풍요로운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2015년 5월 10일 부활 제6주일 청주주보 2면, 김종강 시몬 신부(계명 본당 주임)]



교회사 에세이 (8) 선교와 개종의 역사 (2) 전파와 지리적 경계

 

 

지리적인 선포에 대한 큰 그림을 얻기 위해 우리는 차례로 완성되어진 이런 성장들의 여러 국면들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는 부정확하고, 사료는 광범위하며 우연적이므로 재구성에 있어서 어려움과 헛점을 갖고 있음을 미리 말해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확증할 수 있는 것은 1세기 말경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와 치프로 그리고 소아시아의 대부분,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다는 사실 정도입니다. 반면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일리리아, 그리고 갈리아와 스페인에 그리스도교의 출현을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2세기 말경이 되면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교회들을 포함한 중요한 교회들이 뿌리를 내립니다. 이때까지의 이런 그리스도교 전파의 중심은 로마가 아니라 소아시아 지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2세기 말경이 되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트레비리(Treviri)와 쾰른(Cologna)에까지 이릅니다.

한편 2세기가 되면 ‘교회의 소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팔레스타인에 남아있던 교회는 첫 번째 유다 전쟁을 계기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곧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고, 할례 문제로 다시 그곳을 떠나게 되는데 이것은 이 교회가 그 종말을 고함을 의미하였습니다.

4세기가 될 무렵 그리스도교는 외적으로 뿐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의미 깊은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그의 주교뿐 아니라 교회가 그 지역 내에서 상당한 권위와 영향력을 갖게 되고, 이집트의 농촌에서는 독자적인 그리스도교인 콥트 교회가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시리아에서는 지역 시노드가 열리는 등 활기를 띠고,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는 안티오키아 교회를 갖게 됩니다. 4세기가 되면 아르메니아에서도 강력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보게 됩니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는 정치적 직능을 맡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짧은 시간에 백성들의 전 계층에서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이 이뤄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리스를 포함한 발칸 지역과 다뉴브 지역에서도 그리스도교가 빠르게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반대로 구분되는 양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로마는 이미 10만 정도의 그리스도인들이 발견되지만 이탈리아의 중부와 남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미미했습니다. 또 북부 이탈리아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출현은 몇몇 도시 즉 라벤나 아퀼레이아 밀라노 등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스페인 등에서도 교회가 발견되지만 실제 앞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숫자는 몇몇 지역에서는 우위를 점하기도 하였다는 정도의 사실을 어렵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코스탄티노(Costantino) 황제 시대에 가면 제국 내의 소수자의 위치를 벗어나게 되고, 4세기경 그리스도교는 시골지역까지 선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5세기가 되면 그리스도교는 제국의 전체로 확산되고 오히려 이방인과 유대인이 소수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가 되면 교회는 이전보다 더 손쉽게 그리스도교 선교를 이루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호의적인 상황아래 그리스도교로의 귀의는 집단적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이것은 사목적인 문제도 야기하는데 이유는 이런 개종이 삶의 편의를 위한 것이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5월 17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청주주보 2면, 김종강 시몬 신부(계명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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