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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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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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30 ㅣ No.272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6)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한국 작가의 유리화, 한국 교회 정서 담아

 

 

- 남용우,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1975.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전쟁의 포화 속에 파손된 교회 건축물들을 재건하며 당대의 화가들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참여했고, 그들의 회화적 표현이 수용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1970년대 중엽부터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현대 미술을 과감하게 수용했던 유럽 스테인드글라스의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회화적 표현이 도입되어 순수 미술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유학파 작가들, 유리화 부흥 이끌어

 

1970년대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국내 작가들에 의해 스테인드글라스가 제작되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유럽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한 고 이남규(루카, 1931~1993)와 남용우(마리아, 86)가 1960년대 말 귀국하여 한국 가톨릭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들은 각각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을 시작으로 서구의 추상적 경향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을 선보였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신의 회화 세계와 20세기 프랑스, 독일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나타난 추상적 경향이 수용된 작품을 제작하고자 노력했다.

 

1980년대에는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이하여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성당이 건축됐고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날로 증가했다. 또한 1984년에 개최된 ‘영원의 모습’(Images of Eternal)전에서 마르크 샤갈, 알프레드 마네시에, 장 바젠, 라울 위박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소개돼 국내 가톨릭 미술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교세 확장, 한국적 유리화 등장

 

1970년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20세기 유럽 스테인드글라스의 추상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비가시적인 존재를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교세가 확장되고 스테인드글라스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정서가 반영된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즉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작품을 선호하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상황이 작품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이남규의 1980년대 이후 작품과 1990년대 이후 최영심의 작품에 표출된 성경의 구상적 표현은 다양한 페인팅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한국 스테인드글라스의 기법적인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테인드글라스와 건축의 대화

 

프랑스의 미술사가 베르나르 도리발(Bernard Dorival)은 “스테인드글라스는 건축을 필요로 하고 건축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필요로 한다. 이 두 예술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면 서로가 더욱 풍요로워지지만, 이 중 하나가 입을 다물면 나머지 하나도 침묵을 선고받게 되는 것”이리며 건축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상호 공존하면서 진화해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1990년대 다원화된 교회 건축 양식과 더불어 건축 구조에 따른 다양한 양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이 시도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스테인드글라스는 회화 작업처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설치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존재하는 창의 위치와 여러 조건을 고려해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건축 초기 단계부터 건축가와 함께 논의하며 충분한 소통의 시간을 거쳐 작업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설치 사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건축적 예술로서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전쟁의 포화 속에 파손된 교회 건축물들을 재건하며 당대의 화가들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참여했고, 그들의 회화적 표현이 수용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1970년대 중엽부터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현대 미술을 과감하게 수용했던 유럽 스테인드글라스의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회화적 표현이 도입되어 순수 미술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31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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