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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복음선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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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08 ㅣ No.386

[복음선교교육] 복음선교란 무엇인가? (1)

 

 

복음선교란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될 때 사람들이 그 향기를 맡고 좋아한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어 한다. 복음선교란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아프리카로 가서 복음선교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이슬람교도에게 가서 복음선교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현재의 나를 부르신다. 하느님은 현재의 나를 ‘나로서’ 부르신다. 과거의 나를, 미래의 나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부르신다. 이 모양, 이 꼴대로의 나를 부르신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인도로 가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라고 하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나더러 아프리카로 날아가서 원주민들을 치료해 주라고 하시지도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마더 데레사 수녀님으로, 슈바이처 박사로 부르시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로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어떤 일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오직 한 사람 바로 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을 통해서 구원받고 그 일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저 분과 함께 인류의 고통을 감싸 안을 수 있다.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복음선교다. 사회 안에서,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는 것이 복음선교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 안에서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 복음선교다. 이 일차적인 의미의 복음선교에 충실할 때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세계로 가서 복음선교하라는 사명을 또다시 받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사제는 사제로서, 기도와 교리교육에 충실하고 생명력 있는 강론을 하는 것,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청빈, 정결, 순명 즉 복음 삼덕에 충실한 것, 사목위원은 사목위원으로서 본당 신부를 잘 돕고 본당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 구역장은 구역장으로서 구역반원들을 사랑하고 구역반 모임을 활성화시키는 것, 레지오 단원은 레지오 단원으로서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복음선교다.

 

가정 안에서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고 자녀들의 신앙생활을 돌보는 것, 자식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신들의 신앙에 충실한 것,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힘들 때 더욱 극진히 아내를 돌보는 것, 아내는 아내로서 남편을 사랑하고 힘들 때 더욱 극진히 남편을 돌보는 것,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는 며느리로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것이 복음선교다.

 

 

복음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복음선교란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죄와 죽음과 고통이 있는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인간을 죄와 죽음과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아브라함이 나기 이전부터 계셨던 분, 하느님과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삶과 말씀과 업적으로,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시고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기쁜 소식이며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하느님의 사랑을 손으로 만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가장 탁월한 지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인간적인 형태로, 또 인간이 신적인 형태로 살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자 인간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곧 하느님을 본 것이다. 바로 인간에게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생명의 인격적 친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선교이다. 

 

복음선교는 단순히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이시다”라는 교리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인생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느님으로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요 나의 하느님이십니다”라는 체험을 증언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음선교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만난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한 놀라운 하느님 체험과 삶의 변화와 신앙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고 선포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이다. 결국 복음선교란 나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과 은총 체험”을 신자들과 이웃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2월호, 김석태 베드로 신부(정하상 교육회관 관장, 대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복음선교교육] 복음선교란 무엇인가? (2)

 

 

복음선교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선교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모두 십자가를 바라 봐 주시기 바란다. 저분이 누구신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다. 저 분으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가 바뀌었고, 신앙의 관점에서는 저 분으로 말미암아 죽어야할 모든 인간이 다시 살게 되었다. 저 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역사가 어둠에서 빛의 역사로, 절망에서 희망의 역사로, 미움에서 사랑의 역사로 바뀌게 되었고 저 분을 믿는 모든 신앙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저 분이 누구신가? 예언자요 그리스도이시다. 사람의 아들이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인간이요 하느님이시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 인간 구원을 위하여 당신 인생 전부를 바치신,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하느님의 사랑이시다. 하느님의 사랑 자체이시다. 사랑 덩어리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시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선교다. 복음선교는 우리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통하여, 인간을, 우리를,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복음선교다. 이 하느님 사랑은 신앙생활 안에서 크고 작은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통하여 우리에게 매일같이 다가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전달하시는가?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전달하시는가? 기도와 성사를 통해서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앙인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성당에서 기도했더니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우울증과 불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을 때 성체조배를 지속적으로 했더니 우울증과 불안에서 해방되어 내적 치유를 얻게 되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기도 중에 가장 완전한 기도는 미사이다.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드리는 미사이다. 미사 중에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통하여, 성찬의 전례를 통하여 놀라운 위로와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 신앙인은 교회 안에서 성사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는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원죄와 본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총과 사랑을 받으며 인생을 새롭게 출발한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진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만들어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체험하며 죄의 불안과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얻는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그분은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는 사랑을, 그분은 부서지고 우리를 충만케 하는 사랑”을 체험하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체험한다.

 

병자성사를 통하여 인간이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인 병과 늙음과 죽음을 수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는 불멸의 희망으로 위로를 얻게 된다.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은 신앙인이 그 예식에 참여했다는 자체로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신앙인에게 쏟아 주신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인간의 부당함이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는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이 은총을 받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성사에 참여하면 그 자체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는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서 가톨릭 신앙인은 교회를 통하여, 피정과 성지순례와 여러 교육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는다. 하느님은 부모님을 통하여, 신부님과 수녀님을 통하여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마더 데레사 수녀님 통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하여, 김수환 추기경님을 통하여, 이태석 신부님을 통하여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신앙인을 통하여, 좋은 의사와 약사를 통하여,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주인을 통하여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복음선교란 우리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체험한 이 하느님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의 복음 선교는 삶의 자리에서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랑하였나? 그렇다면 복음선교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복음선교하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복음선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복음선교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의 사랑이 세상과 나의 삶의 자리 안에서 진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복음선교도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세상과 나의 삶의 자리 안에서 퇴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복음선교도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로만 복음선교 하지 않으셨다.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이시면서 말과 행동으로 복음선교 하셨다. 당신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심으로써 복음선교 하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베드로와 유다의 배반을 가슴에 안으시면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꼴찌 인생들, 밑바닥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 병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당신 가슴에 안으시면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복음선교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내가 왜 복음 선교를 하는가? 하느님을 사랑해서, 이웃을 사랑해서 선교하는 것이다. 최고의 이웃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선교다. 최고의 하느님 사랑이 있다면 그것도 복음선교다. 우리 모두가 복음선교를 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최고의 은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고, 우리의 신앙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3월호, 김석태 베드로 신부(정하상 교육회관 관장, 대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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