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성무일도ㅣ독서기도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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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6-20 ㅣ No.497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3-4: CCL 41,530-531)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목자들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이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목자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기로 합시다.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구어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 주어야 하며 상처 입은 것은 싸매 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다만 못살게 굴었을 뿐이다.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말씀에서 양을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목자들이 욕심내는 것이 무엇이고 또 소홀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욕심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젖이나 짜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누가 포도밭을 만들어 놓고 그 포도밭에서 열매를 따먹지 않겠습니까? 또 도대체 누가 양을 친다면서 그 젖을 짜 먹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양의 젖이란 하느님의 백성이 자기 지도자들에게 생계를 위해 바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말씀에서 사도가 이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는 자기 손으로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길을 택하고 양의 젖을 짜 먹는 길을 찾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제정해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양의 젖을 짜 먹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자신의 동반자들인 다른 사도들이 수탈해 버린 권리가 아닌 이 정당한 권리를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더 나아가 응당히 자기 몫으로 받아야 할 것을 포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포기했다고 해서 다른 사도들이 받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오로는 그 이상을 한 것뿐입니다. 바오로는 상처 입은 사람을 여관으로 데리고 간 그 사마리아인이 한 말을 반영해 주는지도 모릅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양들의 젖을 요구하지 않는 목자들에 대해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들은 자비의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더욱 더 너그럽고 환대합니다. 이들 목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칭송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목자들을 나무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게서 혜택을 구하지 않았던 사도 자신도자기 양 떼가 메마르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양 떼가 되지 않고 열매를 맺는 양 떼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응송  에제 34,15-16

 

◎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기를 것이요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쉬게 하리라. *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 아픈 것은 힘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리라.

◎ 헤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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