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화ㅣ우화

[사랑] 저는 발이 세 개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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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련 [jimi] 쪽지 캡슐

1999-06-12 ㅣ No.8

[1999년 6월호 좋은느낌, 좋은만남]

 

저는 발이 세 개인 걸요

 

 

  작년 여름의 일이다. 친정에 일이 있어 18개월 된 아들 녀석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더운 날씨 때문에 아기를 업을 수가 없어서 짐과 아기를 양손에 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경동시장과 시외인 광릉내를 오가는 버스라 자리양보는 아예 포기했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서울로 향하는 내 마음은 친정 나들이에 대한 기대로 들더 있었다.

 

  시외 버스는 으레 정류장에 사람이 없으면 그냥 통과하기도 하고 가끔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손을 흔들면 세워주는 여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날도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70세 이상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하셨고 맘씨 좋은 기사 아저씨가 할머니 앞에 버스를 세웠다.

 

  버스 안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자리가 없었다. 나는 아기에다 짐까지 있다는 핑계로 선뜻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데 다른 사람들도 묵묵부답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목발을 의지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 할머니, 여기 앉으이소"

 

  "젊은 양반, 아니야, 당신이 앉구려. 난 바닥에 앉으면 돼"

 

  할머니는 손을 저으며 사양을 하셨다. 그러나 젊은이는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요, 지는 발이 세 개 아닌교. 걱정 말구 앉으이소" 하며 할머니를 자기 자리에 앉혔다. '발이 셋이라...' 자기의 신체장애를 떳떳하게 밝힌 그에게 할머니께서는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도 공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순간 더위는 사라지고, 가슴에는 상큼한 즐거움과 함께 부끄러움이 교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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