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21세기 대한민국의 숨은 노예 찾기: 우리나라의 인신매매와 노예노동 실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8 ㅣ No.1227

[경향 돋보기 -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숨은 노예 찾기 - 우리나라의 인신매매와 노예노동 실태



리아 이야기

필리핀의 작은 마을, 어렸을 적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던 리아는 동네 언니가 한국에 가수가 되려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언니를 찾아가 물어보자 언니는 연예기획사를 소개해 주었고 리아는 언니와 함께 한국으로 떠날 것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리아와 언니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평택 미군기지 근처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클럽)에 보내지고, 밤새도록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리아는 한 달에 최소 300점(1잔=1점)을 채우도록 강요를 받았는데, 휴일 없이 한 달 내내 일해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자 업주로부터 한 번에 20점을 메울 수 있는 바파인(Bar Fine · 업소를 통한 성매매)을 권유받게 됩니다. 리아는 처음에 성매매를 거부하지만 업주로부터 “더 나쁜 업소로 보낸다.”는 협박에 바파인을 택합니다.

너무 힘겨워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업주는 “계약서에는 6개월 일하기로 돼있으니 떠나려면 빚을 갚아야 한다.”고 협박했고, 술 접대를 싫어하는 리아에게 각성제를 ‘몸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복용하게 했습니다. 리아가 그래도 계속해서 항의하자 연예기획사는 보복하듯 리아를 더 열악한 업소로 보내버렸습니다.


타마르 이야기

인도네시아의 작은 어촌에 사는 타마르는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배를 타왔습니다. 타마르가 아버지가 되자 타마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자카르타에 있는 인력회사를 찾아가게 되었고, 인력회사에서 요구하는 담보물로 집문서를 넘겨준 뒤, 뉴질랜드에서 조업하는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을 타게 됩니다.

원양어선을 탄 타마르는 휴일도 없이 날마다 평균 16시간씩 일하곤 했는데, 조업기에는 밤에도 자지 못하고 졸음과 싸우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열악한 선실 환경 또한 타마르를 힘들게 했는데, 숙소에서 벌레가 나오는 것은 기본이었고, 타마르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는 한국인들이 먹다 남긴 음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지급되거나 김치만 지급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타마르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한국인 선원의 폭행과 성추행이었습니다. 한국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지친 타마르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욕과 함께 주먹이 날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다른 한국인 선원은 일하고 있는 타마르를 뒤에서 껴안기도 하고 숙소로 쫓아와 키스하기도 했습니다.

타마르와 선원들은 고향의 인력회사에 넘겨준 담보물 때문에 배를 떠날 경우 그나마 약속된 급여(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없게 될까 두려워 그저 지옥 같은 생활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구 이야기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지적 장애인 진구가 “돈도 많이 벌고 잠잘 곳도 주는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는 아저씨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솔깃해 따라간 곳은 신안의 염전이었습니다.

진구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4-5시간 이상 자지도 못한 채, 염전에서 고된 노동을 했는데, 염전 일뿐 아니라 염전주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구는 몸이 아픈 날에도 쉬지 못했으며, 추운 날씨에도 변변한 장갑은커녕 떨어진 장화를 신고 일을 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감금당한 채 일했으며, 염전주와 그 가족들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와 협박을 당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염전을 탈출하여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탔지만 택시기사는 진구를 다시 염전으로 데리고 왔으며, 이 일로 염전주에게 몰매를 맞아 사흘간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염전에는 진구 외에도 지적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들이 많았는데, 진구처럼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도 모두 지역주민의 신고로 다시 염전에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상동죄(異像同罪)

리아, 타마르, 진구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다른 시각,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사건들은 모두 인신매매라는 범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신매매라고 하면 흔히 강제로 사람을 납치해서 봉고차에 태워 파는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신매매의 정의는 조금 다릅니다.

유엔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의 부속서인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예방, 억제, 처벌을 위한 의정서’ 또는 이탈리아의 팔레르모에서 서명되었다고 해서 ‘팔레르모 의정서’라고도 하는 이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① 착취의 목적을 위해서(착취에는 최소한 다른 사람을 성매매시켜서 착취하거나 기타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 노예상태에 두는 것, 유사노예제에 두거나 그 관행을 하게 하는 것, 예속 상태에 두는 것, 장기를 적출하는 것 등을 포함함.), ② 협박이나, 폭력이나 다른 강제력을 사용하거나, 납치하거나, 사기하거나, 기망하거나, 권한을 남용하거나, 취약한 지위를 남용하는 등의 수단으로, ③ 사람을 모집하거나, 운송하거나, 이동하거나, 숨기거나, 인수하는 행위.”

정의에 따르면리아, 타마르, 진구는 모두 착취의 목적(성 착취 또는 강제노동)을 위하여 원래의 근로조건과 다른 조건을 제시받고(사기, 기망, 외국인, 여성, 장애인이라는 취약한 지위를 남용) 일터로 이동한 것으로 전형적인 인신매매의 피해자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은 인신매매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인데, 피해자들이 착취의 목적에 동의하여 일자리를 찾아간 것일지라도 여전히 인신매매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신매매의 정의에 따라 한국의 현실을 살펴볼 때, 2015년 한국에는 수많은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성 착취 목적으로 인신매매 당하는 한국인 여성들

최근에는 가출청소년들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잘 곳과 일자리를 제공해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성매매업소로 오게 되는데, 몸이 아파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며, 숙소에 CCTV가 있어 감시를 당하거나 방문을 자물쇠로 가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매매 여성들을 속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주거비용을 비롯한 화장품, 홀복, 심지어 강제적인 성형수술비에 이르는 선급금인데, 연 60%에서 많게는 연 2,000%가 넘는 이자 때문에 빚이 계속해서 불어나 여성들은 사채에 매이게 됩니다. 최근에는 사채업자들이 여성들을 일본, 호주, 미국 등 해외로 보내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성 착취 목적으로 인신매매 당하는 외국인 여성들

한국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여성들이 여러 경로로 입국하고 있는데 성 착취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 연예흥행 비자로 입국한 필리핀 여성들 : 많은 필리핀 출신 여성들이 연예흥행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입국한 뒤, 외국인 유흥업소 등에 배치되어 가수나 연예인이 아닌 유흥접객원의 역할을 하거나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예흥행 비자를 소지한 여성이 인신매매를 당하는 것에 대해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그리고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연예흥행 비자를 계속해서 발급하여 여성들의 인신매매를 묵인하고 있습니다.

· 결혼 이주, 관광으로 입국한 뒤 성 산업에 종사하게 되는 외국인들 : 결혼 이주여성의 경우, 살림은 물론 병든 부모님 수발을 들게하려고 결혼하거나, 출산 이후 아이를 빼앗은 뒤 쫓아내거나, 남편의 폭행으로 이혼하게 되는 경우 등, 한국에서 홀로 살아남으려고 일을 찾다가 성 산업에 유입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여성을 관광시켜 주겠다며 모집해서 입국시킨 뒤,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여성들은 관광에 든 비용을 갚아야 하니 마사지 업소에서 일을 강요받는데, 업소에서 일하다가 성매매까지 강요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노예노동에 혹사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고용허가제라는 시스템 안에서 사업장 변경과 재계약이 고용주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노동력 착취, 강제노동, 낮은 임금, 임금 체불, 폭행과 성폭행 등 부당한 대우가 발생하더라도 정당한 구제절차를 밟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나아가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제조업 외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진출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농축산업 노동자, 선원 이주노동자, 그리고 최근에 증가추세인 중국 요리사들은 모두 유사한 조건에서 노예노동에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강제노동의 지표가 되는 전형적인 요소들을 모두 겪고 있는데, 장시간 근로(하루 12시간 이상은 기본입니다. 선원의 경우에는 그물이 올라오면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계속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위반, 불법 근로계약서임에도 입국 시 지불한 담보물 또는 체불임금과 신분증 압류로 사업장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비자발적인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 농축산업 노동자 : 농축산업 노동자들은 심각한 착취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근로시간, 유급 주휴일, 일일 휴식시간과 관련한 보호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63조에서 농축산업이 제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쉬는 날도 없이 온종일 가혹한 조건에서 노동해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이 생활하는 환경 또한 열악하여 농장 안의 비닐하우스 기숙사 또는 낡은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화장실도 없이 지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문도 잠기지 않는 기숙사에서 생활한 경우도 있었고, 이 때문에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보고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에 파견하는 것은 불법임에도 농한기에는 이주노동자들을 다른 농장으로 불법 파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이주노동자들을 특정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당국에 발각될 경우 체포, 구금, 강제 출국이 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인권 · 동권 침해에도 농가들이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으므로 대다수의 이주노동자가 적절하게 권리 구제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 외국인 선원들 : 타마르처럼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에 탑승한 외국인 선원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지만, 연안에서 조업하는 연근해선에 탑승한 외국인 선원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인 선원들과 같은 일을 하지만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체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고된 노동과 더불어 선상에서 일어나는 욕설과 폭행 등에도 선원들은 이미 지급한 담보와 체불임금 때문에 견딜 수밖에 없기에 강제노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선원들은 산재를 당한 경우에도 치료를 받기는커녕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기도 하는데, 선주들이 언어 등에 취약한 외국인 선원들을 속여 귀국시키는 등 비용을 아끼려 마땅히 받아야 할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 중국인 요리사들 : 중국인 요리사들은 거의 1천만 원 전후의 높은 송출비용을 부담하고 한국에 오게 되는데, 이는 직업소개소에서 모든 비용을 이주노동자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입니다.

직업소개소에서는 사장님들에게 “한 푼의 비용도 들지 않으며, 한 달에 120만 원씩, 5년간 이직 불가능한 인력이기에 2-3명씩 채용하면 5년간 3억 원 이상의 임금을 절감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어 많은 중국식당 주인들이 관심을 두고 채용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렇게 채용된 중국인 요리사들은 저임금으로 장시간 동안 일을 하게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요리는커녕 주방보조와 설거지를 주로 맡기도 하며, 이탈을 방지하려고 보증금을 예치할 것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분증을 압류당한 상태에서 지내기 때문에 비자발적인 노동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숨은 노예 찾기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많은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의 피해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의 노예제에 대해서 쉽게 비판할 뿐, 오늘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에 대해서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늘 화려하고 강한 것을 향하지만, 인신매매를 당하고 노예노동으로 혹사당하는 이들은 늘 우리의 시선이 벗어난 곳에 있는 약한 이들(장애인,외국인,여성등)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세대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 노예제를 방관한 야만적인 시대로 기억할 것인지,노예제를 철폐한 승리의 시대로 기억할 것인지 - 는 오늘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감추어져 있는 약한 이들을 향해 돌릴 때, 숨은 노예를 찾아내고 자유롭게 하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 정신영 -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앨라배마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현재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와 해외 한국기업에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를 지원하는 공익변호사 단체인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정신영]



2,18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