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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하느님, 자연, 인간: 공동의 집 지구에서 지금 무슨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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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23 ㅣ No.1273

[경향 돋보기 - 하느님, 자연, 인간] 공동의 집 지구에서 지금 무슨 일들이

 

 

난해 인상적으로 본 영화 가운데 ‘인터스텔라’가 있다. 영화의 배경인 미래 지구, 주곡인 ‘밀’은 멸종되어 인류는 옥수수에 의존해 사는 심각한 식량 부족 시대이고, 땅은 죽어 시시때때로 거대한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야만 하고 흉작은 해마다 반복되며 아이들은 폐병으로 시들어간다.

영화는 말한다. “보물처럼 소중한 이 세상이 우리에게 떠나라고 하지.” 이 영화는 고도 산업화 이후 땅이 갈라지고 물이 부족하며 단작(單作)으로 다양한 생물종들이 죽어가는 인류의 심각한 생태계 위기를 보여주는 묵시록이었다.

보물처럼 소중한 이 세상이 이제 우리 인간을 내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처럼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잘못 다룬 적은 일찍이 없었노라고 말한다. 지구 생태계의 심각한 훼손은 이제 ‘사실’이다.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의 집인 지구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교황이 말하는 생태 위기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지구 생태의 위기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오염과 기후변화(「찬미받으소서」, 20-26항, 이하 「찬미받으소서」 생략), 둘째, 물 문제(27-31항), 셋째, 생물 다양성의 감소(32-42항), 넷째, 인간의 문제들(43-52항)이다.

이러한 인류와 지구의 변화와 생태계 위기의 근간에는 ‘신속화’의 문제가 있다. 인간이 발전해 온 속도가 자연의 느린 생물학적 진화 속도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빠름과 지속적인 변화가 공동선이나 온전하고 지속가능한 인간 계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거의 해마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지구 곳곳을 덮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 인근 태평양에서 강진이 발생했고, 40분 뒤 15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육지를 덮쳐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2013년 11월 필리핀을 덮친 슈퍼 태풍 하이옌으로 7,89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올해 4월과 5월 진도 7.8의 대지진으로 네팔 전역의 집과 건물이 무너지며 9천여 명이 죽었다. 미국 뉴스 전문 채널의 방송 CNN은 “삶들과 역사가 무너져 내렸다.”고 탄식했다. 이 모든 자연재해의 원인은 인류의 공공재인 ‘기후’ 변화 때문이다.

“많은 과학적 연구는 최근 수십 년간의 지구 온난화가, 대부분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곧 이산화탄소, 메탄, 산화질소와 같은 화학물질들의 농도가 매우 짙어졌기 때문에 주로 발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23항).

2013년 지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400ppm을 넘어섰다. 지난 65만 년 동안 300ppm을 넘어선 적이 없던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이렇게 올라간 것이다.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의 농도 증가로 ‘기후 변화’라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온실가스 배출 상위 10개국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 한국, 캐나다, 이란, 영국 순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10년 동안 이산화탄소가 146% 증가했다).

기후 변화는 다만 더워지는 날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해수면 상승, 홍수와 가뭄, 식량 위기, 물 부족과 같은 인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기후 변화’가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과제이며. 수십 년 안에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그 피해자는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25항 참조).


생명 유지를 위한 물 문제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이다. 따라서 깨끗한 식수는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 물 부족 현상은 특히 아프리카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은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농산물 생산이 어려울 정도의 일상적 가뭄에 고통 받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난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질이다. 날마다 많은 이가 수질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수인성 질병과 더불어 미생물과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질병에 시달리는 가난한 이들이 많고, 이질과 콜레라로 많은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적절한 규제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 특정한 광업, 산업 활동으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땅으로 흘러들어 지하수가 오염되고, 세계 곳곳에서 사용하는 합성세제와 화학제품이 강과 호수와 바다로 흘러든다. 다국적 대기업들은 물을 사유하려 하고 있다. 만일 다국적 기업들이 물을 통제한다면 분명 21세기의 커다란 분쟁 요소가 될 것이다(28, 29항 참조).


생물 다양성의 감소

인간의 근시안적인 경제와 상업, 그리고 생산 활동으로 자원이 착취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숲과 삼림지대의 파괴와 훼손은 생물종들의 죽음과 급격한 감소로 이어진다. 근시안적 생물에 대한 착취는 생물종을 인간이 활용 가능한 단순한 ‘잠재적 자원’으로 보는 데서 기인한다. 근시안적 관점은 고속도로, 재식농업(플랜테이션), 특정 지역에 대한 울타리, 댐 건설 등과 같은 개발행위로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고, 동식물들이 더 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게 만든다(35항 참조). 그 결과 많은 생물 종들이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4대강 사업으로 지금도 강 생태계와 물고기들이 죽어가고, 올해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의 추진이 결정되어 산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설악산은 산양을 비롯한 수많은 멸종 위기 생물의 보금자리이다. 이제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멸종 위기 동식물의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습지대가 경작지로 바뀌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생물 다양성의 상실(맹그로브 습지 파괴), 바다와 대양에 사는 해양식물의 무절제한 포획, 열대와 아열대 바다의 산호초 파괴로 물고기와 갑각류 등의 죽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인간 환경에 결정적 피해

인간 또한 생명권과 행복권을 누리는 피조물이며,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종이다. 환경 훼손과 잘못된 개발, 버리는 문화가 인간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연환경의 악화로 가장 가난한 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물고기 개체 수의 감소는 다른 생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세 어민들에게 특히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수질 오염은 특히 생수를 사먹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해수면 상승은 주로 해안 주변에 사는 달리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48항).

자연환경 훼손과 변화로 인간 환경에 결정적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수십 억 명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소외된 이들에 대한 ‘다른 이들의 소외’이다. 같은 어머니 지구에서 살아가며 생태, 경제적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대부분을 우리는 ‘부가적’으로 생각하며, 거의 마지못해 대하며 쳐다보고 있다. 생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사회경제적으로도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우리는 지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며,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또한 외면하고 있다.


생태 위기의 원인


이제껏 살펴본 지구의 생태 위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일까? 한 단어로 말하자면 ‘시장’이다.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는 이 체제 안에서, 절대 규칙이 되어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56항).

창조주 하느님의 자리에 놓인 절대자 ‘시장’은 경제와 기술의 동맹으로 만들어졌고, 이들의 즉각적인 이익과 무관한 모든 것은 배제되고 죽게 된다. 이 체제는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앞세우는 체제이며, 시장에 의해 강요되고 주입된 ‘나쁜 소비습관’(환경오염과 교통, 쓰레기 처리, 자원 손실,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들에는 관심없는 습관)으로 더욱 강화된다(50, 54, 55항 참조).

새로운 신, 시장의 신봉자들에게 ‘분배’는 그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보편화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수를 위한 소수의 소유와 권리, 이것이 시장의 사도신경(Credo)이다. 더 암울한 것은 소수가 만든 시장의 권력에 맞서는 문화 또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대안의 길을 찾아나서거나, 후손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지도력이 부족하며, 생태계를 보존하고자 하는 법적 틀 또한 시장의 수하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은 있다. 일부 나라에서 환경 개선의 좋은 본보기가 나오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오염되었던 강을 정화하고, 원시림을 복구하며,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생산과 대중교통의 개선에 진전을 이루었다(58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본보기가 “모든 이가 여전히 긍정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모든 약점에도 우리가 사랑으로 창조되었기에 반드시 관대함과 연대와 배려에서 나오는 행동이 샘솟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58항 참조).

과학적 맹신과 생태 중심적 맹신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모든 창조물들을 보살펴야 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인간이 중용(그리스도교 인간 중심주의)을 취한다면 해결 방법은 분명히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현재 불균형의 영향을 줄이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161항).


일상적으로 행동하기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관대하고 품위 있는 창의력에 속하는 것입니다”(211항).

쉽다.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천들이기에 희망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행동들이야말로 “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관대하고 품위 있는 창의력”이라며 우리를 격려한다. 우리 일상의 행동이 사회에 선을 퍼뜨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212항 참조). 민들레 홀씨 같은 희망의 퍼짐이다.

일상적 행동과 함께 세계적 관점에서 ‘공동 계획을 가진 하나의 세상’을 생각해야 한다(164항 참조). 공동계획을 통해, 기후 변화를 위한 졸속하고 안이한 해결책인 ‘탄소 배출권’ 거래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공동재’(특정 국가나 개인이 독점할 수 없는 자연 자원) 전체를 다루는 ‘통치 제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174항 참조).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거대 자료(Big data)’ 시대, 탈 근대화 소비의 이미지 시대, 매체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집착적인 소비주의를 벗어나라고 권고한다.

우리는 현명한 삶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며, 넉넉히 사랑하는 방법을 너무도 빨리 잊었다. 정보의 소음 속에서 자기 성찰과 대화, 사람과 편견 없는 만남, 그리고 그 결실인 참된 지혜를 잃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은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삶의 방식을 전해준다(222항 참조).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이다.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 바로 검소함이다. 검소함 속에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적 평화’를 이루고, ‘사랑의 언어’인 자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수행의 방식이다.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는 우리가 사랑의 작은 길을 가고, 평화와 우정의 씨앗을 뿌리는 친절한 말, 미소, 모든 작은 몸짓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권유합니다. 또한 온전한 생태계는 폭력, 착취,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단순한 일상행위로 이루어집니다”(230항).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라는 세상은 ‘생태문명의 세상’이다. 생태문명은 ‘사랑의 문명’이며, ‘돌봄의 문명’이다. 이제 우리의 일상 속 생태적 몸짓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가고, 돌봄의 문화가 온 세상에 스며들도록 하자.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생태 문명 세상을 위해, 일어나 걸어가자(마태 9,5 참조).

*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사무국장.

[경향잡지, 2015년 11월호,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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