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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교회의 혼인법과 가정공동체 -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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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12 ㅣ No.897

[복음살이]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교회의 혼인법과 가정공동체



지난 9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법상 혼인 무효 소송 절차를 간소화하여 재혼한 부부가 예전보다 더 빠르고 쉽게 새로운 혼인 생활을 인정받고 성사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조치를 담은 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교서는 혼인 무효소송을 반드시 교구 법원 2심까지 거치도록 했던 예전 규정과 달리, 1심만으로 그 절차를 간소화하여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했고, 소송비용도 낮추는 방안을 찾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교황은 “혼인 무효화를 촉진하려는 게 아니라 절차의 신속성과 정확한 간결성”을 강화함으로써 교회법상 인정받지 못하는 혼인으로 인해 고통 받고,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감을 느낀 이들을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안으로 초대하는 것에 초점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혼인하였지만 사회법으로 이혼한 뒤 재혼한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는 말씀에 따라 이혼과 재혼이 인정되지 않고 첫 번째 혼인이 매어있게 됩니다. 따라서 재혼은 간통 또는 중혼(重婚)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교회 법원으로부터 이전에 맺었던 혼인이 어떤 이유로 ‘처음부터 올바로 맺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무효성을 인정받으면 ‘혼인장애(조당)’에서 풀려 합법적으로 현재의 혼인을 인정받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경우 교회법원에서 혼인무효 선언을 받는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외국의 경우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번 조치는 혼인 무효 소송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서 재혼한 부부들이 좀 더 쉽게 과거 혼인 파탄의 상처를 극복하고 교회의 축복 안에서 현재의 혼인 생활을 영위하며 적극적으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사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려는 사목적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혼인의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과 ‘단일성(單一性)’이라는 가톨릭교회의 혼인의 원칙을 훼손하거나 약화시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혼인서약은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사의 품위로 올려져

가톨릭교회가 혼인에 관한 복잡한 교회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교회법은 혼인의 목적과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혼인서약은, 이로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인바,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성사의 품위로 올려졌다”(1055조 1항).

“혼인은 법률상 자격 있는 사람들 사이에 합법적으로 표명된 당사자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며, 이 합의는 어떠한 인간 권력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1057조 1항).

“혼인 합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철회할 수 없는 서약으로 서로 자기 자신을 주고받는 의지 행위이다”(1057조 2항).

이런 교회법과 함께 교회의 여러 문헌에서 가르치는 바를 종합하면 혼인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실 때부터 제정하고 의도하신 제도이기에 세상의 어떤 권력도 혼인의 목적과 특성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취소할 수 없는 “인격적 동의의 계약”을 통해 평생 자신을 서로에게 내어주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소명을 받게 되고 동시에 그 사랑의 결실로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자녀의 출산과 양육의 책임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부부의 사랑이야 말로 하느님 조건 없는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성사(聖事)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는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힘을 부여 받았고, 그리스도인 가정은 ‘작은 교회’로서 모범적인 사랑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징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소 5, 21.25)


혼인 서약은 서로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건 약속

그런데 가톨릭 신자조차도 처음부터 이러한 혼인의 목적과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인의 소명을 이루키는커녕 갈등과 불신을 키우다 이혼까지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이혼으로 인한 충격은 버림받는 배우자 뿐 아니라 부모의 결별로 인한 자녀에게 더욱 심각하기에 부부들은 혼인 유대를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는 원인 중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성격 차이’와 ‘배우자의 부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성격 차이’란 구체적으로 남자의 경우 ‘아내가 순종적이지 않다’, ‘시댁에게 잘하지 못 한다’라는 응답이 많고, 여자의 경우 ‘남편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매사를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라는 응답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규범에 매인 남성과 남녀평등 시대에 동등한 반려자로서 인격적인 존중을 요구하는 여성의 충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 실망하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고 상처를 오히려 키우는 말과 행동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 부부는 우선 신뢰와 사랑으로 평생 하나가 되기로 약속한 혼인서약을 기억하며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화의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실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배우자의 장점을 찾고 존경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지탱할 수 없는 경우에 우선적으로 별거를 선택할 수 있고, 첫 혼인의 무효를 인정받는 경우 합법적인 재혼의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혼하였다고 해도 아직 재혼하지 않았다면 교회법적으로는 이혼이 아닌 별거의 상태로 볼 수 있기에 다른 중대한 죄의 상태에 있지 않는 한 미사에 참석하여 영성체하는 것은 허락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 중에는 혼인 후 상황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혼인 서약은 서로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건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혼인을 결심할 때는 신중을 기하고 혼인의 본질을 이해하고 서약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아울러 부부의 사랑은 인내, 용서, 그리고 화해도 포함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고 성숙한 배우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 심각한 우리나라의 혼인과 가정의 붕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톨릭 신자부터 이러한 교회가 가르치는 성과 혼인, 사랑의 의미, 그리고 부부의 삶에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더 깊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1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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