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윤리: 생명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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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5-11 ㅣ No.559

[아하! 생명윤리] (47 · 끝) 생명의 문화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생명의 문화 건설을 교황님의 고뇌와 기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장우의 화백.

 

 

'아하! 생명윤리'를 마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죽음의 문화를 진단하고, 그 극복을 위한 성찰과 고민을 지난 1년 동안 이 귀중한 지면을 빌어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보람이 컸다. 그러나 그 고민과 성찰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어쩌면 생명을 위협하는 더 큰 도전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데에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전혀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진단해 본 여러 형태의 생명 경시 현상들을 들여다 볼 때, 그 극복을 위한 해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반생명, 죽음의 문화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진단한 것처럼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의 실종"에서 비롯되었고,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의식까지도 사라져 버렸다면 해답은 이미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낙태, 안락사, 전쟁, 테러, 살인, 폭력, 다른 한편으로는 실험실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형태의 비인간적 실험과 연구 등은 이미 인간 자신에 대한 조직적 공격의 형태로 제도화 되어 가고, 이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나아가 하느님의 존재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약화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세상이 하느님 의식을 실종할 때 이는 곧바로 인간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느님 의식의 실종이 죽음의 문화를 가져왔다면 생명의 문화 건설을 위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곧 우리 사회가 하느님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 이것이 해답이며, 돌파구이다. 성 그레고리오가 말했듯이 우리 인간은 먼지이고, 풀이며, 덧없는 존재, 보잘 것 없는 존재였지만 우주의 하느님으로부터 자녀로 받아들여졌고, 하느님의 넘쳐흐르는 은총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 인간이 영원한 존재,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의식의 시작이며, 여기서부터 인간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 문화 건설을 위한 교과서'라고 불리는 「생명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생명의 복음을 주셨고, 바로 이 복음으로 우리가 변화되고 구원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백성입니다"(79항).

 

생명의 백성인 우리 모두는 생명에 대해 봉사할 의무를 갖는다. 이는 또한 우리 교회가 수행할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으로 재무장하고 우리 인간을 가장 철저하게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닮아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기본적 소명에 충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조직을 재정비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생명에 봉사하자. 그렇게 한다면 우리 사회에 생명 문화는 활짝 피어나지 않겠는가.

 

* 지난 1년 동안 집필해 주신 이동익 신부님과 장우의 화백, 그리고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평화신문, 2007년 5월 6일,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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