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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 (3) 회중석, 하느님 백성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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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4-27 ㅣ No.167

[가톨릭 문화산책] <14> 건축 (3) 회중석, 하느님 백성의 자리

하느님 말씀 듣고 성체 모시려 하느님 백성이 머무는 공간


- 르 토로네 수도원 성당(프랑스 남부).


주님께서는 언덕 위에서 가르치셨고 배 위에서 가르치셨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그분을 둘러쌌다. 그들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앉거나 서서 마음을 다하며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성당이라는 건축 안에 넣어본다. 그러면 신자들이 앉는 회중석이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회중석이란 제대를 둘러싸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몸을 모시며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하느님 백성이 머무는 장소다. 미사를 드리는 공동체는 사제가 입당하면 일어서고 참회하기 위해 서 있고, 독서를 듣기 위해 앉았다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기 전 다시 일어서고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몸으로 전례에 동참한다. 그러니 회중석은 신자가 편히 앉는 좌석이 배열된 전용공간 같은 것이 아니다. 성당의 회중석은 제단이라는 거룩한 공간과 구별되면서도 이 제단과 하나가 되도록 느끼는 하느님 백성의 자리다.

오늘날의 제단과 회중석은 각각 구약의 성전을 이루는 지성소와 성소의 위치에 있었다. 회중석은 예비신자 교리는 받고 있으나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이 있는 입구 가까운 곳의 나르텍스(narthex)와 제단 사이의, 신자들이 앉게 되는 공간을 가리킨다. 영어로 '네이브(nave)'라 하는데, 이것은 '배'라는 의미의 라틴어 '나비스(navis)'에서 유래한 건축 용어다.

본래 전용 건물이 없었던 교회는 공공 집회를 위해 넓은 내부 공간을 가졌던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basilica)를 성당 건축에 응용했다.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에서는 긴 변의 한가운데에 입구를 두었는데, 교회는 반대로 짧은 변에 입구를 두고 내부의 긴 방향을 바라보게 했다. 이 간단한 차이는 그야말로 근본적인 변화를 줬다. 이때부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부는 마치 배와 같은 구조처럼 보였고, 저 끝에 보이는 둥근 방은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자리라고 여기게 됐다. 이렇게 하여 평면은 배 모양이 됐고, 그 이후에 생긴 볼트 천장으로 성당 내부는 더욱 배의 용골 모양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회중석이 왜 '배'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교회가 무질서하게 소용돌이치는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로 비유됐고, 회중석에 앉은 사람들을 세상의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여정을 떠나는 이들로 비유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당의 평면 모양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축약한 그림과도 같았다. 회중석을 지나가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인생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아직 이 'nave'에 대한 번역어가 정해져 있지 못하다. 건축에서는 nave를 흔히 '신랑(身廊)'이라는 일본식 번역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몸이라는 뜻을 담고는 있어도 '랑(廊)'은 채나 복도라는 뜻이 강해서 '배'의 의미를 담지 못한다. 가톨릭사전에는 nave를 '신도석'이라고 적고 있지만 이보다는 '신자석'이 더 맞는 말이다.

- 비톤토 대성당 회중석에 마련된 강론대와 독서대(1229년, 이탈리아 풀리아).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이는 모든 이를 '전례 회중'(liturgical assembly)이라고 한다. 회중이 평신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함께 모여서 미사를 드린다'는 뜻이 잘 나타나 있으므로 nave를 '회중석(會衆席)'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성당의 평면이 긴 경우, 회중석은 긴 통로(aisle)로 나뉜다. 그러니까 회중석은 이 세 개의 통로 모두를 말한다. 그러나 성당이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경우 흔히 가운데를 회중석(nave), 그 좌우를 '측랑(側廊)'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가운데를 '중앙 통로(central aisle)', 그 좌우를 '측면 통로(side aisle)'라 부르는 것이 맞다. 평면이 기둥과 벽으로 몇 개로 나뉠지라도 그 전체가 회중석이다.

그런데 이 'aisle'을 번역할 말이 참 없다. 이것을 여기에서도 '통로'라고 번역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통로는 벽과 벽 사이를 말한다. 로마네스크나 고딕 성당에서 중앙 통로를 만드는 좌우의 벽을 높게 만들려고 아치로 이루어진 아케이드(arcade)를 제일 아래에 두고 그 위에 갤러리(gallery)를 두고, 다시 그 위에 세 잎처럼 생긴 트리폴리움(trifolium)을 얹기도 한다. 또 가장 위에는 측면 높은 곳에 낸 창(고창, clerestory)을 얹는다. 그러나 갤러리나 트리폴리움은 성당의 높이에 따라 모두 둘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둘 수도 있다.

오래된 유럽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장식한 바닥을 볼 수 있다. 좌석이 고정돼 있는 오늘날의 회중석을 생각하면 어차피 의자에 가릴 바닥을 왜 그렇게 아름답게 장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전에는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계속 서 있었고, 오래된 성당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회중석에는 좌석을 두지 않고 빈 공간으로 뒀다. 회중석에 좌석이 놓이게 된 것은 중세 시기가 한참 지나서였다.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좌석이 마련돼 있지 않았으므로 평신도는 서 있었거나 요구가 있으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성당에 등받이가 없는 벤치를 놓게 된 것은 13세기부터였다. 신자들이 앉는 긴 자리는 개신교에서 긴 시간 설교를 듣게 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가톨릭 개혁에서 말씀 전례를 강조하게 된 이후에는 성당에도 이 긴 의자가 배열됐다. 16세기 후반에 가서야 등받이와 무릎틀도 생겼고 의자가 커지고 고정됐다. 그렇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회중석 옆에 앉는 여자들의 좌석은 의자가 낮고 무릎틀도 낮았다.

-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1062년, 이탈리아 피렌체).


이러기까지 남자와 여자는 회중석에서 종종 나뉘어 있었다. 어떤 오래된 성당의 중앙 통로 좌우 벽에는 열주로 된 아케이드로 구분된 2층석이 있다. 이것은 마트로네오(matroneo)라고 하는 여성용 특별석으로, 남녀가 따로 미사를 드린 비잔틴 전통을 따른 것이다. 고딕 성당에서는 이것이 그 용도를 잃었지만, 동방교회에는 여자들이 때때로 회중석 위에 있는 기나이콘(gynaikon)이라 부르는 갤러리에 서 있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15세 이상의 여자들이 모여서 뜨개질을 하거나 옷을 짓던 '기나이콘'이라는 방에서 나온 것이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여자들은 북쪽과 서쪽에, 남자들은 남쪽과 동쪽에 앉았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나라 하데스는 서쪽에 있고 이교도들은 북쪽에 있다고 보았고, 여자들이 믿음이 적은 이들을 이런 유혹에서 지켜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성당 정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드나들도록 문을 좌우에 두 개 더 두기도 했다.

요사이 이동하기 쉽게 하려고 회중석에 독립된 개인 의자를 두는 경우를 본다. 나무로 된 긴 의자는 무겁고 고정된 것이기는 해도 모인 이들이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또 성당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함을 말해야 한다면 개인 의자는 극장 좌석을 연상하게 하므로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서는 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의자의 색깔이나 재질은 성당이라는 전체 공간의 바닥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회중석의 의자는 세심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먹이시는 주님의 식탁이 두 개가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는 제대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대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강론을 하고 성경을 낭독하며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회중석에 층계를 두고 높은 단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후에 강론대(pulpitum)와 독서대(ambo)가 됐다. 16세기 중엽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가톨릭에서는 회중석에서 보기 쉽고 말이 잘 들리도록 하기 위해 많은 강론대가 회중석 안으로 옮겨졌다. 이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당신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성당 안에 있는 회중석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앉거나 서야 할까? 내가 본 가장 겸손한 회중석, 그것은 프랑스 남부 르 토로네 수도원 성당의 회중석이다. 앉아 보면 의자가 낮다. 주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낮추기 위함이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 버린 겸손한 수도자의 마음이 이렇듯 의자라는 물체에 소박하게 표현돼 있다. 등받이도 없고 무릎틀도 없다. 무릎을 꿇으려면 딱딱한 돌바닥에 무릎을 대야 한다. 이런 의자에는 우리 성당에서 흔히 보는 긴 방석 같은 것이 놓일 여지가 없다.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주님의 몸을 모시고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가 조금 더 편한 의자에 앉아 무엇하랴? 이것이 우리가 앉고 서는 회중석의 본래 모습이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은 바로 이런 우리 마음과 영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평화신문, 2013년 4월 28일,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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