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화ㅣ우화

[스승] 제자가 된 스승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1 ㅣ No.477

제자가 된 스승

 

 

광주 가톨릭센터에서 문예창작 강좌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첫 강의 시간에 한 수강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20년 전 그 날, 나는 꽤 들떠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게오르규가 광주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게오르규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외출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예상대로 담임 선생님은 "고3 수험생이 문학 강연은 무슨 …" 하며 허락하지 않으셨다. 우여곡절 끝에 외출 허가증을 받았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강연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만했다.

 

문제는 교실에서 일어났다. 외출 허가증을 늦게 받는 바람에 교실 안은 이미 수업중이었던 것이다. 선생님께 외출 허가증을 보여 드렸더니 "이 시간은 내 수업 시간이야. 안 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분노가 솟구쳐 올랐고 나는 해서는 안 될 상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선생님은 말없이 판서를 했고 친구들은 등을 떠밀어 나를 교실 밖으로 내밀었다. 그 날 내가 한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내가 선생님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런데 첫 강의 시간, 나이 지긋한 그 수강생은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나는 강의를 끝내고 나를 기억하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큰소리로 웃으시더니 "기억하다마다. 신문, 잡지에서 자네 글을 읽을 때마다 모아 두곤 하지" 하고 말씀하셨다.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리자 선생님은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신경 쓰지 말게. 모름지기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네."

 

그 날, 당신의 분노는 얼마나 컸을 것인가. 그런데도 20년 뒤 그 제자의 강의를 찾아와 들으며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때론 치열하게 때로는 나지막이", 곽재구 외, 울림사]

 

[월간 좋은 생각, 2001년 1월호, p.81]



2,72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