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토)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이중적인 악, 대리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20 ㅣ No.884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이중적인 악, 대리모


대리모는 자연적인 성관계를 통해서 자녀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아이를 낳는 데 이용되는 여성을 가리킨다. 예전에는 연속적인 과정으로 이해되었던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이 보조 생식술의 발달로 이제는 정자와 난자의 채취, 체외수정과 배양, 그리고 체외 수정란의 자궁착상,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분절시켜 개입이 가능한 과정으로 이해 가능하게 되었다.

대리모는 자신의 난자를 이용해서 체외수정을 시킨 뒤 다시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아이를 낳는 대리모와, 이미 생성된 수정란을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아이를 낳아주는 대리모로 나누어진다.

전자의 경우는 대리모가 유전적인 어머니이자 임신하여 낳아준 어머니라고 볼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아이와 유전적인 연관은 없고 임신하여 낳아주는 역할만을 하게 된다.


대리모 계약

대리모는 아이를 낳으면 양육권을 포기하고 아이를 의뢰한 부부에게 양도하겠다는 계약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직접적으로 대리모 계약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민법에서는 자녀를 포태하여 출산한 자를 생모로 인정하고,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 위반”인 대리모 계약을 무효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1986년 우리나라에 처음 시험관 아기 시술이 소개된 뒤 1989년 이후 몰래 대리모 계약이 이루어져 왔다는 보고가 있다.1)

일본의 경우, 어떤 여성이 암으로 자궁을 적출한 뒤 남편과의 수정란을 이용해서 미국 여성에게 대리모 출산을 의뢰한 뒤 지난 2000년 3월 쌍둥이를 얻었다.

미국 네바다 주 법원은 이들 자녀에 대해 대리모 의뢰 부부를 부모로 인정했으나, 일본 대법원은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얻은 경우 대리 출산을 의뢰한 부모와 모자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2)

대리모 계약은 한편으로 혈연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부부가 자신들과 (또는 그 가운데 한 명과) 유전적으로 관계가 있는 아이를 낳겠다는 욕심과, 다른 한편으로 아이를 낳아주고 큰돈을 벌겠다는 상업적인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돈을 받지 않고 불임 부부를 위해 대리모가 되어주는 경우도 있다.


대리모 관련 분쟁

상업적인 대리모 계약과 마찬가지로 비상업적인 대리모 계약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다. 우선 오랫동안 인류 사회의 뿌리가 되어온 가족 공동체가 위협을 당한다.

대리모를 통한 임신과 출산 행위의 대체로 부(남자)와 모(여자)로 이루어진 가정이 아니라도 동성부부 또는 혼인을 하지 않은 독신남성이나 독신여성이 자녀를 갖게 되는 경우도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여성은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어머니로서 뱃속의 아이와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 유대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대리모의 경우 그런 유대감이 존중받지 못하고 침해된다. 실제로 대리모 계약을 하고 임신 기간 동안 아이에 대한 유대감이 형성되어서, 아이를 낳은 뒤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법정 싸움까지 간 사례들이 여러 번 있었다.

대리모 관련 분쟁에서 가장 고전적인 사례는 미국에서 있었던 이른바 베이비 M 사건이다.3)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는 윌리엄 스턴과 엘리자베스 스턴 부부와 대리모 계약을 맺고 윌리엄 스턴의 정자를 인위적으로 체내에 주입시켜 임신한 뒤 1986년 3월 27일 베이비 M을 낳았다.

화이트헤드가 출산한 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아이를 돌려주려 하지 않자 스턴 부부는 화이트헤드를 상대로 친권과 양육권 소송을 냈다. 뉴저지 대법원은 1988년 대리모 계약이 공공정책에 반하므로 무효이지만, 아이에게 최고의 이익이 되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하였다.

결국 하급 법원은 스턴 부부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인정하고 화이트헤드는 법적 어머니로서 면접교섭권만을 확인해 주었다. 베이비 M은 18세가 된 2004년에 화이트헤드의 친권을 법적으로 종료하고 양육을 통해 엘리자베스 스턴을 어머니로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4)

보조 생식술을 통해서 가능한 부모의 최다수는 몇이나 될까? 아이를 의뢰한 부부, 난자 제공자, 정자 제공자, 대리모 이렇게 다섯 사람이다.

1993년 6월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친권과 양육권 분쟁에 다섯 사람의 부모가 관련된 사례에서 대리모 계약을 지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례에서는 대리모와 난자를 제공한 유전적 모와 아이의 출생을 의뢰한 사회적 모가 모두 달랐다.

법원은 유전적 모와 출산한 모가 다른 경우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의도하여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한 의뢰인이 바로 자연적 어머니임을 인정해 주었다.5) 대리모 계약을 맺는 많은 여성들이 실제로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유대감을 형성해서 아이를 내주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중적인 악을 내재한 대리모

대리모 계약이 외면상으로 자유로운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성이 대리모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으며,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고유한 권리 행사로부터 정작 여성 본인은 수단화되고 철저하게 소외된다.

또한 임신 기간 중 자유로운 생활을 감시당하고 아이가 기형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낙태를 강요당하는 등 임신과 출산의 과정 동안 대리모의 인권과 건강권, 그리고 복지가 심각하게 위협을 당한다. 더구나 자신의 몸속에서 소중하게 키운 생명을 낳자마자 포기하며 아이와 형성한 유대감이 부인당하는 등 여성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물론 대리모 계약 뒤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 분쟁이 생길 경우 가장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태어나는 아이의 권리와 복지이다. 사랑하는 부부의 책임 있는 행위에 대한 결과로서 자녀는 하느님의 선물과 축복이므로 아이는 조건 없이 존중받아야 하며 사랑하는 부모의 품에서 책임 있게 양육될 권리가 있다.

대리모를 포함하는 보조 생식술은 혼인과 임신, 그리고 출산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임의적 선택과 인위적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대리모 시술은 한편으로는 혈연에 집착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산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생물학적이며 유전적인 연결까지도 부인하고 양육과 사회적 친권을 우선시할 수 있는 등 이중적인 악을 내재하고 있다.


자녀 출산은 부부 간의 신의

임신과 출산은 누군가의 의도로 자의적으로 시작하고 종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 출산은 사랑하는 부부의 책임 있는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 관계 속에서 부부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고유함으로 서로에게 봉헌하며 일치를 이루는데, 이러한 서로간의 존중과 신뢰가 바로 인간 생명이란 선물을 통해 구현된다.6)

“결혼 내에서의 자연스러운 성행위를 대체하는 일체의 보조 생식술은 부부의 상호 일치와 인간 출산의 존엄성에 위배되는 행위이다.”7) 출산에 관한 의학적 개입의 기준은 인격체로서의 인간, 고유한 성, 그리고 그 기원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규정된다.

의학적 개입은 부부행위를 촉진시켜 주거나 정상적으로 행해지는 부부행위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의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 의학적 기술이 부부행위의 결과도 아닌 출산만을 위한 목적으로 쓰일 때, 의학적 행위는 부부 일치에 봉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출산 기능만을 대체함으로써 부부와 새로 태어날 아이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위배되는 것이다.8)

가톨릭교회는 부부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에 따른 자녀의 출산을 대체하는 일체의 보조 생식술, 곧 대리모는 물론이고 시험관 아기 시술에 반대한다.

대리모는 모성적 사랑의 의무와 부부간의 정절, 그리고 책임 있는 모성으로서의 의무를 객관적으로 다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제3자로부터 생식세포를 받는 것은 부부 간의 신의를 해치며, 상호간의 일치라는 결혼의 중요한 가치를 손상시킨다.9)

부부 외 인공수정은 유전적 부모와 출생시킨 부모, 그리고 아이를 성장시킬 책임 등에 혼선과 파탄을 초래하며, 부모와 자식 간의 근본적인 관계를 인위적으로 박탈하여 태어나는 자녀의 인격적 주체성의 성숙에도 장애를 입히게 된다.10)

인간 출산은 하느님의 풍부한 사랑으로 무장한 부부의 책임 있는 협력을 통한 것이어야 한다. 아이는 부부가 가장 감사해야 할 결혼의 선물, 곧 하느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며 부부가 서로 주고받는 상호 봉헌 행위이자 사랑의 살아있는 증거이다.11)

 

--------------------------------

1) “우리나라에서도 1989년 이후 암암리에 임신대리모를 사용한 불임 치료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7년 7월 박재완 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임신대리모는 4-6천만 원, 중국인은 2-3천만 원 정도를 대리임신에 대한 대가로 받고 있다고 한다.” 세계일보, 2009년 9월 9일자 기사. 권복규, 김현철 지음, 「생명윤리와 법」, 이화여자대학교, 2009, 64쪽에서 재인용.

2) “민법에 대리 출산의 규정은 없지만 민법의 해석으로는 대리 출산으로 태어난 어린이의 어머니는 임신, 출산한 여성이 되며, 출산하지 않은 여성은 난자를 제공한 경우라도 모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위의 책 73쪽에서 재인용.

3) Baby M, 537 A.2d 1227, 109 N.J. 396 (N.J. 02/03/1988).

4) “Now It's Melissa's Time.” New Jersey Monthly. 2007; “Baby M” http://en.wikipedia.org/wiki/Baby_M에서 재인용.

5) “Surrogacy.”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Marriage and Family. 2003. Encyclopedia.com. 17 Sep. 2011 http://www.encyclopedia.com.

6) 교황청 신앙교리성, 「생명의 선물(Donum Vitae)」: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현대 세계의 몇 가지 의문에 대한 대답들, 1987년 2월 22일. 서론 5. 교도권의 가르침.

7) 같은 글, Ⅱ. 인간 출산에 대한 개입, 부부 외 인공수정, 1. 왜 인공출산은 결혼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나?

8) 같은 글, Ⅰ. 인간 태아에 대한 존중, 6. 인간 출산 기술과 관련된 배아를 다루는 다른 기술적 조작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을 할 것인가?

9) 같은 글, Ⅱ. 인간 출산에 대한 개입, 부부 외 인공수정, 3. ‘대리모(surrogate motherhood)’는 도덕적으로 타당한가?

10) 같은 글, Ⅱ. 인간 출산에 대한 개입, 부부 외 인공수정, 2. 부부 외 인공수정 또한 부부의 권위와 결혼의 진실성을 따르는 것인가?

11) 같은 글, Ⅱ. 인간 출산에 대한 개입, 부부 간 인공수정, 8. 결혼생활에서 불임으로 인한 고통.

* 김수정 루치아 - 미국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11월, 김수정 루치아]



3,56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