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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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1: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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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04 ㅣ No.369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 연재를 시작하며


알쏭달쏭했던 성미술 알고 보면 가톨릭 영성과 역사가 한눈에

 

 

- ‘베드로 사도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토 3세 복음서, 1000년쯤, 필사본, 바이에른 주립도서관, 뮌헨. 대야에 발을 넣고 있는 이가 베드로 사도이다. 중세 서방 교회 도상학의 기초가 되는 필사본에는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술의 형식보다 주제가 되는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을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이라고 한다. 그중 그리스도교 미술(이하 성미술)의 주제와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그리스도교 도상학’이라 한다. 말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듯이 성미술도 초기에는 단순한 의미의 회화적 형식에서 시작해 점차 신학과 사상, 사회, 문화적 정신을 반영해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은 성미술의 발전 과정을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사와 영성사, 시대사 안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성미술을 이해할 때 보다 풍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미술이 품고 있는 다양한 기호들을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과 전문가의 해석을 종합해 소개하고자 한다. 

 

도상학은 물론 미술사나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기자에게 어떻게 보면 이 연재가 무모한 도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성미술의 도상학은 일반 도상학의 관점과 사뭇 달라야 한다는 데서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그 다름의 시작은 분명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에 기초한다. 성미술의 모티브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도학상의 용어로 해석하지 않고 교회의 눈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로 풀이해 나가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어떻게 풀이해 갈 것인가

 

성 베드로 사도를 표현한 성미술 작품들로 연재를 시작하며 이 연재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선보이고자 한다.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그림)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교황권과 관련해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은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그림은 초세기부터 중세 초기까지 복음을 설명하는 정례적인 형식의 도상이었다.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에 의해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있는 니콜라스 3세 교황’, 1278~1279, 프레스코화, 라테라노 궁전, 로마. 맨 오른편에 있는 이가 베드로 사도이다.

 

 

10세기 말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한 이후 유럽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교 왕국으로 성장한다.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면서 유럽은 ‘정화와 회개의 시대’에 접어든다.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최후의 심판에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희생과 순교를 마다치 않는 종말 신앙이 확산된다. 이때부터 13세기 전반까지 유럽 전역을 복음화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하나 된 대륙으로 이끈 교황들은 신성로마제국의 왕보다 더 강한 교황권을 행사했다. 강화된 교황권을 나타내기 위해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도 점차 그리스도와 독립된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황을 상징하는 성 베드로 사도의 손에는 수위권을 상징하는 ‘천국의 열쇠’가 들려지기 시작한다. 

 

13세기 말 십자군 전쟁 실패로 그리스도교 왕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제도 교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유럽 여기저기서 불거졌다. 뼈아프게도 교회 가르침에 반대해 정통적인 신앙과 공식적인 전례를 거부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이단 심문이 이루어졌고, 교황의 수위권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황제들의 도전에 교황은 파문이라는 영적 무기를 남용했고, 황제들은 이에 맞서 반성직주의를 확산시켜 나갔다. 

 

교황권이 약화되면서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도 또 다른 변화를 겪는다. 교황들은 자신이 다른 주교들과 달리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베드로 사도의 권한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유일한 목자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에 주교관을 씌운다. 아울러 교황들은 일반 세속 군주와 달리 그리스도 왕을 대리하는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삼중관을 쓴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을 만든다. 그리고 성 베드로 사도에게 ‘왕 중의 왕, 군주 중의 군주, 멜키체덱을 잇는 영원한 사제’라는 글이 새겨진 제의를 입히기도 했다.

 

이처럼 주제별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성미술 도상의 변천을 독자들과 함께 알아가 보고자 한다.

 

- ‘구원의 길인 교회’, 1366~1367, 프레스코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피렌체. 가운데 천국의 열쇠를 쥐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고 있는 이가 베드로 사도이다.

 

 

- ‘무명의 여주인과 성 안나, 그리스도폴, 성 제레온, 베드로 사도’, 1480, 오크페널,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쾰른. 가운데 삼중관을 쓰고 목장을 들고 있는 이가 베드로 사도이다.

 

 

- ‘성 베드로 사도’, 치마 다 코넬리아노(Cima da Conegliano) 작, 유화,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 밀라노. 양편에 세례자 요한과 바오로 사도를 두고 가운데 베드로 사도가 사도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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