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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 산책: 철학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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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1-09 ㅣ No.143

[신승환 교수의 철학 산책] 철학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


독일 낭만주의 시인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는 철학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어디에서든 고향을 찾고 고향을 만들려는 마음의 충동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향이란 자신이 태어난 곳이나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마음의 고향, 또는 나의 존재가 태어나고 머물러 있는 그 공간을 말한다. 철학이란 자신의 존재가 태어나고 머무르는 곳, 존재의 근거를 찾는 근원적인 향수라는 뜻이다.

지성적 존재인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자기 나름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며, 결단한다.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이 우리네 삶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해 존재를 결정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과 느낌, 행동이 모여 삶을 만들고, 그것이 결국 우리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미래가 결정된다. 그 모두가 바로 나의 삶이며 나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해하고 해석하는 그 크기와 그 방향, 그 형태가 곧 나의 존재이며 나의 삶이다. 여기서 철학은 이렇게 나의 존재와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나의 근거로 돌아가려는 갈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하는 것이 아닌가. 다만 철학자들은 이론적이며 학문적으로 철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존재를 통해 그렇게 철학적으로 살아간다. 그러기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한다. 누구나 이해하고 해석하는 삶을 살고, 누구나 그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게 존재하기에 우리는 모두 철학하는 것이다.

철학이 향수라고 말하는 까닭은 철학하는 생각과 철학에 따른 행동이 우리의 존재 근거를 향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고 시작된 근거를 향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으며, 존재의 고향을 향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그 고향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며, 그 고향을 찾아갈 때 존재 근거에 자리하게 된다. 바로 이 존재의 고향을 향하는 지성적 노력, 그것이 철학이다. 그러기에 철학은 전혀 실용적이지 않지만, 철저히 인간의 삶과 존재에 관계되는 본성적 그리움이다.

우리 삶과 존재를 나의 고향에 자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한다. 굳이 그것을 철학이라 이름 붙일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고향을 잊어버리게 되며,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존재의 고향에 머무르기 위한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고향을 향한 존재의 그리움을 그리워하자. 우리는 모두 그 길 위에 있다.

[가톨릭신문, 2012년 8월 19일, 신승환 교수(가톨릭철학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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