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영성? 영-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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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07 ㅣ No.906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영성’? ‘영-썽’?


감각을 뛰어넘어 성령 하느님 바라보며 사는 모습

 

 

찬미 예수님.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기도를 정해진 형식과 내용에 따라서 바치는 좁은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면서 인격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우리의 기도 생활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나의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감각적으로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이 아니라, 하루 중에 겪게 되는 다양한 일들 그리고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용서와 은총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삶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하나의 지식으로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 삶 안에서 어떻게 나와 함께 살아가시는지를 참으로 알게 된다는 것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자, 그럼 이제는 ‘영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영성’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제가 십여 년 전에 공부 소임을 받고 외국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본당에 계신 신자분들께서 많이 축하해주시고 격려해 주시면서 무슨 공부를 하러 가느냐고 묻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성신학 공부하러 갑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그런데, 영성신학이 뭐 공부하는 거예요?”라고 되묻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실 그때 저도 영성신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나마 기도 생활이나 영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루는 과목이라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공부를 마치고 교구로 돌아왔죠. 그런데 지금은 다른 분들을 만나서 “영성신학 공부하고 왔습니다”라고 하면, “영성이 한마디로 뭡니까?”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충 뜻은 알 것 같은데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죠.

 

글쎄요. 영성이 한마디로 뭘까요? 십 년을 공부하고 왔지만 저도 아직 그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영성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것이 있겠지만, 영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긴 하지만 그 단어 하나로는 부족하다 싶기 때문에 꼭 설명을 덧붙이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는, ‘사실 영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려고 하는 자체가 잘못된 거다’라고 속으로 자기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도 “영성이 한 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냐?”고 물으시는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당신도 막연하게 설명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신자분들께서 이해하시기 쉽게, 한 마디로 딱 말할 수 있는 뭔가가 없겠느냐는 것이었죠. 그때도 잘 대답은 못했지만, 그러면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성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어떻게 표기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靈聖’ ‘靈性’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우리말로 쓴 영성이라는 단어의 올바른 한자 표기일까요? 네, 올바른 답은 바로 ‘靈性’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靈聖’이 맞다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영성이 기도 생활과 관련된 것이니까, 아무래도 거룩하게 사는 모습을 뜻하는 ‘거룩할 성(聖)’자를 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런데 사실 영성이라는 말은 ‘신령할 영(靈)’에 ‘성질 성(性)’자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말 그대로 하면 ‘신령한 성질’이라는 뜻이죠. 이렇게 한자를 통해 우리말로 쓰여진 영성이라는 말에 ‘거룩함’이라는 뜻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왜 영성이라는 말을 기도 생활, 거룩한 생활과 연관 지어 쓰고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지만, 여하튼 ‘성질 성(性)’자와 관련되어 계속 보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참을성’이라는 말입니다.

 

‘참을성’이라는 말도 우리가 많이 쓰지요. ‘참을성이 있다, 없다.’ ‘참을성을 좀 가져라.’ 어떤 의미인지 쉽게 와 닿는 말입니다. 이처럼 ‘참고 견디는 성질’을 뜻하는 ‘참을성’이라는 말 외에도, ‘어떠어떠한 성질’을 가리키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관계성’ ‘인내성’ ‘불굴성’ 등의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중에는 실생활에서 잘 안 쓰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뜻이 무엇인지 금방 이해가 되는 말들입니다.

 

영성이라는 말도 사실은 이 참을성이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참을성이 ‘잘 참고 견디는 성질’을 뜻한다면 영성이라는 것은 영적인 성질, 곧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물질적인 것, 육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신령한 것, 영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래서 영성 내지는 영성 생활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눈에 보이고 감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며 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세요? 영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은 더 쉽게 느껴지십니까? 여기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에겐 바로 하느님, 성령이신 것이죠.

 

그런데, ‘참을성’이나 ‘불굴성’ 같은 말은 그 뜻이 쉽게 이해되는데 왜 ‘영성’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이 단어들의 발음과 상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을성’이나 ‘불굴성’은 ‘차믈썽’ ‘불굴썽’으로 발음합니다. ‘-성’으로 쓰지만 ‘-썽’으로 발음하죠. 그런데 ‘영성’은 그대로 ‘영성’으로 발음이 됩니다. ‘관성’이라는 말도 찾아보면 쓰인 것처럼 그대로 ‘관성’으로 발음이 됩니다. 우리말 발음법칙에 따르면 ‘-ㄹ’로 이어지는 단어는 ‘-썽’으로, 다른 말들은 ‘-성’으로 발음됩니다.

 

그렇다면, ‘영성’이라는 단어를 ‘영-썽’으로 발음해보면 어떨까요? 당연히 올바른 발음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영성’을 ‘영-썽’으로 발음하게 되면, ‘아, 영성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어떤 영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영성 생활이라는 것도 영적인 차원에서 생활한다는 것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얻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영적인 차원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 설명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영성’이라는 것이 우리 삶의 ‘영적인 차원’을 가리킨다는 의미만큼은 조금 더 확실하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영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썽’이라고 일단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5일,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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