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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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종말은 마지막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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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1-28 ㅣ No.1898

[현대 영성] 종말은 마지막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다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시기에 우리는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종말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것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것이 바로 종말론(eschatology)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말은 시간 안에 있는 우리 인간의 관점과 다릅니다. 하느님께는 항상 현재만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의 현재가 곧 마지막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음 설명을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종말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역사의 예수(Historical Jesus)께서 부활하셔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가 되심으로써 이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지금 여기 우리 각자에게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시작된 종말은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객관적인 구원’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 모두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구원을 충만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나의 구원이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주관적인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주어진 구원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다른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7,21).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 나라를 사는 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나의 사랑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과 같이 나를 내어 주는 사랑을 배우고 나누며 하느님의 사랑이 되어 갈 때 우리의 구원, 우리의 종말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종말이라는 말은 세상이 끝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우리 가운데 성취되었다는 말이며 우리는 모두 구원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이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그분 안에 일치하여 영원히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왜 세상에는 여전히 고통이 있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과 기근과 재해가 여전히 존재합니까”라고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다면 왜 죄 없이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외면하는 것인가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고통과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고통이 같은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사랑하신다면 왜 십자가의 죽음 앞에 침묵하셨을까요?” “그리고 나는 지금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성경의 많은 구절에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크시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보다 더 크신 분이시고 더 큰 사랑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그것을 통해 더 성장하여 하느님의 그 자비와 사랑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길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죄 없는 이들의 죽음이 우리 눈에는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더 큰 은총을 우리는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과 전쟁과 재해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저질러 놓은 죄의 결과이며 선의 결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다시 “왜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그것을 조정하시지 않고 악인들의 자유의지를 꺾지 않으시는가?”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로봇이 아닙니다. 악인도 선인도 모두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8-9) 부족하고,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죄 많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당신 사랑 안에 살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침묵은 자비입니다.

 

[2022년 11월 27일(가해) 대림 제1주일 가톨릭마산 2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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