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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협ㅣ사목회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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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5

[한국 가톨릭운동 단체를 전망한다] (12)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세속에 살며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

 

 

한국평협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회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를 실천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한국평협이 2000년 대희년을 맞아 개최한 평신도 대회 장면.

 

 

"평신도들은 복음 선포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활동으로써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명백한 증인이 된다. 세속에 살면서 세속 일에 파묻혀 있는 것이 평신도의 특징이므로,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교적 정신에 불타며 누룩 같이 되어, 세속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 2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 이전만 해도 가톨릭교회에서 평신도가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미미했다. 교회 구성원 가운데 절대 다수를 차지함에도 항상 성직자와 수도자 뒷전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 교회가 세상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또한 평신도가 성직자·수도자와 더불어 하느님 사업의 당당한 주체임을 공포했다. 바야흐로 평신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하 한국평협)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 직후인 1968년 공의회 정신에 따라 탄생한 전국 평신도 협의체다. 서울대교구를 포함한 전국 15개 교구 평협과 25개 전국 단위 신심단체를 회원단체로 두고 있는 한국평협은 한국교회 평신도들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신도가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 선포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수행하는 모든 활동이 바로 ’평신도 사도직’이다. 한국평협은 창립 이후 평신도들이 각자 자리에서 평신도 사도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한국평협이 80년대초 전국 차원의 신뢰회복 운동으로 시작한 도덕성 회복 운동은 ’내 탓이오’운동(1990년)을 거쳐 지금의 ’똑바로’운동(2001년∼)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의 주목을 받으며 우리 사회 도덕지수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평협은 이밖에도 도농 본당간 직거래를 통한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이들을 찾아 시상하는 ’가톨릭 대상’을 운영함으로써 사회 공동선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대희년을 맞아 1999년과 2000년에 개최한 평신도 대회는 평신도의 사명과 역할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평신도가 복음화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국평협이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왔느냐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힘든 것도 현실이다. 한국평협이 430만 평신도들의 뜻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지, 나아가 교회 가르침을 세상 한복판에서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할 점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계자들은 평신도와 평신도 단체에게 주어진 막중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이 먼저 교회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해야할 뿐 아니라 교회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신학연구소가 작성한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운영 실태 및 전망에 관한 조사 연구 보고서’는 평협 활동에 대해 ’전체적으로 평협의 사명 수행에 대한 비전이 잘 드러나지 않는 비체계적인 활동, 일시적 캠페인성 사업-보기에 따라서 특정 대안 없이 교구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평협 활동의 많은 부분이 연례적 행사에 치중되어 있는 것은 평협의 존재 이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교회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협 지도부는 물론 평신도 모두가 교회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먼저 분명히 이해하고, 이에 따른 실천 의지를 다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과 관련, 박영조(페렐리오) 안동교구 평협 회장은 지난 8월에 열린 한국평협 2003년 제3차 상임위원회에서 발제를 통해 ’평협 조직 전문화’와 ’조직 운영 체계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평협 산하에는 복음화, 민족화해 특별위원회 등 특위와 기획, 교육, 문화, 청소년, 국제협력 등 9개 분과위원회가 있지만 몇몇 분과를 제외하고는 눈에 띠는 활동을 하는 분과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분과마다 위원장과 다수 위원들이 있지만 대대수 신자들은 그런 분과가 있는지조차 잘 모를만큼 활동이 미미한 것은 전문화된 분과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연구와 활동을 할 수 있는 이들을 참여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평협의 일관성 있는 평신도 교육이나 대사회적 활동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바로 조직의 비전문성에 있다 해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박 회장은 분과 활동에 있어서 교회 근본 가르침과 평협 존재 목적에 맞는 사업들을 중장기적 계획 아래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협 각 분과별 활동이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각종 대회가 별다른 후속 조치나 대책이 뒤따르지 않는 형식적,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평협 운영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박 회장의 진단이다. 이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회장단이 바뀌더라도 본래 정신에 입각한 사업이나 활동들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또 각 분과가 고유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정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젊은 신자들을 지도부에 끌어들이는 작업도 평협이 병행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현재 교회안에서 평협이 갖는 모호한 지위도 평협 활성화의 커다란 걸림돌로 꼽힌다. 먼저 본당 평협과 교구 인준 단체를 회원으로 한다는 평협 회칙이 교회법적 근거가 미약함에 따라 평협 회칙과 상위 교회법간 마찰 소지가 있으며, 많은 본당이 본당 자문기구인 사목평의회(사목회) 형태로 평협에 참여함으로써 혼선을 가져오기도 한다. 각 교구 평협별로 상이한 회칙에 따라 평협의 위상도 차이가 심하고 따라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이 교구나 본당별로 활성화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 특성상 각 교구별로 획일화된 회칙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전국 평협은 교구별로 평협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공통 분모를 찾아 평협 고유의 사도직을 찾고 수행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교구 특성을 살리면서 동질성을 찾아 함께하는 지혜를 통해 이 시대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야 하는 과제가 그것이다.

 

여규태 한국평협 회장은 "평협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여러 면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많은 평신도들의 기대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평협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그래서 평신도가 명실공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많은 이들의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했다.

 

 

한국평협과 도덕성 회복 운동 - 도덕성 회복 운동 큰 반향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후속 문헌으로 나온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 정신에 따라 1968년 발족했다. 공의회 이후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가 점차 활기를 띠는 가운데 67년 10월 유홍렬씨를 비롯한 전 세계 103개국 평신도 대표들이 로마에 모여 제3차 세계 평신도대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한국 주교회의는 68년 5월 전국 차원의 평신도 기구를 설립키로 결의하고 황민성 주교에게 관련 업무를 맡겼다.

 

이에 따라 전국 11개 교구와 6개 전국단체 성직자 및 평신도 대표 27명이 68년 7월 대전 대흥동성당에서 ’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 회장에 유홍렬(라우렌시오)씨를 선출했다. 지도신부는 김남수(전 수원교구장, 당시 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였다. 주교회의는 그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중앙협의회를 인준하는 한편 평신도사도직의 날 제정을 의결했다.

 

이후 한국평협은 평협 활성화를 위한 홍보활동을 적극 펼치는 한편 한국 정의평화위원회 결성(70년), 아시아지역 평신도사도직운동회의 참석(70년 ), 세계 평신도사무국 주최 ’교회 내에서의 대화’ 심포지엄 참가(71년) 등을 통해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러나 평신도사도직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하고 한국평협과 산하 교구 평협 및 단체간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78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평협 해체를 논의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한국평협은 80년대 이후 신뢰회복운동과 우리농산물먹기운동, 우리상품쓰기운동, 북한형제돕기, 경제살리기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교회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도 적극 나선다.

 

한국평협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도덕성 회복의 불을 지핀 도덕성 회복 운동이 첫손에 꼽힌다. 한국평협은 민주화와 사회변혁에 대한 욕구가 팽배해 있던 83년 당시 제16차 정기총회를 기해 사회 불신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전국 차원의 신뢰회복운동을 전개했다.

 

신뢰회복운동이 주로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개됐다면 90년에 시작된 ’내 탓이오’운동은 좀더 대중적인 면을 지향한 것이다. 한국평협이 90년 9월 차량용 스티커 30만장을 제작, 배포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된 ’내 탓이오’운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평협은 이 같은 의식개혁운동의 전통을 이어 95년 11월에는 도덕성 회복운동의 실천 표어가 들어간 책받침 10만장을 전국에 배포해 도덕성 회복을 통한 사회개혁을 촉구했다.

 

2001년부터 펼치고 있는 ’똑바로’운동 역시 한국평협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창해온 의식개혁 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는 평신도들의 강한 실천의지를 담았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함으로써 도덕성 회복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이 운동은 신자들을 중심으로 요란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평화신문, 2003년 11월 30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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