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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일도ㅣ독서기도

12월 11일 성 다마소 1세 교황: 우리는 사랑에서 나오는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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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18 ㅣ No.183

12월 11일 성 다마소 1세 교황

 

독서기도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글 ‘파우스투스를 거슬러’에서

(Lib. 20,21: CSEL 25, 562-563)

 

우리는 사랑에서 나오는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순교자들을 공경합니다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순교자들을 본받을  마음을 북돋우고 그들의 공로를 함께 나누며 그들의 기도가 주는 도움을 받고자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경건한 예식으로 그들을 경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무덤에다 제대를  세울 때 그것을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에 대한 기념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 중 누가 “이 제사는 베드로 당신께, 바오로 당신께, 또는 치프리아노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거기에 바치는 제사는 월계관을 받은 순교자들의 기념 성당에서  바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고 그 월계관을 주신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바로 그 장소는 우리가 순교자들을 본받을 수 있는 그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본받는 데 있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좀더 깊이 되살아나게 하는 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을 공경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바치고자 하는 경건한 성도들을 공경할 때 가지는 같은 사랑의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공경합니다. 그러나 모든 투쟁을 이겨내고 승리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공경은 현세에서 아직 전투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바치는 것보다 더 경건하고도 확고한 공경입니다.

 

그리스어로 “라트리아”(경배)라고 하는 흠숭은 하느님께만 바치고 또 하느님께만 바쳐야 한다고 우리는 가르칩니다. 경배는 오직 하느님께만 합당히 바칠 수 있는 흠숭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서 바치는 제물은 “라트리아” 즉 경배로서 바치는 제물입니다. 그래서 우상들에게 바치는 제사는 “이돌로라트리아” 즉 우상 경배(숭배)라고 합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이나 거룩한 영혼들이나 천사들에게 이와 같은 제사를 절대로 바치지 않으며 또 바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만일 이런 오류에 빠진다면 우리는 건전한 신앙 교리에 따라 정정이나 경고로써 마땅히 그의 잘못을 고쳐 줍니다.

 

성인들이나 일반 사람들도 하느님께만 합당히 바칠 수 있는 이 경배를 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이렇게 했습니다. 리가오니아의 시민들이 그들이 행하는 기적을 보고 몹시 놀라 그들이 신인 것처럼 그들에게 제사를 바치려 했을 때 이 두 사도들은 자기 옷을 찢어 맹세하며 자기들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납득시켜 제사를 바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지만 참아 주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이것이지만 우리가 할 수 없이 고쳐 주어야 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잘못을 고쳐 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참아 주어야 합니다.

 

 

응송  시편 115(116하),15; 33(34),21; 유딧 10,3 참조

 

◎ 갸륵할쏜 주님의 눈에, 성도들의 죽음이여, * 고스란히 그의 뼈를 지켜 주시니, 그 마디 하나도 아니 부러지리라.

○ 주께서는 화려한 옷으로 그들을 입히셨도다.

◎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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