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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성경: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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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4 ㅣ No.750

가타리나의 영화 속 성경 (1)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노예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1만여 년 전 신석기 농경시대에 노예제도가 등장하고, 금속의 사용이 보편화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 이르러서는 노예가 급속히 증가했다. 노예제에 관한 최초 문헌은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60년께)이지만, 성경에서도 노예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탈출기는 바로 노예의 삶,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전까지 노예는 주요 교역품목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그야말로 노예 ‘사냥’이 이루어졌고, 이렇게 노예로 잡혀간 이들이 1500만명에 이른다 하니 가히 놀랍다. 노예제는 ‘천부인권’에 대한 자각이 싹트고, 인간이 같은 인간을 착취하고 잔인하게 부리는 그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면서 제도적으로는 사라졌다. 근대 노예제의 표상처럼 여겨지던 미국의 노예제 역시 1808년 미국 정부가 노예무역을 불법화하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노예제를 폐지한 북부에서는 흑인들을 자유인 신분으로 대우했으나, 남부는 목화 생산 증가와 이에 따른 노동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노예제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노예수입 금지조치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북부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남부의 노예주로 팔아넘기는 흑인 납치사건이 횡행하게 된다.

‘노예 12년’(스티브 맥퀸 감독, 2013)은 바로 노예 수입이 금지되었던 1841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이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공연 제안을 받아 가게 된 워싱턴에서 자신도 몰래 노예상인에게 팔려 루이지애나로 끌려간다. 자유인 신분이었으나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이름마저 빼앗긴 채 노예의 삶을 살게 된 솔로몬은 그 후 12년간 참혹한 노예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1854년 솔로몬이 구출된 지 1년 후 12년간 노예로 산 체험을 기록한 ‘노예 12년’이 출간되는데, 바로 이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는 흑인 노예의 시선으로 바라본 당시 미국의 실상, 그리고 제도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실추시킨 백인들의 역사를 그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노예로 팔려간 솔로몬이 발이 빠져드는 진흙탕에서 밧줄에 목이 졸리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서며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쇼트이다. 그의 뒤로 무심하게 묵묵히 일하는 노예들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섞인다. 삶과 죽음의 경계, 노예와 자유인의 기이하면서도 참혹한 동거와 이항대립. 노예의 삶을 이토록 적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또 있을까?

영화에는 두 백인 노예주 윌리엄 포드와 에드윈 엡스가 등장한다.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비교적 양심적이고 온화한 인물. 그는 솔로몬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며 노예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인물. 솔로몬이 자유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사들였고, 돈 때문에 악독한 노예주 엡스에게 솔로몬을 팔아버린다.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는 난폭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인물. 노예를 학대하고 강간하고 폭력을 일삼지만, 그는 또한 여성 노예 팻시(루피타 니옹고)를 강박적으로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 백인 노예주에게서는 인간의 이중성과 보편성이 드러난다. 온화하면서 잔인하고, 강하면서 나약하고, 물질을 가졌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한, 그래서 더없이 불행한 인간의 벌거숭이 모습. 이는 팻시를 두고 도망치듯 떠나는 솔로몬의 모습에도 어김없이 투영된다.

인간의 이중성은 종교에 접근하는 지점에서도 나타난다. 영화에는 백인 노예주가 하느님께 기도하고 성경구절을 읽는 장면이 있다. 포드는 물론이고 흑인노예들을 가혹하고 잔혹하게 다루는 엡스도 하느님의 말씀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 하느님이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인간은 창조주의 정신과 사랑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끝없이 죄의 나락으로 떨어져 허우적댄다.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절, 흑인은 백인의 소유물로서 인간의 존엄이 부정되었고, 일부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가한 잔혹한 폭력에 무심하거나 이를 정당화함으로써 인간성을 잃었다. 나쁜 제도는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를 불행과 피폐로 몰아간다. 미국의 노예제는 결국 북부와 남부의 물리적인 전쟁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살상되는 와중에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이 나온다.

‘노예 12년’은 ‘재미’있거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눈감지 않아야만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노예 12년’에서는 인간에게 내재한 폭력성과 차별의식, 자유와 희망에 대한 갈구, 용인된 제도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비인간적 행위와 사고를 합리화하는 지점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와 같은 영화의 묵직한 주제와 메시지에 아카데미는 작품상으로 화답했다. 또한 온 몸으로 불행한 삶을 견뎌야 하는, 그래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솔로몬에게 애원하다가 절망마저 체념한 듯 무표정한 여자 노예 팻시를 연기한 루피타 니옹고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당신을 닮기 바라면서,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지만 선함과 영성을 간직하고 체험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로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노예제가 금지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인신매매 등 현대판 노예제는 불식되지 않고 있다. 부당하게 인간을 속박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이 인간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신도, 제43호(2014년 봄), 조혜정 가타리나(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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