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12: 분노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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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0-05 ㅣ No.1874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12. 분노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분노가 일면 주님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세요”

 

 

- 대부분 사람은 화를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평온한 날, 기분 좋은 날에 온유와 친절의 덕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CNS]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한 주간을 지내면서 ‘온유하려면 먼저 저 자신에게 온유하라’는 성인의 말씀을 자주 떠올려보곤 했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매일 하는 성찰의 중심에는 많은 경우 내가 아닌 남에게 향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도자인 저는 함께 사는 자매를, 부모는 자녀를, 부부간에는 배우자를 향한 기대와 요구로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상처를 받게 되는데요. 그러면 내가 상대에게 잘못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상대가 나에게 준 상처로 인해 분노가 생깁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잊고 살았네요.

 

인간에겐 부족하다 싶으면 욕구가 생기지요.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목마르면 물을 찾게 되고요. 그런데 마음이 허기질 때는 타인을 향한 불평과 비난을 하게 돼요. 그런데요. 이상하게도 내가 잘못해도 남이 문제를 일으켜도 똑같이 돌고 돌아서 오는 것은 무엇보다 저 자신에 대한 분노입니다. 남 탓을 하는 그 순간에도 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온유의 친구가 겸손이라고 하셨지요? 아마도 온유의 적은 ‘분노’가 아닐까요? 온유와 친절이 무너지는 자리에는 늘 분노란 놈이 화약고를 들고 찾아옵니다. 물론 머리로는 한발 물러서 인내하기를, 멋지게 참아내기를 상상하지만 치밀어오는 분노는 막을 도리가 없답니다. 온유의 적, 분노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마음속 분노를 잘 다스리며 살고 싶은 김 수녀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누구에게나 ‘분노’란 감정이 있지요. 그런데 한번 화를 내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밤이 되면 그 분노가 미움으로 변하기도 해요. 내 마음에 화가 들어와 터를 잡으면 마땅히 내쫓을 방법도 없고요. 화를 내면 자신이 왜 화내는 줄도 모르고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와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이게 돼요. 게다가 자신이 화를 내는 정당한 이유를 자꾸 찾게 됩니다. 그렇게 합리화시키는 것에 머리를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올라오겠지요. 그러느니 차라리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배우면 좋지 않을까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아주 작고 사소한 화라도 일단 마음 안에 들어오면 처음에 작은 씨앗처럼 떨어지지만 결국 큰 나무가 되어 물리치기 어렵다고 해요. 그러니 화가 들어오면 가능한 한 빨리 몰아내는 것이 좋아요. 분노는 마치 뱀과 같아서 머리만 들이밀면 온몸이 그 틈으로 들어가니까요.

 

그렇다고 화가 날 때 화를 억지로 누르려고는 하지 마세요. 과격하고 거칠게 자신을 다루려 하지 마세요. 누군가 “시끄러워요. 조용히 하세요”라고 고함치면 그 주변을 더 소란하게 만들잖아요. 마찬가지로 내 안에서 화가 올라오는데 ‘시끄러워! 잠자코 있어’라고 하면 내 안의 좋은 감정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해요.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 분노를 통제하긴 더 어렵지요.

 

모든 덕이 그러하듯 자신의 결핍에 집중하기보다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쪽으로 마음을 주면 어떨까요? “하지 말자!”가 아닌 “하자!”라는 마음이요. 그런데 화가 나는 순간에는 조절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평온한 보통의 날에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요. 기분 좋은 날에 온유와 친절의 덕을 쌓았으면 해요. 그래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조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따뜻하고 부드럽게 말하거나 웃으면서 친절하게 행동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집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사처럼 행동하면서 집안 식구들은 모질게 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실 그의 마음에는 온유함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어쩌다 한번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은 진짜 친절함이 아니니까요. 늘 만나는 가족과 친구에게 한결같이 온유하고 친절할 때 비로소 사랑의 꽃이며 덕 중의 뛰어난 덕행인 온유함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평소에 나 자신과 가족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온 분노감정을 손님처럼 잘 맞이하고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화가 나고 마음이 흔들릴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성경 장면(마르 4:38-39)을 떠올려 봐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초대해요. 그런데 호수 한복판에서 거센 돌풍이 일자 제자들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며 호들갑을 떨자, 주님께서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고 한마디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됩니다.

 

우리도 마음속에서 돌풍 같은 분노가 일 때, 주님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요. 그리고 주님께 청해요. 그분께서 잠잠해지라 명하시면 마음속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깊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0월 2일,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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