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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 북한이탈주민 정착 실태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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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21 ㅣ No.729

[이땅에 평화] 북한이탈주민 정착 실태와 과제


숨 걸고 탈출했는데, 따뜻한 남쪽 나라는 어디에…



북한이탈주민 ‘3만 명 시대’가 성큼 다가서고 있다. 1995년 북녘 큰물(홍수) 피해와 가뭄으로 본격화한 탈북 난민이 20년째를 맞으며 연간 2000명 안팎을 유지하면서 아직도 탈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사선’을 넘은 탈북 난민들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땅, 한국에 적응하며 제대로 살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정착 실태와 과제, 교회의 북한이탈주민 사도직 현황 등을 짚는다. 오세택 기자
 

#경기도 화성에 가면 ‘알퐁소 푸스코의 집’이 있다. 북한이탈주민 자녀 영유아만 5명이 살아가는 일종의 공동생활가정, 곧 그룹홈이다.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수도자들이 ‘엄마’ 역할을 한다. 대부분 중국에 체류할 당시 아이를 낳은 탈북 여성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정착에 어려움을 겪느라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어 그 자녀들을 맡겼다. 4세에서 7세까지 취학 전 아이들을 돌보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엄마 같이’ 할 수는 있지만 ‘엄마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달에 한두 번은 엄마를 만나도록 해주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가 힘겹다고 한다.

시설장 김인숙(키아라) 수녀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채워주는 게 가장 힘들다”며 “우리는 그저 엄마 역할을 대신할 뿐이다”고 말한다.

#인천 논현동에 사는 북한이탈주민은 무려 1600여 명에 이른다. 서울 중계ㆍ월계ㆍ상계ㆍ가양ㆍ신월동, 안산 선부동, 대구 상인동, 부산 다대동 등과 함께 최대의 이탈주민 밀집거주지역이다. 이에 인천교구는 지난 2007년 가톨릭센터에 새터민(북한이탈주민) 지원센터를 열었다가 2년 만에 논현동으로 이전, 남동겨레하나센터(센터장 이진영 수녀)로 이름을 바꾸고 개소했다. 3층짜리 빌라에 보금자리를 틀어 이탈주민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이용하는 쉼터가 됐다. 탈북 아동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역할은 물론 탈북 청소년들의 검정고시 공부 공간, 탈북 어르신들의 경로당인 ‘햇살노인방’으로 제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탈주민을 위한 상담과 교육, 문화센터로서 이만한 쉼터가 국내에 없다시피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20년째 들어 총 2만 6483명 입국

2009년에 2914명 입국으로 정점을 찍은 북한이탈주민은 지난해 말 1514명이 입국, 4년 만에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1995년 이후 입국자 수는 지난 3월 말 현재 총 2만 6483명으로, 내후년이면 3만 명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올들어서도 지난 3월까지 361명이 입국해 국내에 자리를 잡았다. 2008년 2월 입국자 수 1만 2855명에 비하면, 6년이 지난 현재 두 배가 훨씬 넘게 늘어났다. 2001년 1043명으로 1000명선, 2006년 2028명으로 2000명대를 기록했던데 비하면 많이 감소한 셈인데도 이 정도다. 이 중 국내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여성은 1만 8467명으로 69.78%를 차지, 남성 8016명(30.27%)의 두 배를 넘어 탈북 여성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


기댈 데가 없다

북한이탈주민들 국내 정착이 20년째를 맞지만, 이들은 △경제적 미자립 △가족 관련 지원 부족 △지역사회 내 정착 지원 부족 △사회적응 교육 부재 등으로 여전히 심리적, 재정적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다. 연간 2000명씩 들어오던 2005년 한국상담심리학회가 조사한 ‘북한이탈주민의 우울 예측 요인’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87.2%가 외로움 같은 적응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취업률은 대략 20∼30%대에 머물고 있어 경제적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근 북한인권정보센터(소장 윤여상)에서 나온 ‘북한이탈주민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336명 중 취업자는 466명(34.9%)으로, 일용직 노동자가 222명(47.6%)으로 가장 많았고, 임시직이 130명(27.9%)으로 그 다음, 정규직은 114명(24.5%)에 그쳤다. 또 이들의 가족 월평균 소득은 100만 원 미만이 1038명(77.7%)으로 대부분은 정부 생계 급여에 의존했다. 주택 또한 정부에서 제공한 임대주택이 1226명으로 94%였다. 북에서 노동자 계층이면 탈북해 국내에 들어와도 저소득층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 있다. 특히나 여성 대상 재교육과 전문직업교육, 생활안정 지원, 취업 알선은 아주 부족하다는 게 이탈주민들의 귀띔이다.

인천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겸 인천 은행동본당 주임 오용호 신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건 역시 차별”이라며 “이탈주민들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며, 또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이탈주민 사도직활동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입국하면, 맨 먼저 거치게 되는 건 조사기관인 대성공사와 하나원이다. 특히 1999년 7월 안성시에 개원한 하나원 본원과 2012년 12월 강원도 화천군에서 문을 연 하나원 분소 등 2곳은 핵심 적응 훈련기관이다. 하나원과 관련된 사목 활동은 종전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직접 관장했지만, 올해부터는 하나원이 있는 수원교구와 춘천교구에서 전담해 사목을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 민화위 북한이탈주민 및 난민 지원분과(대표 나명옥 신부)가 뒤에서 북한이탈주민 사목 및 사도직활동을 지원하고, 각 교구 민화위와 남녀 수도회, 가톨릭농민회 등 단체들은 탈북주민들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사목ㆍ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과제는 하나원 퇴소 이후 북한이탈주민들과 각 교구 민화위 사목활동과의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원에서도 이탈주민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각 지역에 배정된 이탈주민들의 현황 파악이 사실상 어려워 교구 민화위도 사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하나원에서 천주교 미사실을 통해 ‘받아들이는 예식’을 하더라도 교구에 가서 세례를 받는 비율은 5∼10%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각 교구 민화위는 파악이 가능한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탈주민 가족캠프, 부활ㆍ설ㆍ추석ㆍ성탄맞이 만남 행사, 탈북 청소년 교육지원, 이탈주민을 본당 및 단체에 연결하는 사업, 북한이탈주민지원센터 및 쉼터 개설 등을 통해 이탈주민 사도직에 투신하고 있다. 이탈주민 생활공동체도 ‘꿈사리공동체’(살레시오 수녀회), ‘매화어린이집’(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등 13곳에 이르고 있고,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천주교 측 예수수도회나 대구대교구 민화위 등과 공동 운영 내지 위탁 운영하는 쉼터도 3곳이나 된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이은형 신부는 “북한이탈주민 사목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하나원 퇴소 후 지역 교구와의 신앙적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이탈주민에 대한 표면적 돌봄만으로는 이들의 신앙생활 활성화뿐 아니라 장차 미래 북녘선교에 준비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화신문, 2014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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