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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건축 이야기6: 성 엥겔베르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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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2-13 ㅣ No.920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6) 성 엥겔베르트 성당


성당 공간 전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초점

 

 

성 엥겔베르트 성당. 출처=Achim Bednorz

 

 

중심형 평면에 독립한 제대를 둔 성당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1920년대부터 제안되었다. 그때부터 신자들이 제대 주변에 모여 더 적극적으로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성당의 평면을 원형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전례 개혁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원형과 같은 중심형 성당은 신성한 완전성을 나타내고, 이로써 신자들이 평등했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회귀한다고 여겨졌다.

 

 

시대를 앞서간 교회 건축가

 

이때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운 근대의 성당을 앞서 계획한 대표적인 교회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Dominikus Bhm, 1880~1955)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개혁가들에게는 보수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포물선과 엇갈린 아치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육중하면서도 밝은 성당을 설계한 표현주의 건축의 대가였다.

 

그런 그가 1923년 미국에 지어질 성당 프로젝트로 신자들이 미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타원형 평면의 성당을 제안했다. 긴 축 끝에는 원형의 독립된 제단을 두고 다시 몇 단 위에 제대를 높이 두었으며, 또 그 위에는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높이의 채광탑으로 제단을 비추게 했다. 타원형의 회중석 주위는 꼭대기에서는 아치를 이루는 높은 기둥 26개가 감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 또 다른 열주가 이를 다시 에워싼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지어졌더라면 매우 장대한 고딕적인 근대 성당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성당을 ‘미사성제 성당(Messopferkirche)’이라 불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40년 전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당시 교회로부터 비판받았다. 이러한 내용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이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데팅엔(Dettingen)에 있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 준공식에서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의 이런 말로 시작했다. “만일 교회가 신자들 한가운데 현존하시는 주님의 처소가 필요하다면, 그곳은 희생의 장소여야 한다.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제대다.” 그럴 정도로 그의 ‘미사성제 성당’은 아켄 신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당시 가톨릭교회에서는 중심형 평면 한가운데 제단을 놓는 성당을 구현할 수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사제가 회중을 등 뒤로 하고 미사를 드렸으므로 제대가 제단의 뒷벽에 기대어 놓여야 했기 때문이다.

 

- 성 엥겔베르트 성당 내부. 출처=Daniela Christmann

 

 

공간에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담다

 

도미니쿠스 뵘은 쾰른 근교에 있는 성 엥겔베르트 성당(St. Engelbert, 1930~1932)을 설계했다. 쾰른에서 최초로 세워진 근대 성당 건축이다. 1930년에 제한 현상 설계에 3개의 안을 제출했는데, 현재의 건물을 본당측이 선택했다. 정면을 바라보면 클링커 벽돌로 마감된 방패처럼 생긴 벽이 마주한다. 평면이 원형인데 그 둘레를 따라 포물선 아치 8개가 올라가는 구조 형태가 그대로 외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건물은 제법 높은 계단 위에 있다. 대지가 약간 낮아서 지하층에는 홀이나 도서관 등을 두고 그 위에 회중석을 올렸다. 이 계단을 올라오면 거대한 8개의 아치 위에 얹은 돔 밑에 어둡고 신비로운 공간이 둥글게 펼쳐진다.

 

8개의 아치 벽면에서 튀어나온 리브(rib)는 포물선 아치를 이루며 바닥에서 시작하여 높이 올라가 고딕 대성당의 볼트(vault)를 닮은 곡면을 만든다. 이 리브는 우산처럼 원형 평면의 중심의 꼭대기에 있는 쐐기돌에서 합쳐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돔이 콘크리트 아치에 정확하게 얹혀 있다. 철근 콘크리트였기 때문에 가능한 쉘(Shell) 구조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이해하기 쉽게 ‘레몬 압착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로써 뵘은 1920년대까지 성당 건축에는 전혀 가치가 없는 재료로 여겼던 철근 콘크리트의 영성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잘 지었는지, 오늘날에도 여전히 콘크리트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원형 성당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성당 공간 전체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단은 회중석보다 한참 높은 대리석 계단을 두고 회중석과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제단은 포물선 모양으로 덮인 채 뒤로 크게 물러나 있다. 제단의 오른쪽과는 달리 왼쪽에서는 높고 큰 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제단을 밝게 비추고 있다. 어둑하고 중성적인 회중석과는 달리 제단이 중심을 이루는 신비하고 극적인 고딕 대성당의 빛을 회상하게 한다.

 

중심형 공간에서는 건축적 중심과 전례 상의 중심이 어긋나는데, 이 성당은 원형 평면에 제단을 덧붙여서 이를 보완했다. 이로써 공간은 장축형이 되어 몸과 눈은 직선으로 제단을 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원형 공간에서는 어디서나 폭이 깊이보다 넓게 지각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제단은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여기에 제대를 계단 쪽에 가깝게 놓아 제단과 회중석의 거리를 줄였다.(제단 밑에 있는 제대는 후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형태 창조한 하느님의 옹호자

 

성당에 대한 도미니쿠스 뵘의 생각은 “한 분이신 하느님,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공간!(Ein Gott, eine Gemeinde, ein Raum!)”으로 요약된다. ‘하나의 공간’이란 반드시 중심형 공간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공간’이란 회중석이 기둥으로 나뉘지 않으며 내부 형태가 외관에 그대로 나타나는 공간,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가 제대를 둘러싸는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성당 공간이다. 또한, 이 성당 설계를 시작했을 때인 1930년 도미니쿠스 뵘은 이렇게 말했다. “희생의 장소 곧 제단은 거대한 장막과 같은 회중석에 인접한다. 그리하여 회중석은 참된 정점, 목표가 되게 한다. 공간은 갈망하는 것이고 희생의 장소에서 충족된다.”

 

회중석을 에워싼 포물선 아치 벽의 표면은 온통 단색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연속적이다. 그러나 아치 벽 위에 있는 원형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은 볼트 곡면을 제각기 조금씩 달리 비춰준다. 그가 말한 “거대한 장막과 같은” “하나의 공간(ein Raum)”이다. 또한, 포물선 아치는 동적이면서 정적인 안정감을 주는 이상적인 형태다. 포물선 아치 모양의 벽면과 늘씬한 리브 볼트를 제외하면 공간을 한정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공동체는 원형의 돔 아래에서 정적이면서 동시에 동적인 공간에 머물 수 있다. 그가 말한 “희생의 장소를 갈망하는” “하나의 공동체(eine Gemeinde)”다. 그런데 밑에서 보면 움직이는 파도가 상승한 것 같고, 중심의 쐐기돌을 주목해서 보면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의 빛이 여덟 쪽으로 갈라져 땅으로 내려오는 듯이 보인다. 도미니쿠스 뵘은 이것으로 땅에서 벗어난 부활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참된 정점”인 “한 분이신 하느님(Ein Gott)”이다.

 

이렇듯 그는 전례 운동에 의한 성당 건축의 변화를 완전히 수용하면서도 정교한 구조와 시공, 극적인 빛의 연출로 중세 성당을 근대 성당으로 훌륭하게 재해석한 교회 건축가였다. 1955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동료였던 건축가 루돌프 슈바르츠가 말했듯이 그는 언제나 새로운 형태를 끊임없이 창조한 하느님의 옹호자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2월 12일,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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