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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드라마에서 성경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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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23 ㅣ No.900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드라마에서 성경 찾기

 


- KBS2 드라마 ‘태양의 여자’ 캡쳐.


어린 시절 내게 성경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었다.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 책 안에 다 있었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펴서 읽었더니 삶의 어느 순간에 줄거리가 떠올려졌고, 내 고민을 성경에 비춰보니 고통의 의미가 깨우쳐졌다.

성경은 신자들만의 책은 아니다. 작가 이외수는 훌륭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성경을 탐독하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 성격, 감정, 관계, 이야기의 설정과 문체가 집대성된 작가들의 교과서라는 얘기다. 성경이 후대의 문학과 예술에 영감을 준 것은 드라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경에서 영감을 받은 드라마 몇 편을 지면을 통해 나눠본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시도 자체가 눈에 띈 작품들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애용되는 모티브는 형제 간 갈등이다. ‘카인과 아벨’(2009)은 의사 형제가 아버지의 병원 상속을 놓고 갈등하는 이야기다. 출세욕에 불타는 형 선우는 의로운 동생 초인을 중국으로 유인해 청부살해를 시도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초인은 기억을 잃고 유배생활을 하다가 돌아온다. ‘태양의 여자’(2009)는 요셉과 형제들의 갈등을 차용한다. 부잣집에 입양된 고아 도영은 양부모가 친딸을 낳아 편애하자 충동적으로 동생을 버린다. 이내 정신이 들어 동생을 버린 곳을 찾아가지만 동생은 사라진 뒤다. 양모의 냉대를 견디며 출세한 도영은 동생이 돌아오면서 위기에 빠진다.

형제 갈등에 아담의 실락원을 접목한 작품도 있다. 드라마 타이틀에 불칼 너머의 생명나무를 넣었던 ‘에덴의 동쪽’(2008)이다. 탄광촌에서 뛰놀던 동철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탄광을 노리는 사업가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동철은 가족을 부양하고 원수를 응징하려 어둠의 세계에 뛰어든다. 부잣집 딸의 순정을 이용해 출세를 시도하지만 복수심은 허무함만 안기고, 애지중지하던 동생은 원수의 친아들임이 밝혀진다.

그들은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초인은 중국에서 탈북자 여인 영지를 구출하고, 영지는 초인이 기억을 되찾도록 도와줌은 물론 뇌질환으로 죽어가는 형을 살리도록 설득한다. 연출가는 탐욕의 화신 선우에게는 어두운 배경, 초인의 수호천사 영지에게는 흰 옷과 밝은 조명을 적용해 죄와 구원을 대비시켰다. 재벌들의 암투에 휘말린 동철은 원수의 아들 대신에 총을 맞아 숨지고, 원수의 아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의 헌신이 모두를 생명으로 인도한 셈이다.

‘태양의 여자’는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게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욥기 3,23)라는 성구에서 구상됐다. 가혹한 운명에 괴로워하던 도영은 자살을 시도하는데, 혼수상태에서 잠시 깨어나 자신과 화해할 기회를 얻는다. 약하고 어리석었던 과거의 자신을 측은히 여기고, 자신의 부재를 슬퍼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그녀의 영혼은 안식을 얻는다. 그 화해를 살아서 누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작가는 사방이 에워싸인 곳에도 생명이 있는 한 빛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김은영(TV칼럼니스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22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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