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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복 70년 분단 70년6: 가톨릭 교회 신용협동조합운동의 씨앗을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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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03 ㅣ No.718

[사진 속 역사의 현장 광복 70년 분단 70년] (6) '가톨릭 교회 신용협동조합운동'의 씨앗을 뿌리다


저축과 협력으로 경제적 자립 꾀한 신협 운동



- 1962년 2월 제1차 신협 지도자 강습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7명이 참석한 강습회에는 사제와 목사, 정부 관리, 전직 대학장 등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1960년 3월 19일,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7주간 강습회가 마련됐다. 신용협동조합이 무엇인지, 그 운영을 위한 원칙과 철학은 뭔지, 계와 신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합원으로서 소양은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배우는 사전 교육의 장이었다. 요체는 ‘스스로 일어서고 더불어 나가는’ 데 있었다. 저축을 통해 가난한 이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며 경제적 자립을 이뤄내자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대부분 어안이 벙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굶고 있는 판에 저축이라니, “미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메리놀수녀회 메리 가브리엘라(1900∼1993) 수녀는 교육과 함께 신협 설립을 밀어붙였다. 그 씨앗이 1960년 5월 1일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맞아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설립된 ‘성가신용협동조합’(Holy Family Credit Union)이었다. 메리놀병원 직원과 미국 가톨릭 사회복지협의회(NCWC) 직원들, 부산 중앙본당 신자 등 27명이 주역을 이뤘다.

그로부터 두 달 뒤 6월 26일엔 서울대교구 장대익(1923∼2008) 신부도 서울 시내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가톨릭중앙신용조합’을 설립, 한국 신협 운동의 또 다른 뿌리를 내린다.

이렇게 태어난 신협은 일제 당시 착취의 상징이던 관제 ‘금융조합’에서 벗어나 참다운 의미의 ‘신용협동조합’ 운동이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 신부는 왜 신협 운동에 주목했을까?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원조 단체들의 구호ㆍ의료ㆍ급식 활동이 소규모인 데다 단기 봉사 위주로 이뤄지고 미국 정부 지원도 남은 농산물 지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원조 단체에도 ‘피로 증후군’이 찾아왔다. 1957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주한 외국원조단체협의회(KAVA) 회의 참가자들은 원조 물자가 한국인의 자립에 쓰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막대한 원조에 의구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반면 전쟁이 끝난 지 7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농촌에선 봄에 한 가마니를 꿔 먹으면 가을에 두 가마니로 갚아야 했고(장리곡), 추수 직전의 벼를 논에서 수확하지 않은 채 팔아넘겼다(입도선매). 도시에서도 월 10%가 넘는 사채이자가 기승을 부렸다. 자립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1962년 당시 협동조합교도봉사회 강사로 활약한 이상호 신협중앙회 명예회장과 최순환 비서,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 전형서 성가신협 회계이사(왼쪽부터).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 신부는 당시 ‘안티고니시(Antigonish) 운동’에 주목했다. 캐나다 동부 연안 노바스코샤 안티고니시 지역 어촌에서 생겨난 이 운동은 개발도상국 민중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대안 운동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이에 1957년 9월에는 장 신부가, 그해 12월에는 가브리엘라 수녀가 노바스코샤 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대학 부설 협동연구원(Coady Institute)에서 안티고니시 협동조합 운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워 한국에 도입했다.

가브리엘라 수녀는 성가신협 설립에 이어 1962년 부산에서 ‘협동조합교도봉사회’를 조직, 신협 운동을 확산시켰고, 1964년 서울 신용협동조합지부 월례회의에서 전국 연합회 설립을 제안, 그해 4월 발기위원 13명과 함께 준비위원회를 꾸려 ‘신협연합회’의 닻을 올렸다. 이듬해 7월에는 서울의 가톨릭대 의대로 협동조합교도봉사회 사무실을 옮겨 협동교육연구원으로 개칭한 뒤 1996년 6월 서울 동교동 사무실이 폐쇄되기까지 신협 교육의 산실을 일궜다.

장 신부도 미국 포담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 1958년 8월 서울 소공동에 사무실을 마련,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용협동조합을 소개하고 조합 설립 추진을 위한 교육에 힘쓴다. 입국 직후 빈곤 타개의 대안으로 ‘신용조합’을 연구하던 평양교구 평신도들의 임의조직인 ‘협동교육연구회’와 인연을 맺게 된 장 신부는 이들과 함께 ‘협동경제연구회’로 공식 출범시켜 초창기 신협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데 이바지했다. 또 가톨릭중앙조합을 모태로 돈암동성당 신용조합 등 서울ㆍ수도권에 숱한 신협이 세워지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들 신협이 아직도 교구 사제들이나 교구 신협인 가톨릭수원교구신협, 가톨릭인천교구청신협, 춘천가톨릭신협, 가톨릭명동신협 등으로 남아 있다. 본당 단위 신협으로는 서울 아현천주교회 신협과 부산 남천천(남천동천주교회)신협, 대구 대봉천(대봉천주교회)신협, 전주 파티마신협 등이 유명하다.

올해로 신협 설립 55주년을 맞는 우리나라 신협은 2014년 말 현재 조합원 수 572만 명에 조합 수 920개, 총자산 61조 원으로, 세계 4위권 신협 국가로 발돋움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2일, 오세택 기자, 사진=신협 중앙회 제공]



‘상부상조를 통한 자조 정신’ 회복해야


신용협동조합중앙회 이상호 명예회장



이상호 신협중앙회 명예회장.


“신협 운동의 발판은 가톨릭 교회였습니다.”

이상호(미카엘, 86, 수원교구 보정본당) 신용협동조합중앙회 명예회장은 “가톨릭 교회니까 굶고 있는 사람들을 교육장에 모아 강의를 할 수 있었고 이런 교육을 발판으로 개신교회 조합과 지역 조합, 직장 조합까지 만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61년 10월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님과의 만남이 제 인생을 바꿔 놓았어요. ‘안정되지만 평범한’ 은행원 생활에서 ‘불안정하지만 꿈이 있는’ 삶으로 바뀌었지요. 수녀님은 젊은 일꾼이 필요했고, 전 꿈을 일궈 나갈 터전이 필요했던 셈이지요.”

당시만 해도 최고 직장이던 농업은행의 은행원에서 ‘협동조합교도봉사회’ 전임강사로 활동하게 된 이 명예회장은 그 뒤 부산의 가브리엘라 수녀와 서울의 장대익 신부를 도와 지도자를 양성하고 신협을 조직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10명만 모여도 정보과 형사들이 와보는 군사정권 아래서 국민이 주인이고 조합 선거는 민주적으로 치러야 하는 신협 운동을 펼치기는 만만치 않았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세상이었기에 가톨릭 교회는 신협 운동의 든든한 배경이 아닐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명예회장은 나아가 “‘상부상조를 통한 자조’라는 신협 운동의 이념은 가톨릭 교회의 사랑, 애덕 실천과 맥이 닿아 있다”면서 “특히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1961년 5월에 발표하신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을 통해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경제 전반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를 권고해 주셔서 신협 운동을 하고 있던 우리도 큰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신협의 씨앗을 뿌리고 돌보던 이 명예회장은 “1964년 신협 연합회 설립 이후 우리 스스로 힘으로 신협 운동을 발전시키고 지키기 위해 다른 신협 지도자들과 온 힘을 기울였다”며 “지금에 와서 신협 운동 55년을 되돌아보니 이 땅에 신협의 씨를 뿌리는 일도 중요했지만, 신협이라는 싹에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고 보호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의 신협 운동은 협동조합 금융기구의 세계적 모범 사례로 평가를 받았고, 농협의 민주화와 개혁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으며, 농어민과 서민 대중을 고리채로부터 해방했고, 군사정권 시절엔 민주주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에도 이바지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한국의 신협 운동은 이제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며 “정체성 회복을 통해 신용협동조합이 제자리를 찾게 되면 신협 자체의 건전한 발전은 물론 다른 협동조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2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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