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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전례미술칼럼: 땅 위에 기초를 세우다 – 건축의 설계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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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2-27 ㅣ No.924

[전례미술칼럼] 땅 위에 기초를 세우다 – 건축의 설계 단계

 

 

모든 일에는 기본이 중요하고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다소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또 조금이라도 잘 실행하고자 하는 원의가 있다면 객관적인 사고와 논리의 적용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건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관련 법규를 검토한 후 사용될 경비 산출까지 큰 그림을 그렸다면, 설계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사용성과 시공성, 유지관리의 측면도 염두에 두면서 공사중 시행착오를 최소화하여야 합니다. 간혹 시작은 창대했으나 건축 관계자의 개성에 따라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론과 실기의 토대 위에 적절하고 상세한 검증을 거친 도면이야말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지만, 단순 경험치에 의한 건축이 가끔은 멋진 결과를 내어 줄 수도 있다는 요행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건축은 단계별로 필요한 검증을 거듭하면서, 견고성과 실용성 그리고 전례 예술성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기본적인 세 가지 원칙을 충족하고 조화를 이룰 때 도면을 실제 건축물로 잘 구현하게 됩니다. 건축은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안전한 건물을 위한 견고함이 중요하며, 실 용도에 알맞은 공간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기능성과 편안함을 주어야 하고, 거기에 우리가 살고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 전례적 이미지와 함께 예술성까지 겸비해 준다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처럼 그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이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건축이 될 것입니다.

 

많은 경우 건축의 시작에서부터 의견이 불일치하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 서로 불목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다시금 되짚어보면서 잠시 쉬어감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의 생각과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양보하면서 공동선을 위한 목적에 온 마음과 정성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천리길도 한걸음 한걸음이 더해져 목표에 다다르듯이, 지난한 설계 과정을 충분한 소통과 인내로 일치하여 걸어갈 때 설계는 숙성되고 정화되어 공동의 목표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성급하게 공사를 시작한다면,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예상을 초과하는 경비의 부담을 맞닥뜨리기도 하며, 정작 맞추고자 했던 준공시점을 오히려 맞출 수 없게 되는 뼈아픈 결론을 얻기도 합니다.

 

구름 위가 아닌 단단한 땅 위에 기초를 세우는 마음가짐으로, 공동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상기하면서 매일의 기도와 삶에 동기부여를 한다면, 그 어떤 건축이든 시작과 마침 점에 평화와 일치가 가득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확신해 봅니다.

 

[2023년 2월 26일(가해)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7면, 황원옥 마리아에스텔 수녀(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 가톨릭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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