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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현실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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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21 ㅣ No.891

[가정 - 사랑의 공동체]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현실과 한계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문제는 이미 1980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주교 시노드)에서 다루어졌을 만큼 교회에서 계속되는 사목적 어려움이다. 혼인유대는 부부가 교회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게 인도한다.

만일 이혼한 뒤 첫 번째 혼인에 대해 무효로 인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혼했다면 교회의 삶에 참여하는 문제나 성사 수여의 문제에서 어떻게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교도권은 자비와 진리 안에서 인간적이고 영적이며 사목적인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어떤 준거를 가지고 어떤 태도로 대해야 될까?

혼인과 가정을 복음화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우리의 몫은 무엇인가? 불완전한 방식으로 교회생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눈길’로 바라보며,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의 삶 안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그들의 사랑이 지닌 고유한 ‘신비’의 차원을 회복하여 선을 성취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며, 그들이 살아가며 일하는 공동체에 봉사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다(2014년 제3차 임시 주교 시노드 보고서, 25항 참조).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현실

별거와 이혼의 경험 속에는 오해와 불신, 배신감에서 오는 분노와 좌절, 상대방의 이해와 용서, 화해를 기다리며 견딘 외로움이 스며있다. 본인에게는 상당히 힘겨운 이런 상처와 분노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온 세상이 뒤돌아선 것 같은 느낌, 일어난 일이 모두 자기 탓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배우자와 자녀들 없이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다시 삶을 구축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세상이 정지되는 듯한 느낌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우울감이 뒤따르며 다른 사람들을 관계없는 사람처럼 느끼면서 자기 자신 안에 갇힌다. 사회활동 없이 집안에만 있던 이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구직의 어려움이 현실로 다가온다.

이런 모든 문제와 어려움은 정신과 인격성을 무너뜨리며, 살려는 의지와 인격으로써 자기의 회복 의지를 잃게 만들 위험이 있다. 적지 않은 경우 배우자에게 탓을 전가하려 하거나 모든 사람을 비난하려 든다. 또한 모두가 자기를 버린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때로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너무 붙들린 나머지 자녀는 이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 복수의 감정과 자포자기가 번갈아 찾아온다.

별거나 이혼은 가정의 모든 구성원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특히 자녀에게는 학습활동의 뒤처짐, 범죄의 유혹, 약물 남용, 인격적 불안정, 관계 맺기의 어려움, 주어진 임무에 대한 두려움, 직업의 잦은 실패, 소외 등의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상 별거나 이혼의 결과는 자녀들의 마음 속에 깊이 남아 평생토록 지속된다.

재혼은 이런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이 부부로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혼인과 가정생활은 그 시작에서부터 그리스도인 혼인에 요구되는 전적인 투신, 연대적인 증여와 상호성의 관계를 이루는데 흔들릴 소지가 있다. 이는 이런 약함이 본인들의 선택이기보다는 개인적 요인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상황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가정의 약함과 실제의 현실에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사목적 동행의 절박성을 일러준다.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의 신앙적 한계

사목적인 동반에 필요한 식별

혼인유대는 하느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서, 세례 받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고 완결된 혼인은 절대로 해소될 수 없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40항).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처지의 사람들이다.

따라서 성체를 모실 수 없고, 교회의 일정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 계약과 충실성의 표지를 거스른 것에 대해 뉘우치며 완전한 독신을 약속한 사람만이 고해성사로 화해할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384항 참조).

혼인의 불가 해소성은 교회법의 조항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에 관한 본디 계획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라고 분명히 확인해 주신 진리다. 눈여겨볼 것은 예수님께서 혼인을 두고 ‘너희가 선택한 것’이라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서 결합시킨 것’이라고 하셨다는 점이다. 그분은 인간이 스스로 그의 생명, 사랑, 가정을 반석 위에 세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 까닭에 무엇보다 먼저 사랑 안에서 원초적 신비, 곧 창조주의 사랑을 깨달아 알도록 초대하신다.

혼인성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이 지닌 이 고유한 ‘신비’의 차원을 회복하는 것이다. 만일 이 신비가 사라진다면 가정은 지속될 수 없고, 사회 자체도 그 심오한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러기에 혼인의 불가 해소성은 혼인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부과된 ‘멍에’가 아니라, 혼인으로 결합된 사람들에게 인격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충만히 실현하는 참행복에 이르도록 주어진 ‘선물’이다(제3차 임시 주교시노드보고서, 14항 참조).

사목적 관심과 접근

민법상 이혼 후 재혼한 이들도 세례 받은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이며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고 또 참여해야 한다(「가정 공동체」, 84항 참조). 교회 공동체는 이들을 여전히 자기의 자녀로 여겨야 한다. 이들의 자녀 출생, 세례, 가족의 장례 또는 고통, 가정방문 등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포착해서 섬세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줄 알아야 한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들을 비추는데 결코 지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랑의 법에 합당한 도덕적 삶을 살아가도록 이들을 북돋워야 한다. 그러나 사목적 관심과 접근이 혼인의 불가 해소성에 대한 오해를 낳지않 도록 신중해야 한다.

교회의 봉사에 대한 한계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전례의 봉사, 특히 독서, 교리교사, 대부모 등과 같이 완전한 그리스도교 증거를 요구하는 봉사들은 행할 수 없다. 같은 관점에서 사목위원에 참여하는 것도 배제된다.

그 반면 혼인 예식 가운데 증인을 서는 것에 대해서는 내재적으로 장애가 없다. 하지만 사목적 분별로 이를 피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증인을 서는 주체의 혼인 불가 해소성과 그가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그 불가 해소성 자체를 위반한 상황 사이에 분명한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50항 참조).

허락되지 않는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교회는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에게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와 영성체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허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그들 자신으로, 그들의 상태와 삶의 조건이 성사에서 선포되고 거행된 신앙과 객관적인 모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성사가 다시 허용되려면 이혼과 재혼의 상태를 그쳐야 한다. 곧 그들이 진실하게 뉘우치고, 성생활을 중단하고, 그들의 유대를 우정과 상호 존중과 도움으로 변화시키기로 약속하는 경우를 말한다(「가정 공동체」, 84항 참조).

이러한 교회의 제한은 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차별과 배제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가치에 대한 참된 존중이며, 무엇보다 복음에 대한 교회의 충실성에 대한 참된 존중을 나타낸다. 교회는 이들이 성체를 영할 수 없다는 것은 회심에 대한 호소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도와주어야 한다.


‘한처음’부터 있는, 그러나 늘 새로운

교회가 다양한 상황을 해석하고 제시하는 해결책이 많은 이의 눈에는 엄격하고 요구가 많으며 때로는 이해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을 교회도 잘 알고 있다.

교회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가치에 대한 염려를 함께 나누도록 하느님 말씀에 민감하고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 일꾼들을 초대한다. 실제로 사목은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나누는 활동을 비춰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것을 주어야 하고, 올바르게 요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자비와 진리 안에서 인간적이고 영적이며 사목적인 자세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들을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벗이요 이웃이 되는 것이다(루카 10,33-37 참조).

우리가 지녀야 하는 패러다임의 바탕은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부부와 가정이 말씀을 만나 그 말씀 안에 머물 때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요한 8,31-32 참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가르침과 법을 ‘의무’가 아닌 사랑의 ‘멍에’로(마태 11,28-30 참조) 기쁘게 받아들여 살아가게 해준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증거와 함께 하느님 말씀의 빛이 어려운 상황의 부부들과 가정의 굴곡진 드라마 안을 관통하게 하여 교회가 진리와 영적인 성장의 여정 안에서 그들과 함께 걸으며 가까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럴 때 그들은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요구하는 정신 안에서 성숙의 여정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체의 삶에 대한 초대를 깨닫고, 사랑의 ‘신비’를 믿으며 전하는 증인이 된다.

* 신정숙 안젤라 - 인보성체수도회 수녀. 현재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새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혼인과 가정 연구를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공역으로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이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0월호, 신정숙 안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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