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의 성모신심 - 조선사람 마음속의 성모 마리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9 ㅣ No.178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의 성모 신심

 

조선사람 마음속의 성모 마리아

 

 

천주교가 수용되던 18세기 전후 조선은 부모에 대한 효성과 임금을 비롯한 윗사람들에 대한 공경을 특히 강조했다. 이러한 문화풍토에서 신앙의 선조들은 하느님을 ‘큰 임금이요 큰 어버이’[大君大父]로 받들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대충대효’(大忠大孝)를 강조해 왔다. 당연한 결과로 하느님에 대한 공경과 관련한 여러 신심행위들이 성행했다. 당시 성행하던 신심 가운데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주목된다. 그때의 신조들은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합당한 공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성모 마리아를 담아냈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보강시켰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해

 

박해시대 신자들은 “성교요리문답” 같은 교리학습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구속에 관해 배우면서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정통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당시의 교리서에서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탄생하였음을 믿을 교리로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요 평생 동정임을 강조해서 가르쳤다.

 

세례를 받고 입교한 신자들은 ‘사도신경’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음을 믿는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 관한 기도문들을 통해서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키워나갔다. 당시에 필수적으로 암기해야 했던 기초적인 기도문 ‘여섯 끝’[六端] 안에는 성모경이 포함되었다. 그 뒤 여섯 끝의 기도문이 열두 끝[十二端]으로 확대되었을 때도 성모경은 당연히 포함되었다. 그리고 성모경을 중심으로 제정된 ‘매괴신공’ 곧 ‘묵주의 기도’는 당시 신자들이 가장 즐겨 바치던 기도의 형식이었다.

 

한편, 박해시대의 대표적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 실려있던 ‘성모를 찬송하는 경’을 비롯한 여러 기도문들은 성모 마리아의 일생에 대한 이해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키워주었다. 또한, 19세기 중엽 박해시대 때 신자들 사이에 구송되었던 ‘천주가사’의 하나인 ‘사향가’(思鄕歌)에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해 말하면서 “하느님의 전능을 이해하면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도 인정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의 근원이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승인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때의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는 사람들을 도와 혼미한 일들을 깨우치고 기묘한 일들을 깨닫도록 해주는 분으로 인식했다. 또한 성모 마리아는 인간과 하느님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중개자였다. 그러기에 순교자 김종한은 “성교회의 머리는 천주님이요, 목은 동정 성모 마리아이시며, 우리들은 모두 그 지체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인간이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1827년 경상도 지역에서 체포되어 감영의 옥에 수감되었던 박보록 순교자는 감사가 저명한 불교의 승려와 토론을 주선하자, “나와 같이 무식한 사람이 내 힘만 가지고서야 스님을 어떻게 당해낼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천주와 성모의 도우심만 믿으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걱정을 하겠는가?”라고 말하며, 토론에 임하였다.

 

 

발전하는 성모 신심

 

박해시대 조선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어려움에 천한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확신하였다. 우리는 일한 예를 김대건 성인의 행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842년 변문을 통해 몰래 통과하여 입국하고자 하던 때나, 경험도 없는 신자들과 함께 거친 황해를 항해하다 폭풍을 만났을 때에도 성모 마리아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었다. 또한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직후에 받게 되는 사심판과 세상 종말 때의 공심판 때에도 자신들을 도와줄 분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운명의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성모 마리아와 같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박해시대의 진실한 신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예수 마리아’를 입에 달고 살았으며, 동정을 지키고자 했던 여러 사람도 동정생활의 모범을 성모 마리아에게서 찾았다. 그들은 체포되어 고문당할 때에도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고통을 이겨나갔다.

 

이처럼 성모 마리아 신심은 박해시대를 통틀어 교회에서 가장 유력한 신심이었다. 우리나라 초기 교회사는 윤점혜 순교자가 1790년대에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기사를 남기고 있다. 성모 마리아 신심은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한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조선교구는 1841년 ‘태어날 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은 성모 마리아’[聖母無染始孕母胎)를 주보로 받들게 되었다.

 

이후 성모신심은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갔고, 성모 성심 신심과 같은 새로운 신심유형이 조선에 전파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도 1846년 11월 2일 충청도 공주군 신풍면 봉갑리 수리치골에서 성모성심회가 창설되었다.

 

조선에서 성모성월이 처음으로 실천된 때는 1862년이었다. 이에 관한 기록은 칼레 신부의 여러 편지와 그가 지은 베르뇌 주교의 약전에 나타난다. 칼레의 기록에 따르면, 베르뇌 주교가 그해에 처음으로 “성모성월을 지냈고, 8월의 어머니[聖母]의 제단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유럽의 몇몇 교회에서는 8월을 성모성월로 지정하여 기념하기도 했다. 이 상황을 감안하면 1862년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성모성월을 8월에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는 5월을 성모성월로 지내고 있다. 이와 같은 관행이 확정된 것은 라자로회 출신 북경대목구장 물리(Mouly 孟振生) 주교가 간행한 “성모성월”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서는 성모성월을 5월로 확정하여 날짜별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특별한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다.

 

“성모성월”은 아마도 1877년경에 조선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책은 1887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서 한글로 번역되어 블랑 주교의 감준을 받아 활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그 뒤 한국교회의 성모성월은 5월로 확정되었고 성모 신심은 더욱 널리 보급되어 갔다.

 

 

남은 말

 

박해시대 조선의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굳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고전을 살펴볼 때, 조선인들은 모성적 존재에 대한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서를 배경으로 조선인들은 성모 마리아 공경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이해했다. 박해시대 조선인 신도들은 성모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들었고, 보호자요 언제나 든든한 배경으로 생각하였다. 성모신심은 이 땅에서 조선인 자신의 고유한 신심으로 재창조되었고, 신자들은 성모신심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한편,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성모신심이 강했던 이유 하나는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강화되는 현상과 관련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 신도들이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이러한 감정을 그때의 해묵은 기도문인 ‘성모를 찬송하는 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네게 하례하나니 천지 모후여, 인자하신 어미시오 우리들의 생명이시오 즐거움이시오 바람이시라. 네게 하례하나이다. 에와의 자손이 이 귀향 중에서 네게 부르짖으며 이 체읍하는 골에서 통곡하고 눈물을 흘려 너를 우러러 바라 탄식하나이다. 우리 주보여 네 자애로우신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시고, 이 찬류(찬류는 귀향에 있다는 말)의 기한이 지나거든 네 복중에서 나신 거룩한 예수를 우리에게 보이소서. 너그러우신 마리아여, 자애로우신 마리아여, 달으신 동정 마리아여.”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8월호, 조광 이냐시오]



1,42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