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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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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1 ㅣ No.926

[영화 속 신앙 찾기] 동주

 

 

이육사(1904-1944년), 이상화(1901-1943년)와 함께 3대 저항시인으로 불리며 일제강점기를 살며 저항했던 윤동주 시인, 그의 고종사촌으로 가장 친한 친구이며 문학적 경쟁자였던 송몽규. 그들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인생처럼 잘 알려져 있지만 또한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1935년, 은진중학교에 다니던 동갑내기 동주(강하늘 분)와 몽규(박정민 분). 콩트 ‘술가락’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몽규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동주는 시에 대한 마음을 숭실중학교 문예지에 ‘공상’이란 시를 실으며 더욱 깊이를 더해간다. 이후 몽규는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체포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고, 마침내 둘은 1938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며 경성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푸르른 청춘의 삶을 젊은이답게 사랑에 가슴 설레고, 문학과 혁명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창씨개명’이란 일본제국주의의 압박에 시달리던 이들은 결국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을 위해 힘쓴다. 더욱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몽규, 더욱더 깊어진 자아성찰로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통해 혼란과 비극의 시대를 극복해 나가려던 동주.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압제의 순간은 물론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며,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이고, 또한 서로를 격려하는 경쟁자였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짧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실화 영화 속 사실과 허구

 

영화는 사실(팩트)과 허구(픽션)를 뒤섞어 관객에게 보여준다. 동주와 몽규가 함께 잡지를 만들 때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활짝 웃으며 등사 롤러를 밀던 해맑은 청년이 바로 문익환 목사다. 또한 문익환 목사의 아들 배우 문성근은 동주가 존경하던 시인 정지용으로 출연했다.

 

영화에서 동주의 친구인 이화여전의 ‘여진(신윤주 분)’과 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 여인 ‘쿠미(최희사 분)’는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 두 여인을 통해 이들의 청춘이 청춘다워졌다고 할 수 있다.

 

동주가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여학생들과 소풍을 다녀온 사진이나 그의 시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해석해 감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한 영화에서 ‘쿠미’를 보호해주는 ‘다카마스’는 실존인물이다. 윤동주가 존경하던 일본인 교수로 당시 요시찰인으로 검거되었던 사람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며 약 30% 정도의 허구가 가미되어 영화적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단아한 흑백 언어

 

영화는 흑백으로 만들어졌다. 북간도의 용정과 경성, 그리고 교토와 도쿄 등 장소가 많았고, 시대를 표현하는데 수많은 장치들이 필요했지만 6억 원가량의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다. 당시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묘책으로 흑백영화 제작이 결정되었다.

 

이준익 감독은 이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시대적인 사실감이 배가 되었다. 오히려 컬러 영화보다 더 섬세한 작업을 거쳐 제작이 이뤄졌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시대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그 진정성을 넓게 확보시켰다.

 

또한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끝자막(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까지 감상하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실제 모습과 약력이 등장한다.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는 윤동주의 약력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로만 생각했던 관객들의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의 목소리가 담긴 엔딩곡, 박정민이 직접 촬영한 송몽규의 묘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자리한 사람이다.

 

 

영상 언어로 담아내는 실화 영화

 

미국이나 한국에서 실화 영화는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미국 최대의 영화상인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레버넌트’가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월 말 개봉한 ‘귀향’과 ‘동주’가 순탄한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실화 영화가 지닌 힘을 알 수 있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나 인물을 다룬 영화를 ‘실화 영화’라 한다. 세상에 알려진 사실, 인물 묘사가 만듦새를 더 어렵고 섬세하게 하는 작업이고, 관객은 자신의 지식과 같은 것을 작품에서 찾으려 하기에 객관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작품에서 빚어지는 감동은 더 깊고 풍부해질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실화 영화’ 인물을 다루는 경우 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전기 영화, 직업 또는 업적에 치중하는 미술 · 음악 · 문학 · 종교 · 경제 · 정치영화, 인물 배경의 시대를 담은 사회 영화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제작자나 연출가는 어떻게 풀어갈 지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정의를 위해 무관심을 극복해야 한다

 

지난 1월 1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고통받는 비극과 부정의 폭력에 맞서 평화를 이루려면 무관심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교황님은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12억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 무관심을 극복하고 다시 태어날 것”을 당부하셨다.

 

지난해 12월 28일 정부는 한국과 일본 간에 ‘일제에 의한 위안부 피해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의 생각을 직접 듣지 않고, 그분들이 납득할만한 합의가 아닌 마무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밖에도 표현의 자유와 작품의 상영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국민 개개인에 대한 사생활 침해가 분명할 것으로 보이는 ‘테러방지법’ 등 이 땅에서 행해지는 옳지 못함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몽규가 “국가의 주권을 찾기 위한 길은 도대체 뭐냐?”고 따져 묻던 장면의 교실 칠판에는 ‘의지(意志)와 지성(知性)은 같은 것이다.’라는 글이 쓰여있다. 이것은 단순히 교실에 대한 미술적 표현이 아니라 ‘동주와 몽규’의 삶을 통해 제국주의의 부도덕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분연히 일어나는 젊은 정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울 청운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필자에게는 자하문 언덕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며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윤동주의 시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윤동주의 언덕’으로 꾸며진 그곳에 가면 붉은 벽돌에 빨간 지붕으로 만들어진 내 유년기의 집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곳에서 이따금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리며 올바르고 정의로움에 대해, 그리고 청년 시절의 꿈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평소 지녔던 서정적인 이미지의 윤동주 시인을 뛰어넘어 그가 추구했던 사회, 그리고 꿈꿨던 세상을 이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면, 시인과 혁명가 두 사람은 물론 그 시대에 살다 사라진 수많은 젊은 꿈들이 기뻐할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 ‘동주’가 세상에 나온 가장 큰 뜻일 게다.

 

* 정지욱 이냐시오 - 영화평론가. 일본 리웍스(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과 푸드티비 푸드필름 페스티벌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심 심사위원과 일본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본심 심사위원, 영화 시민연대 대표를 맡았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정지욱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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